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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정영주
배우 정영주 ⓒ 박성연
사람살이가 어디 쉽던가. 매일 같은 일상을 반복하면서도 매번 다른 사건들 속에서 허우적대기 일쑤인 우리다. 하루아침에도 한숨과 번민과 분노를 오가며 저마다의 삶을 살아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죽겠다' '미치겠다'는 말을 들어도 전혀 심각하게 여기지 않을 정도니 이쯤 하면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랴.

정신병원에 들어가지만 않았을 뿐 저마다 가슴 속에 응어리들을 품고 있는 우리들에게 뮤지컬 '루나틱'은 신선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미친 사람들의 집단'인 정신병원에 들어서는 관객들은 모두 환자다. 커플끼리, 부부끼리, 친구끼리 찾아온 관객들의 표정만 보면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인데도 정신과 여의사는 관객들을 향해 미쳤다고 말한다. 진짜 미친 사람은 결코 자신이 미쳤다고 인정하는 법이 없다면서 관객들의 말문을 닫아놓는 그녀, 톡톡 튀는 재치와 당돌해 보이는 자태 뒤에 숨겨진 배우의 인간미가 궁금하지 않은가?

2년 만에 25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창작 뮤지컬 계에 봉우리처럼 솟아오른 루나틱. 올해 초 새로이 여의사역을 맡은 뮤지컬 배우 정영주를 만나기 위해 4월 15일 대학로에 위치한 뮤지컬 루나틱의 공연장 씨어터일을 찾았다. 이 날 두 차례의 공연이 있는 터라 배우들은 모두 정신없었다. 관객과 함께 '루나틱 송'을 부르느라 숨이 턱까지 차올랐을 것 같은 배우 정영주씨와의 인터뷰는 관객들이 빠져나간 텅 빈 무대에서 진행됐다.

정영주는…

정영주는 지난해 2005년 한국뮤지컬대상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1994년 뮤지컬 ‘명성황후’로 데뷔한 뒤 넌센스, 명성황후, 드라큘라, 페임, 그리스, 미녀와 야수, 뱃보이 등에 출연했다. 최근엔 문희경 양꽃님 김태희 등 뮤지컬 출신 배우들과 함께 4인조 여성보컬 그룹 '엘디바'를 결성해 음반 출시를 앞두고 있다.
- 뮤지컬 '루나틱' 장면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이 있다면?
"'루나틱'의 일원으로서 소중하지 않은 장면이 없지만, 그 중 하나를 꼽으라면 각각의 주인공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고 난 후 제가 '잘하셨어요'라고 하며 안아주는 장면이 가장 충만하게 감정 이입이 되는 것 같아요. 순간적으로 경건해지는 느낌이 들기도 하거든요. 상대배우와 호흡하는 연기가 아니라 본능적으로 인간 대 인간으로 마주 서는 시간인 것 같기도 하고요.

- 정신과 의사라는 역할 어떠세요?
"글쎄.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신과 의사라는 직업에 대해 잘 모르잖아요. 왠지 지적이고 차가울 것만 같은 인상이고, 여의사에게도 물론 그런 면이 없진 않지만 루나틱에선 상당히 인간적인 캐릭터인 것 같아요."

- 오늘 객석 분위기는 어땠어요?
"너무 했어요.(웃음) 객석 분위기에 따라 극의 분위기가 달라지기는 하지만, 지나치다 싶은 건 좋지 않은 것 같아요. 주고받는 애드리브도 당일 객석 분위기의 영향을 많이 받거든요. 오늘은 토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지나치게 좋았죠."

- 다양한 애드리브가 눈길을 끄는데요. 이런 점이 루나틱 공연의 매력이 아닐까요?
"무대와 관객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건 사실이에요. 대본에 이미 주어진 애드리브조차도 리얼리티가 살아있거든요. 더욱이 여의사 같은 경우에는 즉석에서 애드리브를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요. 관객의 반응에 따라 매번 다른 말을 던지게 되는 거죠."

