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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로 인해 태어나 처음으로 사랑하게 된 사내를 잃을까 두려웠다는 것이 더 정확한 이유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이제 이런 결과를 가져왔다. 그렇다고 지금 후회하는 것은 아니었다. 진작 끝내야 할 사랑을 안고 있는 자신이 서글플 뿐이었다.

“당신을 한 번 더 보고 싶었소.”

“당신은 그들과 한패죠?”

“나는 당신을 이용한 적이 없소.”

단사는 갑자기 탁자 위에 놓인 책을 집어 들어 몸을 돌려 사내를 향해 홱 던졌다.

“여기 있어요. 이 안에 균대위 인물들의 신상이 기록되어 있어요. 설마 당신은 내 방을 들락거리며 이것까지 보지 않았다고 하지는 않겠죠?”

파닥거리며 날아가던 책자가 사내의 가슴팍에 부닥쳤다. 사내는 여전히 피하지 않았다. 허나 사내의 몸이 움찔거리며 헛바람을 뱉었다. 아무리 단사가 화가 나 던졌다 하더라도 책자에 맞은 충격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었다. 사내의 돌연한 변화에 단사는 멈칫했다. 그녀는 무의식중에 두세 걸음 다가서다가 멈췄다.

“당신.... 많이 다쳤군요.”

언뜻 벌어진 옷 사이로 상처가 보이는 듯 했다.

“나는 당신과 같이 하면서 안 것도 없을 뿐 아니라 알았다 해도 그것을 누구에게 말해 본적이 없소.”

언제나 말이 없던 사람이 오늘따라 많은 말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사내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고 싶었다. 하지만 마음과는 달리 뾰쪽한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그럼 이번 건은 어찌 된 거예요?”

“나는 오직 당신이 무사했으면 바란 것뿐이오. 다른 것은 없소.”

“내 수하들을 죽이고 송소저를 납치한 것은 당신들 짓인가요?”

“...........!”

함곡은 대답하지 않았다. 사실 그의 입장에서는 대답할 수 없는 것이었다. 단사와 같이 있으면서 알았던 정보를 저들에게 말하지 않았던 것처럼 저쪽에 대한 정보를 단사에게 주기도 어려웠다.

“왜 대답을 하지 못하는 것이죠? 왜.....?”

함곡은 천천히 손을 움직여 허리에 찬 검집을 풀었다. 그리고는 그것을 바닥에 던졌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겠소. 이제는 손에 검 대신 흙을 쥘 것이오. 아버님 말씀이 옳았소. 아마 흙은 나에게 회의(懷疑)라는 괴물을 안겨 주지 않을 것이오. 떠나기 전에 당신을 한번 만이라도 보고 싶었소.”

그래 그의 집안이 대대로 자기를 굽는 집안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유일하게 자신이 대를 이어야 하는데 자신은 그럴 수 없었다고도 했다.

“당신......?”

“당신에게 정말 미안하오.”

“뭐가요? 무엇이 미안한 거예요?”

그녀는 억지를 부리듯 악을 썼다. 지금 사내는 떠나려 한다. 자신의 곁을 영원히 떠나려 한다. 잡고는 싶은데 잡을 수가 없다. 아직도 그를 사랑하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나는 삼로단(三路團)의 부단주였소. 하지만 이제는 아니오. 이 말을 꼭 당신에게 하고 싶었소.”

그 동안 자신의 내력을 밝히지 못한데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을까? 그리고 그 말을 하려고 단사를 찾아왔던가? 부상당한 몸으로 다른 이의 눈에 띤다면 죽을 것을 뻔히 알면서....? 함곡은 자신의 뇌리에 단사의 얼굴을 각인시키려는 듯 한참이나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사내는 천천히 걸음을 떼었다. 그의 뒷모습을 보며 무슨 말인가 해야 하는데 아무 말도 나오지 않는다. 그러다 문득 사내가 돌아보자 그렁그렁 맺히는 눈물을 보이기 싫어 고개를 돌렸다.

