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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악산 전경
모악산 전경 ⓒ 김현
해발 794m의 모악산은 평지 돌출형의 산으로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어머니와 같은 포근함과 함께 가파른 숨결을 토해내게 하는 산이다. 주차장에서 처음 올라가는 길은 산책로 같은 느낌을 준다. 3년 전 등산로를 정비하면서 아치형의 작은 나무다리를 놓았는데 성황당다리, 선녀다리, 수박재다리 등 모악산에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과 인근 지명을 따와 다리 이름을 지었다. 그 이름이 참 토속적이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아련한 향수에 젖게 한다.

성황당다리를 오가는 등산객들
성황당다리를 오가는 등산객들 ⓒ 김현
또 산을 오르내리면서 그 이름들을 속으로 가만히 불러보면 정겨움이 절로 묻어남을 느낀다. 어쩌면 흘러가버린 것들에 대한 향수가 성황당다리 같은 이름을 되뇜으로써 우리 내면에 다시 살아나는 것이기 때문이리라.

모악산은 여러 전설이 숨어있는 산이기도 하다. 성황당다리를 지나면 '선녀 폭포와 사랑바위'의 전설이 어린 '선녀 폭포'가 나온다. 그 전설을 잠시 따라가 보자.

선녀폭포
선녀폭포 ⓒ 김현
먼 옛날 선녀 폭포에서는 보름달이 뜨면 하늘에서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을 하며 즐기다, 수왕사에서 약수를 마시고 신선대에서 신선들과 어울려 놀았다고 한다. 하루는 이 폭포 곁을 지나던 나무꾼 하나가 선녀들의 아름다운 자태에 반하여 상사병이 들었는데 죽기 전에 한 번만 더 보겠다는 일념으로 보름달이 뜬 밤에 숲 속에 숨어들어 훔쳐보다 한 선녀와 눈이 맞아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

사랑에 빠진 둘은 몰래 대원사 백자골 숲에까지 와 뜨거운 사랑을 속삭였다. 그런데 둘이 입맞추는 순간 갑자기 하늘에서 뇌성벽력이 울리며 두 사람은 화석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지금도 백자골 숲 속엔 두 남녀가 껴안고 있는 듯한 '사랑바위'라는 돌이 있는데, 여기에 지성을 드리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지금은 전설의 흔적이 많이 지워졌지만 여름이면 많은 사람이 선녀가 목욕하다 사랑에 빠졌다는 물속에 들어가 물놀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물놀이하며 여자들은 선녀가 되어 보고, 남자들은 나무꾼의 마음이 되어 전설을 떠올리는 즐거움을 맛보는 것은 어떨까 하며 조금은 가파른 길을 오르다 보면 대원사라는 작은 절이 나온다.

대원사 아래의 약수터와 물고기집을 수리하는 스님
대원사 아래의 약수터와 물고기집을 수리하는 스님 ⓒ 김현
절 아래엔 긴 대나무 통을 따라 흘러나오는 약수가 있는데, 그 약수터 물아래서 스님 한 분과 신도인 듯한 사람이 괭이를 가지고 무언가 하고 있다. 몇몇은 스님의 모습을 바라보고, 몇몇은 달콤한 약수에 갈증이 난 목을 축인다. 가재 잡느냐고 물으니 물고기 집 만들고 있다고 한다. 예전에 이곳에는 금붕어와 쉬리 등이 한가롭게 노닐었는데 환경이 나빠져 많이 사라졌다며 살만한 집을 만들어 주고 있다고 한다.

대원사 대웅전
대원사 대웅전 ⓒ 김현
달콤한 약수 한 잔 마시고 그리 높지 않은 돌계단을 오르니 대원사다. 대원사는 금산사 말사로 신라 문무왕 때 일승(一乘)이 심정(心正), 대원과 함께 창건하였는데, 다시 고려 공민왕 때와 조선 태종 때 중창하였다고 한다. 그러다 정유재란 때 소실된 것을 1606년 진묵대사가 다시 중창하고, 조선 고종 때 금곡이란 주지가 대웅전과 명부전을 중건하고 다시 칠성각을 지은 것이 현재의 절의 모습이다.

대원사 위에는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은 조금만 암자가 하나 있다. 삼성각(三聖閣)이다. 예전엔 칠성각(七星閣)이던 것이 1990년 장마로 무너진 후 그 자리에 '삼성각'을 다시 세웠다 한다.

증산 강일순이 도통했다던 삼성각
증산 강일순이 도통했다던 삼성각 ⓒ 김현
금곡이 주지로 있을 때 증산교의 창시자인 강일순 선생이 바로 이 삼성각에 한동안 머물며 지냈는데 이곳에서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삼성각에 들어 사진을 찍는 동안 아내와 아이들은 먼저 수왕사를 향해 간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절 사진이나 찍고 탱화를 찍고 하는 것이 조금은 마땅치 않은 표정이나 그런 것에 개의치 않는다.