- 루나틱을 보는 관객들에게 루나틱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음. 대사 중에 나오는 부분인데요. '시선을 돌려 주위를 봐'라는 부분이 있어요. 관객들이 배우들이 풀어내는 이야기를 마치 자신의 이야기인 양 보고 느낄 수 있다면 좋겠어요. 관심을 갖지 않고서는 힘든 일이잖아요. 뭐, 시대가 변해서 옆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는 알기 힘들다고 하지만 주변을 돌아보며 사는 게 정말 인생살이의 맛을 느끼는 길인 거 같아요. 그리고 본인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해요. 많이들 그런 말을 하잖아요.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사랑할 줄도 받을 줄도 모른다고요. 자신을 아끼고 사랑한다면, 피곤하고 지칠 때는 몸을 쉬어야죠. 아프지 않고 다른 사람을 귀찮게 하지 않아야 진정한 배려 아닐까요?"

배우 정영주
배우 정영주 ⓒ 박성연
- 정작 정영주씨는 쉼이 없는 것 같은데요. 쉬지 않고 굵직굵직한 작품들은 해오셨잖아요. 힘들지 않으세요?
"그러게요.(웃음) 쉽진 않죠. 그리스 공연 할 땐 9cm짜리 힐을 신고 연속해서 세 곡을 이어 부르기도 했는데요. 무대에서 내려오면 정말 바닥에 주저앉아 멍하니 있기도 했어요. 그렇게 다져져서 그런지 아직도 체력적으로 무리는 없어요. 음, 오랜 시간 배우로 살다보니 무대에 서서 노래 부를 때 속이 시원해지는 맛을 즐겨요. 그리고 또 원래 성격이 도전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우리나라 공연 산업이 브로드웨이처럼 한 작품을 길게 하기 힘든 구조라서, 배우들이 한 작품에만 몰입하기 힘들죠. '집시'같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이런 구조가 나쁘다고는 생각 안 해요. 다양한 작품을 맛보면서 자신의 역량을 키워갈 수 있거든요."

- 정영주씨 삶에서 루나틱 여의사와 같은 체험을 한 적 있나요?
"와이리스 마이크 테스트 하면서 '여기는 아픈 사람 치료 받는 병원이지요'라는 대목을 부르는데 정말 울컥 했어요. 요즘 제가 여러모로 힘겨운 시기를 맞았거든요. 여배우로서 적지 않은 나이라 고민이 많기도 하고요. 이럴 때 저 역시 루나틱의 환자들처럼 내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히곤 해요. 그럴 때 들어주는 사람은 남편이죠. 어떨 땐 서운하기도 한데, 남편의 성격이 신랄할 정도로 객관적이거든요. 그래서 더 고맙기도 하죠. 정확히 지적해주고 선택은 제게 맡기니까요. 다른 이야긴지 모르지만, 어렸을 때는 '나이 들어 보인다'는 게 부담스러웠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아주 편안해요. 이미 경험한 것들을 정서적으로 표현할 수 있으니까요. 지금 내 나이를 사랑해요. 이제 비로소 즐길 수 있게 된 걸요."

- 다음 작품을 물어봐도 될까요?
"루나틱 끝나면 바로 '맘마미아' 들어가요. '뱃보이'하던 중에 오디션을 봤는데요. 앙상블로 참여하게 됐어요. 요즘에는 같이 하는 배우들을 보는 것이 관객을 보는 것 못지않은 즐거움이에요. 앙상블로 조화를 이뤄내는 것, 그리고 로즈 커버라 맘마미아에도 이모저모 기대하는 바가 커요. 물론 그전까지는 루나틱에 매진해야죠.(웃음)"

솔직 담박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갈 줄 아는 배우 정영주. 루나틱의 정신과 여의사가 그러했듯, 내가 만난 배우 정영주는 사람들의 내면을 보듬어줄 만한 넉넉한 품을 가진 사람이었다. 아울러 수더분한 자신의 성격을 활용해 옆집 누이 같은 여의사로 캐릭터를 재창조하며 더욱 맛깔스런 연기를 선보일 줄 아는 '천상배우'였다.

요즘 들어 부쩍 생각이 많아진다는 배우 정영주를 향해 오늘도 관객들은 변함없이 박수를 보낸다. 마치 여의사가 환자를 품에 안고 '잘하셨어요'하고 다독이는 것처럼. 지금껏 도전하는 삶을 살아온 그녀가 앞으로도 그렇게 씩씩하게 삶을 살아내길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맥스무비(http://ticket.maxmovie.com)에도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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