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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저녁 시원한 김치콩나물국 어때요?
ⓒ 이종찬
해야 해야 나오너라
김칫국에 밥 말아먹고
장구 치고 나오너라.
-전래동요


요즈음에는 웬만한 가정마다 김치냉장고가 있어 계절에 관계없이 싱싱한 김장김치를 꺼내 먹을 수 있다. 하지만 불과 몇 해 앞까지만 하더라도 해마다 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4월 중순쯤이면 지난 겨우 내내 우리들 식탁에 빠지지 않고 올랐던 맛갈스런 김장김치가 한창 시어터질 때였다.

장독 두껑을 열면 오래 묵은 김치 특유의 시큼한 내음이 나면서 입에 넣으면 너무 시어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갖은 양념을 넣어 애써 담근 김장김치를 버리자니 아깝기 그지없다. 김치찌개를 보글보글 끓여도 제맛이 나지 않고, 그냥 먹자니 군내 때문에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 묵은 김장김치의 놀라운 탈바꿈 지켜보세요
ⓒ 이종찬

▲ 묵은 김장김치를 부엌칼로 숭덩숭덩 썬다
ⓒ 이종찬
그럴 때 내 어머니께서는 시큼한 내음이 나는 김치를 장독대에서 꺼내 흐르는 물에 깨끗히 씻어 김치속을 모두 털어낸 뒤 손으로 꼬옥 짜두었다가 식사 때가 되면 된장과 함께 김치쌈을 싸먹었다. 그리고 가끔 김장김치 두어 포기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부엌칼로 숭덩숭덩 썬 뒤 콩나물과 함께 시원하고 뒷맛이 깔끔한 김치콩나물국을 끓이곤 하셨다.

내 어머니께서 김치콩나물국을 끓이는 방법은 그리 어렵게 보이지 않았다. 그저 냄비에 된장을 조금 푼 뒤 국물멸치와 부엌칼로 숭덩숭덩 썬 김치, 잘 씻은 콩나물을 넣고 쌀뜨물을 부어 보글보글 끓이다가 찧은 마늘과 송송 썬 대파와 양파, 고춧가루, 집간장 등을 넣으면 그만이었다.

"아빠! 배고파 죽겠어. 반찬 뭐 있어?"
"오늘 아침에 네 외할머니께서 갖다 주신 어묵조림하고, 멸치조림 밖에 없는데?"
"그거 말고 좀더 맛있는 거 없어?"
"김치볶음밥 해줄까?"
"아니. 특별한 거 없으면 콩나물국이나 끓여줘."
"콩나물국?"


▲ 콩나물은 뿌리와 머리를 따내지 말고 그대로 깨끗히 씻는다
ⓒ 이종찬

▲ 맛국물에 된장을 풀고 김장김치를 넣는다
ⓒ 이종찬
지난 17일(월) 저녁. 다음 주부터 시험기간이라며 학교를 마치고 곧바로 도서관에 다녀온 큰딸 푸름이가 난데없이 콩나물국을 끓여달라고 했다. 그때 언뜻 내 어머니께서 맛깔나게 끓여주시던 그 김치콩나물국이 떠올랐다. 아마 그때 내 나이가 지금의 큰딸 푸름이 나이쯤 되었을 때였고, 계절도 지금처럼 무르익어가는 봄이었으리라.

큰딸 푸름이에게 가까운 슈퍼에 가서 콩나물 천 원 어치를 사오라고 시킨 나는 곧바로 냄비에 국물멸치와 다시마, 양파, 매운고추, 대파을 넣고 물을 부은 뒤 맛국물을 우려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묵은 김장김치를 꺼내 도마 위에 올려놓고 그때 내 어머니께서 하시던 것처럼 부엌칼로 숭덩숭덩 잘랐다.

사실, 김치콩나물국을 끓이는 방법은 쉽다. 냄비에 된장 한 수저와 고춧가루를 조금 넣은 뒤 맛국물을 약간 붓고 된장을 잘게 으깬다. 이어 숭덩숭덩 썰어놓은 김치와 잘 씻어놓은 콩나물을 넣고 한소끔 끓인다. 국이 끓으면 위에 뜨는 거품은 모두 걷어내고, 송송 썬 대파와 양파, 매운고추, 빻은 마늘을 넣은 뒤 집간장으로 간을 보면 끝.

▲ 콩나물을 넣고 맛국물을 붓는다
ⓒ 이종찬

▲ 보글보글 끓으면 거품을 모두 걷어내고 다진 마늘, 송송 썬 양파와 대파, 매운고추를 넣은 뒤 집간장으로 간을 맞춘다
ⓒ 이종찬
김치콩나물국은 시원하고 뒷맛이 깔끔한 게 특징이다. 특히 오랜 숙취 때문에 온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울 때나 어제 밤늦게까지 마신 술 때문에 속이 많이 쓰릴 때 쌀밥 한 그릇 후루룩 말아 열무김치나 파김치를 올려 먹으면 어느새 이마와 목덜미에 땀이 송송송 맺히면서 온몸의 피로를 저절로 사라지게 해주는 게 김치콩나물국이다.

"푸름아! 아빠가 끓인 김치콩나물국 맛이 어때?"
"으응, 정말 시원하고 맛있어."
"그래. 아빠가 뜨거운 걸 먹으면서 자꾸만 시원하다고 하는 그 맛을 이제는 좀 알겠니?"
"그 맛이 무슨 맛인지 이젠 알겠어. 아빠! 이 국 이거 많이 끓여놓았지?"
"왜?"
"내일 아침에도 이 국에 밥 말아먹고 갈려고."


그날, 내가 어릴 때 어머니의 손맛을 떠올리며 끓여낸 그 김치콩나물국은 인기가 참 좋았다. 도서관에 갔다가 늦게 돌아온 둘째 딸 빛나도 김치콩나물국에 밥을 말아 순식간에 한 그릇 뚝딱 비워냈다. 나 또한 내가 끓인 김치콩나물국에 밥 한 그릇을 말아 파김치와 함께 먹으며 땀을 흠뻑 쏟아내고 나자 온몸이 날아갈 듯이 가벼웠다.

▲ 김치콩나물국은 파감치와 함께 먹으면 더욱 맛이 좋다
ⓒ 이종찬

▲ 숙취해소에 끝내주는 김치콩나물국
ⓒ 이종찬
요즈음 시어터진 김장김치 땜에 속 태우는 이 있어요. 그럴 때는 김장김치의 속을 털어내고 물에 깨끗히 씻은 뒤 김치쌈을 만들어 먹거나 콩나물과 함께 김치콩나물국을 끓여보세요. 시어터진 김장김치가 어느새 새롭고도 놀라운 맛으로 다시 태어날 것입니다. 오늘 저녁, 김치쌈이나 김치콩나물국 어때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골아이 고향>에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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