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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녘에 있어야 할 농민들이 도시의 아스팔트 깔린 부둣가로 모였습니다. 주름지고 그늘진 얼굴에 환한 미소가 퍼질 날이 올까요?
들녘에 있어야 할 농민들이 도시의 아스팔트 깔린 부둣가로 모였습니다. 주름지고 그늘진 얼굴에 환한 미소가 퍼질 날이 올까요? ⓒ 배만호

이미 쌀을 수입하기로 한 것은 모두 아실 것입니다. 우리네 밥상에 외국쌀이 올라오게 되는 것이지요. 이에 앞서 우리가 마시는 술이나 음료, 과자 등에는 이미 외국산 쌀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어 쌀은 문화이고 삶입니다. 학교에서 역사를 배울 때에 '유적지에서 탄화된 볍씨 흔적을 발견하였다는 점을 미루어 사람이 살고 있었을 것이다'라고 추정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짚으로 새끼를 꼬아 요즘 흔하게 쓰는 밧줄처럼 사용하였고, 신을 만들었으며, 멍석이나 소쿠리를 만들었습니다. 봄에는 보릿짚으로 모자를 만들어 여름의 더운 햇살을 가렸습니다.

내 논에 물 들어가는 모습을 내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듯이 바라보았고, 깨끗하지도 않은 물을 서로 자기네 논으로 들어가게 하려고 정든 이웃끼리 싸움까지 하지만 긴 가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정하게 지냈지요.

이렇듯 우리 민족에게 벼농사는 문화이자 생명이고 삶의 한 부분입니다. 그런데 그런 문화를 함부로 다뤄도 되는 걸까요? 백범 김구 선생께서도 문화의 힘을 강조하셨지요. 한없이 높은 문화의 힘만이 우리가 살 길이라고.

마산 제 3부두에서 내려진 수입쌀.
마산 제 3부두에서 내려진 수입쌀. ⓒ 배만호
쌓여 있는 중국산 쌀들. 가까이 가서 보니 현미로 도정된 쌀들이었습니다.
쌓여 있는 중국산 쌀들. 가까이 가서 보니 현미로 도정된 쌀들이었습니다. ⓒ 배만호
한 해 농사 시작하는 곡우에, 논 아닌 아스팔트 위에 섰습니다

지난 20일은 1년 농사를 준비하는 곡우였습니다. 본격적인 농경이 시작되는 날이지요. '곡우에 가물면 땅이 석 자가 마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즉 그 해 농사를 망친다는 말이지요.

곡우 무렵이면 농가에서 못자리를 하기 위해 볍씨를 담갔습니다. 이 때 볍씨를 담가두었던 가마니는 솔가지로 덮어두고 밖에서 부정한 일을 당했거나 부정한 것을 본 사람은 그 볍씨를 보지 않는 풍속이 있었습니다. 만일 부정한 사람이 볍씨를 보게 되면 싹이 잘 트지 않고 농사를 망치게 된다는 믿음 때문이지요.

곡우는 벼농사를 시작하는 못자리를 만드는 날이라 하여 조상들은 죄인이 있어도 잡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중요한 날에 우리네 농민들은 1년 농사보다 중요하다며 매서운 봄바람이 몰아치는 바닷가 부두로 모여들었습니다. 마산항 제 3부두에 경남지역 농민들이 모인 것입니다.

아스팔트에서는 모래가 날려 농민들의 뺨을 때렸습니다. 흙과 더불어 살아온 사람들이기에 흙먼지는 알아도 아스팔트에서 날리는 모래는 잘 모를 것입니다. 모자를 눌러쓴 경찰들은 아버지 연배의 농민들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부두에는 중국에서 들어온 주정(酒精)용 현미가 5천톤급 배에 실려 있었습니다. 청정지역 경남이 수입쌀이 들어오는 관문이 되어가는 것이지요. 마산항에서 들어오는 수입쌀들이 경남은 물론이고 전국으로 퍼져나갈 것이고, 우리의 농촌과 문화는 수입된 문화들로 물들어 갈 것입니다.

