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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예전에는, 그것도 몇 백 여년 동안 궁은 수많은 사람들의 생활로 채워져 있었을 것이다. 그때는 틀림없이 사람들이 그곳의 주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곳에서 사람들의 생활이 제거된 지금, 궁에 가면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이제는 궁의 주인이 그곳의 건물이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4월 12일 수요일, 창덕궁을 찾았을 때도 그런 느낌은 예외가 아니었다. 그곳의 안내도 인정전과 대조전, 연경당 등의 건물을 따라 이루어지고 사람들의 걸음도 건물을 따라 흘러간다. 그러나 이 봄의 창덕궁에서 내 눈에 그 궁의 주인은 꽃이었다. 꽃들은 궁의 주인인 건물들을 슬쩍 밀어내고는 내 시선을 내내 그들에게 고정시켰다.

ⓒ 김동원
창덕궁을 돌아보는 동안 내가 가졌던 생각은 과연 꽃은 심는 것일까에 대한 의문이었다. 창덕궁의 꽃은 누군가 그곳에 심었다기 보다 그곳에 그려놓았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런 느낌은 특히 창덕궁에서 가장 사람들의 시선을 많이 집중시켰을 이 능수벚꽃의 앞에 이르렀을 때 더더욱 분명했다. 나무나 꽃을 심는다는 것이 그저 심는 것이 아니라 그리는 행위가 될 수도 있다.

ⓒ 김동원
나는 이번에 능수벚꽃을 처음 보았다. 다른 벚꽃과 달리 그것은 아름답게 피었을 때 하늘로 고개를 쳐드는 것이 아니라 땅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벚꽃은 가장 아름다울 때 위가 아니라 낮은 저 아래로 가고 싶어 한다.

ⓒ 김동원
능수벚꽃은 발처럼 휘장을 두르고 있었다. 발은 원래 바깥 풍경을 적당히 걸러내고 바람과 빛은 맞아들이기 위한 것이지만 이 능수벚꽃의 발은 그냥 그 발을 바라보기 위해 쳐두는 발이다. 때문에 능수벚꽃이 발을 치면 우리의 시선은 바로 그 발로 향한다.

ⓒ 김동원
담벼락은 오늘 산수유의 화폭이 되었다. 산수유는 화폭의 독특한 문양을 제대로 살려 노란 그림을 그렸다.

ⓒ 김동원
벚꽃만 다른 것이 아니라 창덕궁에선 목련도 남달랐다. 원래 흰빛은 저런 것이 아닐까 싶다. 향기도 매우 진하다.

ⓒ 김동원
누군가의 노래처럼 하얀 목련이 질 때 가슴이 아프다면 아마도 그 목련의 하얀색이란 바로 이러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목련이 진다면 헤어진 사람이 없어도 누구나 할 것 없이 가슴이 아련해질 것이다.

ⓒ 김동원
우리는 모이면 소란스러운데 꽃은 모이면 아름다움을 엮어낸다. 앵두나무는 작고 붉은 과실을 꿈꾸는 나무지만 그 붉은 꿈을 꾸는 봄날의 꽃은 희디 희기만 하다. 그 흰빛이 아우성처럼 피어나는 자리는 한자리에 모여있는 왁자지껄함으로 더욱 아름답다.

ⓒ 김동원
진달래이다. 정말 곱게도 차려입었다. 봄에 옷 한 벌 해 입고 싶은 여자들 심정이 이해가 간다. 그래서 봄엔 옷 한 벌 해주지 못하는 심정이 더욱 안타깝다.

ⓒ 김동원
사실 거의 모든 꽃들이 꽃보다 이파리가 먼저이다. 그리고 이파리는 대개 초록색이다. 그러나 봄에 꽃이 갖가지 색깔로 단장을 하는 순간 초록은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 더 이상 색이 아니다. 나는 이파리가 예쁘다고 들여다보는 사람은 거의 보질 못했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창덕궁에서 철쭉의 이파리를 들여다보던 나는 철쭉의 그 진한 분홍빛이 초록 이파리 속에서 잉태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초록꽃이 분홍꽃을 낳고 있는 셈이다. 모든 이파리는 사실은 꽃이다. 사람들은 그 색이 초록 일색이어서 그 꽃을 놓치고 있다.

ⓒ 김동원
개나리는 흔히 보는 꽃이다. 지나가는 관람객들 중에서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여긴 어떻게 개나리도 이렇게 예쁘냐” 창덕궁에선 개나리도 그곳에 피어있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그곳에 그려놓은 꽃이었다. 봄의 창덕궁에선 꽃과 눈을 맞추는 순간, 그 주변이 곧장 화폭으로 뒤바뀌고 꽃은 그림이 된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 동시에 게재했다. 블로그-->김동원의 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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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갖고 돌아다니면 세상의 온갖 것들이 말을 걸어온다. 나는 그때마다 사진을 찍고 그들의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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