삼성각 안의 탱화
삼성각 안의 탱화 ⓒ 김현
대원사에서 수왕사 그리고 정상까지는 조금 산세가 가파르다. 우리의 목표는 수왕사. 네 식구가 처음으로 함께 오르는 길이다. 그동안은 줄곧 대원사까지 왔다가 약수 한 잔만 마시고 내려갔다. 아이들은 벌써 힘들다고 그냥 내려가자고 한다. 수왕사 가까이 도달하기 전까진 계속 가파른 길인데 어쩌다 보이는 이름 모를 야생화와 드문드문 피어 있는 진달래만이 있을 뿐 봄 산의 화려함은 보이지 않는다.

쉬다 오르다 하는 길에 딸아이는 계속 장난치며 논다. 솔가지 하나를 꺾어 흙장난을 하며 오르는 모습이 힘들다고 하는 아이의 모습이 아니다. 대원사에서 40여 분쯤 오르니 가까이서 독경 소리가 맑게 흘러나온다. 수왕사(水王寺)에서 나오는 소리다. 반가움에 아이들에게 다 왔다며 소리치자 두 녀석이 뜀박질로 오른다.

수왕사에 오르자마자 우선 물부터 마셨다. 물맛이 기가 막히다. 아들 녀석이 표주박에 물 한 잔 마시더니 "아빠, 물맛이 끝내줘요" 하자 물 마시려던 한 등산객이 "그 녀석 물맛을 알기는 아는구먼"하며 웃는다.

민가 같은 수왕사 전경. 어느 시골집을 연상케 한다.
민가 같은 수왕사 전경. 어느 시골집을 연상케 한다. ⓒ 김현
해발 600m에 있는 수왕사(水王寺)는 언뜻 보기에 절보다는 민가 같다. 한쪽에 숨어 있는 탓에 독경소리가 나니 않는다면 초행자는 이곳에 절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정상에 오르거나 산에서 내려가야 한다. 그래서 수왕사는 사찰이라는 말보단 그냥 절집이란 표현이 잘 어울릴 듯하다.

수왕(水王)이란 말 그대로 '물의 왕'이란 뜻인데 이곳의 물맛은 가히 일품이다. 이 좋은 물을 가지고 만든 술이 있는데 바로 '송곡주'다. '송곡주'는 수왕사의 역사와 함께 한 술이라 한다. 지금으로부터 1300여 년 전에 수왕사를 창건한 고승 부설거사의 행적에 송곡주를 만들어 마셨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송곡주는 송화가루를 이용해 만들었다 한다.

위:송화백일주를 빚는 항아리. 아래:백일주를 빚는 모습을 찍은 사진
위:송화백일주를 빚는 항아리. 아래:백일주를 빚는 모습을 찍은 사진 ⓒ 김현
또 이 수왕사엔 송곡주 말고 전래의 비법을 이용해 빚은 술이 하나 더 있는데 '송화백일주'(松花百日酒)다. 송화백일주는 수왕사 벽암 스님이 전래의 비법을 가지고 빚은 전통소주인데, 송홧가루, 찹쌀, 산수유, 구기자, 오미자 등 각종 열매를 섞어 만든 술이다. 일백일 동안 발효시켜 장작불로 정제해 만든다고 한다.

절집엔 스님은 없고 산을 고요히 울리는 독경소리와 약수를 마시러 온 등산객의 말소리만이 정적을 깨운다. 절집 뒤엔 술을 빚는 항아리가 바위 자락 아래에 오도카니 앉아 있고, 그 위에 진묵조사상을 모신 듯한 각(閣)이 봄바람에 서있다.

물을 마시며 아이들에게 수왕(水王)이란 '물의 왕'이란 뜻이라고 알려준 뒤 곧바로 내려오지 않고 좀 더 산을 오르다 오른쪽으로 꺾어 내려오니 평평한 길이 나온다. 길 양옆으론 아직 꽃눈을 한 진달래 나무가 때를 기다리며 군락을 이루고 있다.

산을 내려오다 만난 진달래
산을 내려오다 만난 진달래 ⓒ 김현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밑으로 더 내려오자 진달래꽃들이 화사한 자태를 하고 옹기종기 피어있는 모습이 보인다. 아이들은 꽃을 보자 이내 함성을 지르며 꽃을 향해 뛰어간다. 아내는 노래를 중얼거리기도 하고 춤을 추기도 한다. 때론 셋이 합창을 하며 춤을 춘다. 그렇게 산은 행복을 안겨준 뒤 조용히 우리 네 식구를 떠나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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