농민들이 부두에 정박하고 있는 수입쌀을 싣고 온 배를 보기 위해 부두로 들어가려고 합니다.
농민들이 부두에 정박하고 있는 수입쌀을 싣고 온 배를 보기 위해 부두로 들어가려고 합니다. ⓒ 배만호
쌀 개방에 찬성한 의원님들, 그리고 대통령... 우리 농산물 먹지 마세요

국회에서 쌀 개방에 찬성표를 던진 의원들과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의 높은 자리에 있는 분들. 이 분들에게는 우리가 농사지은 우리 농산물을 공급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수입 농산물이 좋아서 수입하자고 하는 사람들은 각종 농약으로 범벅이 된 농산물을 먹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야 썩을 대로 썩은 그 사람들의 몸과 마음이 썩지 않고 오래 보존될 테니까요.

물건을 사고팔 때는 상대의 것이 내 것보다 더 좋다거나, 아니면 내게 없는 물품을 상대에게서 사는 것이지요. 그런데 미국이라는 나라는 자기네 나라에서는 좋지 않거나 필요없게 돼버린 것들을 남의 나라에 팔려고 하고 있습니다.

풀만 먹어야 할 소에게 고기를 먹여 미치게 만들고는 그 소를 버리기에 아까우니 우리 나라에 팔려고 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 나라의 높은 자리에 있는 분들은 그렇게 해야만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한다는 구실로 미친 소이든지, 농약에 범벅이 된 농산물이든지, 유전자 조작을 한 것이든지 무조건 사려고 하지요.

국민의 건강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오로지 미국이라는 나라에 아부만을 하려는 사람들. 이 사람들은 우리 땅에서 난 우리 곡식과 우리 물과 우리 공기를 절대로 주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미국과 FTA(자유무역협정)을 맺는 것이 과연 우리에게 이익이 될까요? 평택에 미군기지를 건설하려는 것처럼 정부와 미국은 일정을 짜두고선 그 일정대로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국가에서 하는 일도 사람의 일입니다. 개인간의 문제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데, 어찌 국가간의 문제를 일정대로 맞추려고 하는 것일까요?

대통령은 마치 임기 내에 마무리를 해야만 치적으로 남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참으로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정부의 많은 고위관료들 가운데는 젊은 시절에 시위 현장에서 많은 땀과 눈물을 흘린 사람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약자의 편에 서서 싸울 때는 언제였고, 강자가 된 때는 언제입니까?

저는 미국과 FTA를 맺으면 농업이 망하고 교육이 망하고 경제가 활성화되고 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분석한 자료들을 보면 다들 제각각이어서 어느 것을 믿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하게 아는 것은 있습니다. 미국과 FTA를 맺으면 우리의 문화가 파괴된다는 것입니다.

수입쌀 화형식을 하였습니다. 세찬 봄바람에 참 잘도 탔습니다.
수입쌀 화형식을 하였습니다. 세찬 봄바람에 참 잘도 탔습니다. ⓒ 배만호
경찰이 화형식을 한 쌀 위에 소화기를 뿌렸습니다. 마치 미국이라는 나라의 힘을 보는 것 같습니다. 짧은 순간에 불씨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경찰이 화형식을 한 쌀 위에 소화기를 뿌렸습니다. 마치 미국이라는 나라의 힘을 보는 것 같습니다. 짧은 순간에 불씨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 배만호
남의 자식 잘 되라고 내 자식 버릴 순 없지 않습니까

저는 거머리에 물려 가며 모내기를 하였고, 고사리 손으로 풀을 베어 소를 먹이며 자랐습니다. 부모님은 농사짓는 것밖에는 아무 것도 모르시는 분들이었습니다. 한평생을 흙과 더불어 살다가 흙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렇게 대를 이어 농사를 지었고, 그런 정신을 제게 물려주었습니다. 그래서 한 톨의 곡식이 귀한 줄 알고, 한 줌의 흙이 소중한 것을 압니다.

물론 외국에서 들어온 곡식도 그 나라의 농민들에게는 참으로 소중한 존재로 자랐을 것입니다. 우리네 농민들이 그러한 것처럼 귀한 자식 대접을 받으며 자란 것들도 있을 테지요.

하지만 남의 자식 잘 되라고 내 자식을 버리는 부모가 있을까요? 왜 정부에서는 자국의 농민을 보호할 생각은 하지 않고 남의 나라 농민들 배만 불려주고 있는 것일까요?

시위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참으로 허탈했습니다. 내가 내 것을 지키지 못하는 이 슬픔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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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 말이 적어야 하고, 뱃속에 밥이 적어야 하고, 머리에 생각이 적어야 한다. 현주(玄酒)처럼 살고 싶은 '날마다 우는 남자'가 바로 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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