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올 들어 최악이었다는 황사가 전국을 누런 흙먼지 속에 가두어 버리던 날. 황사주의보를 귀담아듣지 못했던 우리 가족은 모처럼 떠나는 주말여행에 모두 들떠 있었다.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여행다운 여행을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터라 몸단장에 열을 내는 아내는 물론 막내딸 녀석도 벌써 지도를 펼쳐보며 목적지까지의 제일 빠른 길 찾기에 바빴다.

우리 부부가 벌어들이는 얼마 안 되는 돈으로는 두 딸을 대학 보내기에도 빠듯할 만큼 항상 쪼들려 살았기에 이번 가족여행도 특별히 여유가 있어 가는 것은 아니었다. 지난주 고등학교 2학년에 다니는 막내딸 녀석이 뭔가를 잘못 했는지 선생님께 꾸지람을 듣고 제 엄마에게 전화를 해와 속상해 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서는 녀석의 기분도 풀어줄 겸 큰맘 먹고 저지른 거사였다.

마음에 상처가 컸는지 야자(야간 자율학습)를 빼먹고 기숙사까지 나오겠다고 했다는 녀석을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평소 머슴아(남자) 성격처럼 무뚝뚝하긴 해도 반 친구들 사이에서는 제법 인기가 있었는지 1학년 때부터 줄곧 학생회 간부를 맡아오다가 올해 들어서는 반장으로 추대되기도 한 녀석이었다.

대학에 다니는 쌍둥이 딸은 시험이 있어 모처럼의 가족여행 기회를 놓쳐버렸고 결국 문제가 된 막내 녀석과 80이 넘으신 어머니만을 모시고 가기로 최종 결정을 내렸다.

▲ 황사를 뒤집어 쓴 땅끝마을 앞 바닷가
ⓒ 고봉주
그러나 한껏 기대에 부풀었던 여행은 첫 단추부터 엇박자를 내고 말았다. 만반의 준비를 끝내고 콧노래를 부르며 막 차에 올라 시동을 켜려는 순간, 막내의 휴대전화기에서 주인을 부르는 컬러링이 괴성을 질러대고 있었다. 이내 몇 마디 대화가 오간 뒤 막내는 갑자기 슬픈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의아해 하는 눈으로 바라보는 가족들을 아랑곳하지도 않은 채 들고 나오던 귀여운 여행용 가방을 부리나케 현관 안으로 집어던지더니 다짜고짜 읍내에 있는 장례식장으로 데려다 달라는 것이었다. 무슨 일이 있느냐고 몇 번을 다그친 후에서야 녀석은 같은 반 친구 어머니가 어젯밤 늦게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는 말만 내뱉고는 다시 입을 다물어 버렸다.

장례식장에 아직 빈소가 차려지지 않았을 것이므로 오히려 상갓집에 짐만 된다며 여행을 다녀온 후에 아빠랑 같이 문상을 가자고 설득을 해도 이 녀석은 막무가내였다. 녀석은 아마 친구 어머니의 부음을 듣고도 여행을 간다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못한 듯했다.

고집을 꺾지 못한 우리는 장례식장에 녀석을 내려주고서야 찜찜한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장롱 깊이 숨겨 두었던 꽃신까지 꺼내 신으신 노모님이 무척 서운해 하실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80 고개를 넘기셨으면서도 직장생활을 하는 아들, 며느리 덕(?)에 홀로 집을 지키실 때가 많았던 어머니는 손녀들이 오는 토요일 오후를 무척 기다리셨다.

시집간 딸이 다녀가면서 드리고 간 용돈은 모두 손녀들 차지일 만큼 끔찍이도 손녀딸을 사랑하셨던 어머니는 막내 손녀와 함께 가지 못한다는 상실감으로 때맞춰 일어난 교통사고를 여러 차례 도마에 올렸다.

여행길도 순탄치는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황사는 농도를 더하고 있었으며 봄기운을 끌어들인 차 안도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매캐하고 눈을 따갑게 자극하는 황사 때문에 창문을 열 수가 없어 결국 초봄에 에어컨을 켜야 하는 비상사태까지 발생했다.

ⓒ 고봉주
해남 땅끝마을은 무척 멀었다. 혹시 어머니께서 차멀미라도 하실까봐 속력을 낼 수 없었던 탓에 목포에서 해남까지 가는 데에만 두 시간이 족히 걸렸다. 뒷좌석에 앉아 계시던 어머니는 중간 중간마다 '아직도 멀었느냐?'며 많이 힘들어 하셨다. 마을에서 여행이라도 갈라치면 꼭 마을카수(가수)로 초청되어 그 특유의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청중을 압도하시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막내 손녀딸을 데려오지 못한 서운함으로 재미를 잃어버리신 어머니는 해남 땅끝마을이 멀기만 하셨던 듯하다.

하지만 이 땅끝마을을 언제쯤 다시 어머니께서 와 보시겠느냐는 고집스런 생각으로 희뿌연 황사 길을 달리고 또 달렸다. 점심 무렵이 되어서야 우리는 땅끝 전망대를 오르는 모노레일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발을 디딘 한반도의 끄트머리 땅은 그러나 짙은 흙먼지에 휩싸인 바다만 눈앞에 희뿌옇게 펼쳐져 있었다.

날씨가 맑은 날에는 제주도 한라산까지 보인다는 안내인의 말에 따라 우리는 결국 희뿌연 황사 농무 속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한라산을 그려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황사를 피해 내려와야만 했다.

허탈한 마음으로 몸을 실은 모노레일 속, 갑자기 아내의 휴대전화기가 요란한 진동음을 낸다. 휴대전화기를 꺼내든 아내가 액정화면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어느새 눈가에 이슬이 맺히기 시작했다. 무슨 영문인지 궁금해 낚아채듯 아내의 휴대전화기를 넘겨받았다. 막내딸이 보내온 문자 메시지였다.

'엄마--엄마는 어디 가지 말고 만날 내 곁에 있어줘야 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진 엄마의 영정 앞에서 죽음이 믿기지 않는다며 오열하는 친구를 두고 적어 보낸 막내딸의 가슴 저미는 메시지였다. 얼마나 친구의 불행한 처지가 절절하고 안타까웠으면 그 막대기 같은 녀석이 이렇게 애절한 문자를 다 보냈을까?

집에 거의 도착했을 때까지도 내내 막내딸 녀석의 문자 메시지는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아니 나를 무척 당혹스럽게 했다. 올 들어 유난히 허약해지신 노모(老母)의 마지막 여행이 될지도 모른다는 효성(?)스런 마음으로 다녀왔던 여행이 실은 불효막급이었다는 자학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저 어린 딸처럼 늙으신 어머니가 만날 내 곁에 계셔주시기를 원해 본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어린 딸만도 못한 생각으로 행여 천수를 다 누리신 어머니의 마지막 여행이 되기를 털끝만큼이라도 바라지는 않았는지?

무거운 침묵이 흐르는 차창 밖으로 간간이 짓궂은 흙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더불어 살아가는 따뜻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밑거름이 되고 싶습니다. 아직도 음지에서 소외받는 불우이웃들을 위해 이 한 몸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가리지 않겠습니다. 모두가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일, 바로 그 소중하고 아름다운 일을 위해 인터넷 신문의 문을 두드립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