“송소저는 납치하지 않았지만 납치된 것이나 마찬가지요. 그녀를 실은 마차는 정주 손가장을 향하고 있소.”

납치하지는 않았지만 납치된 것과 마찬가지라니 무슨 의미일까? 더구나 정주에 있는 손가장을 향하고 있다니..... 허나 단사는 그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 그녀의 뇌리에는 저 사내를 붙잡던지 아니면 자신이 그를 따라 갈 것인지에 대해 혼란스러워 하고 있었다.

아마 사내가 같이 가자고 했다면 따라 나섰을지도 모른다. 용서해 달라고 한다면 용서할 것도 같았다. 하지만 사내는 끝내 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방문을 나서다 다시 한번 그녀를 보고는 훌쩍 몸을 날렸다.

“이..이봐...요....”

그녀는 황급히 문으로 다가가며 부르려 했지만 목소리는 입안에서 뱅뱅 돌고 끝내 울음으로 변했다. 그녀의 눈에서 구슬 같은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야속한 사람이었다. 따라가지 못하는 자신이 미워졌다. 그 때였다. 익숙한 목소리가 그녀의 황망스런 정신을 일깨웠다.

“따라가지 그랬느냐? 쓸만한 사내던데....”

그녀는 화들짝 놀랐다. 눈물이 고인 시야 사이로 난간에 걸터앉아 탄식처럼 말을 건넨 사람은 풍철한이었다. 단사는 황급히 눈물을 닦아내며 고개를 돌렸다.

“이제는 취미가 한 가지 더 늘었군요. 언제부터 계셨어요?”

이미 안에서 있었던 대화는 모두 들었을 것이다. 단사는 아직도 그렁그렁한 눈물을 머금고 일부러 배시시 웃었다.

“금방 왔다. 주모에 대한 말만 들었지.”

아닐 것이다. 그를 고이 살려 보낸 것은 이미 모두 들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녀의 마음을 헤아려 막거나 죽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이 고마웠다. 그녀의 눈앞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다면 참을 수 없었을 것 같았다.

“오라버니......”

“그의 말을 듣고 보니 이상한 생각이 드는구나. 주모는 지금 조대주가 모시고 정주로 가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애써 사내에 대한 이야기를 피하려 한다. 차라리 그 사내가 누구냐고 물었다면 마음이라도 편했을 것을..... 아마 풍철한이 되도록 그녀에게 균대위의 일에 대해 상의하는 것을 피했던 것은 자신에게 사내가 있음을 알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나 지금 그녀는 감정에 치우쳐 풍철한이 지금 한 말과 그것이 내포하는 의미를 더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조국명이 주모를 모시고 있다면 일단은 안심이다. 헌데 어떻게 조국명이 주모를 모시고 정주의 손가장을 가는 것일까? 어떤 연유로 이곳에 오기로 한 조국명이 송하령이 탄 마차를 호위하게 된 일일까?

그리고 균대위의 모든 정보를 쥐고 있는 자신도 보고 받은 적이 없고, 모르는 사실을 풍철한이 알고 있는 것일까? 가만히 있는 것 같아도 균대위의 모든 움직임과 정보는 그가 쥐고 있는 것일까?

“그 사람은....”

단사가 변명하듯 입을 열자 풍철한이 고개를 흔들었다.

“너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나는 전부터 그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이번 본 장 혈사에도 끼어 있었지만 그리 나쁜 심성은 아닌 것 같더구나..... 더구나 너를 사랑하고 있는 것은 진심인 모양이다.”

풍철한은 난간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단사 앞으로 걸어와서 어깨를 톡톡 두들기더니 걸어가기 시작했다.

“푹 쉬거라..... 어차피 오기로 한 위장들이 도착하면 부상자만 남기고 정주로 가봐야 할 테니 말이다.”

걸어가는 풍철한의 뒷모습이 매우 고독해 보였다. 단사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차마 말을 뱉지 못하고 입속으로 한마디를 중얼거렸다.

(고마워요.....풍오라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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