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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도서관의 모습
남산 도서관의 모습 ⓒ 송춘희
도서관에서 잘 정돈된 책을 열람하고 창가로 들어오는 따사로운 햇살을 맞이하는 것도 즐겁다. 하지만 가끔은 권태로운 일상에서 벗어나 세상 구경을 하는 것이 더 즐거울 때가 있다.

도서관 계단을 따라 몇 발자국 걷다보면 퇴계 이황 선생의 동상이 있다. 그 곳 계단에 앉아 마치 쉼 없이 돌아가는 연탄공장을 바라보듯 자동차와 버스 행렬을 지켜보는 것이 재미있다. 눈이 돌아갈 만큼 어지러운 차량행렬에 싫증이 나면 나는 변심한 애인처럼 고개를 돌려 주변 사람들을 지켜본다.

분홍, 노랑, 연두…. 색색의 가벼운 옷차림으로 재잘대며 산을 오르는 아가씨들이 있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할아버지 손을 잡고 산책하는 꼬마 아이도 있다. 제 얼굴 두 배는 됨직한 노란 풍선이 할아버지 손보다 더 소중한 듯, 꽉 움켜쥐고 있는 손자의 얼굴에는 화사한 봄기운이 완연하다. 할아버지는 방긋방긋 웃는 손자가 얼마나 예쁜지 저절로 벙글벙글 미소 짓는다. 그걸 지켜보는 나도 함께 미소 지을밖에.

할아버지와 손자의 모습이 작은 점이 되어 사라질 때까지 흐뭇한 미소를 띠고 바라보고 있자니 옆에서 부스럭 인기척이 들린다.

어느 새 내 곁에 노부부가 자리를 깔고 앉아 있다. 도시락 찬합을 꺼내 비닐봉지를 열자 할머니가 준비해 온 맛깔스런 김밥이 살포시 고개를 내민다. 봄날 오후 여린 벚꽃 잎보다 더 하얀 은빛 머리의 두 노인은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점심을 나눈다. 그들의 대화에는 예쁜 며느리도 있고 젊은 시절 함께 거닐던 덕수궁 돌담길도 있으리라.

정신없이 돌아가는 차량이나 세상은 남산 순환길처럼 돌고 돌아 언젠가는 같은 자리에서 만나게 됨을 노부부는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기 때문일까. 깔깔거리지도, 큰소리로 왁자지껄 소란을 피우지 않아도 그들에게선 돌고 도는 부드러운 왈츠의 선율이 들리는 듯하다.

인간이 진정으로 존귀한 것은 우리가 이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조화롭게 살아갈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눈을 뜨고 서 있기도 힘든, 인생의 여름 한가운데에 서 있는 나는 얼마만큼의 세월을 흘려보낸 뒤에라야 이 자연의 성실함에 진심어린 감사를 느끼게 될까?

봄은 왈츠의 선율처럼 겨울을 넘기고 돌고 돌아 또다시 내게로 왔다. 작년에도 그랬고 내년에도 그럴 것이다.
남산 도서관 앞의  만개한 꽃들
남산 도서관 앞의 만개한 꽃들 ⓒ 송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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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입니다.세상에는 가슴훈훈한 일들이 참 많은 것 같아요. 힘들고 고통스러울때 등불같은, 때로는 소금같은 기사를 많이 쓰는 것이 제 바람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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