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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는 벚꽃이 피면 청사초롱도 함께 걸립니다.
우리 동네는 벚꽃이 피면 청사초롱도 함께 걸립니다. ⓒ 김관숙
벚꽃이 피면 더 아름다워지는 우리동네.
벚꽃이 피면 더 아름다워지는 우리동네. ⓒ 김관숙
꽃잎이 바람에 흩날릴 때마다 청사초롱도 따라서 춤을 춥니다.
꽃잎이 바람에 흩날릴 때마다 청사초롱도 따라서 춤을 춥니다. ⓒ 김관숙
잠실 주공아파트 5단지인 우리 동네의 봄은 언제나 청사초롱과 함께 화사하게 왔다가 청사초롱과 함께 조용히 물러가고는 합니다. 올해 역시 벚꽃이 피면서 청사초롱이 길을 따라 내걸리고 평소 한적했던 길에도 종일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립니다.

민들레와 제비꽃들이 드문드문 핀 잔디밭에는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점심을 싸들고 나온 사람들이 둘러앉아 있습니다.

"참 좋네. 한 살 더 먹고 봐서 그런가 너무 아름다워. 며칠이나 더 갈려나, 바람이 불지 않았음 좋겄는데 말야."

길섶 긴 통나무 의자에 나란히 앉은 이웃 어르신 말씀에 나는 무심코 말했습니다.

"바람 안 불어도 떨어질 때가 됐어요. 내년에 또 보심 되죠."

"기도해야지, 내년에 또 보게 해 달라구."

웃음을 가득 머금은 어르신께서 벚꽃들을 바라보며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 가슴이 덜컥 했습니다. 그런 말을 듣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한편으로는 나도 그런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여생을 내다보는 나이 때문이 아니라 그런 마음으로 산다면 하루하루가 좀 더 알차겠다 싶은 것입니다.

어르신은 퇴행성 무릎관절염 때문에 한쪽 다리를 약간 절며 걷습니다. 그럼에도 어제와 오늘, 혼자서 꽃구경을 나왔다고 합니다. 오늘도 혼자 나와 있다가는 지나가는 나를 보시곤 반색을 하면서 부른 것입니다.

나는 말을 돌립니다.

"낙화도 좋잖아요."
"그럼, 그럼……. 얼마나 이쁘다구. 이쁘게 폈다가 이쁘게 흩날려서 이쁘게 깔리고 이쁘게 바람 따라 모이지."

벚꽃이 길 위에도 피었습니다.
벚꽃이 길 위에도 피었습니다. ⓒ 김관숙
길가에 예쁘게 모인 꽃잎들.
길가에 예쁘게 모인 꽃잎들. ⓒ 김관숙
다음 날도 또 그 다음 날도 바람이 불었습니다. 어르신 말씀대로 벚꽃들이 흰눈이 오는 듯이 예쁘게 흩날려서, 길에도 잔디밭에도 예쁘게 깔리고 있었습니다.

벚꽃들이 흩날릴 적마다 청사초롱도 따라서 춤을 추는 듯이 흔들립니다. 마치 흩날리며 사라지는 벚꽃들을 향해 잘 가라고, 내년에 또 만나자고 손을 흔들며 아쉽고 아쉬운 배웅을 하는 것만 같습니다.

모처럼 바람이 잔잔해진 그 날은 어르신이 노인정 친구 분들과 같이 햇볕이 하얗게 퍼진 은행 앞 화단을 둘러간 벽돌의자에 앉아 있었습니다.

어르신들은 이제는 거의 다 떨어져서 이따금씩 풀풀 날리고 있는 꽃잎들을 보면서도 어린아이처럼 웃기도 하고 뭐라고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햇볕이 따듯하고 화사한 청사초롱들 사이로 보이기 때문일까 더욱 더 화기애애해 보였습니다.

수퍼에서 돌아오는 길이던 나는 그 분위기가 부럽다 못해 거기 끼어 앉고 싶어졌습니다. 왠지 거기 끼어 앉으면 가는 봄이 더 아름답게 보이고 또 아름답게 들릴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차마 그러지 못합니다.

'혹시 내년에도 가는 봄을 보게 해 달라고 기도 하신다고 하면 어쩌나. 그냥 지나쳐 갈까.'

그런데 어르신이 나를 보고 옆에 와 앉으라고 손짓을 합니다.

"봤어? 이쁘게 흩날리는 거 말야."
"네."
"난 못 봤지 뭐야. 꼬박 침 맞느라구 말야. 봐, 끝머리루 저리 풀풀거리는 것두 이뻐. 내년엔 꼭 이쁘게 흩날리는 거 보게 해 달라구 기도해야지.”

나는 들고 있던 장바구니에서 땅콩 한 봉지를 꺼내 어르신 무릎 위에 놓고는 말없이 웃어 보입니다. 어르신들은 마침 입이 궁금하던 차였는데 잘됐다고 무척 좋아들 하십니다.

'나도 얼마 안 있으면 어르신 모습처럼 되겠지.'

나는 어르신에게 또 한번 예쁘게 웃어 보이고 아득히 이어진 청사초롱들을 바라보며 돌아섰습니다.

꽃이 지고, 청사초롱도 이제 소임을 다 했습니다.
꽃이 지고, 청사초롱도 이제 소임을 다 했습니다. ⓒ 김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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