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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도쿄 야스쿠니 신사에 도착한 준이치로 고이즈미 일본 총리.
지난해 10월 도쿄 야스쿠니 신사에 도착한 준이치로 고이즈미 일본 총리. ⓒ AP 연합뉴스
일본 정부가 고이즈미 총리의 아프리카 방문을 공식 발표했다. 일본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아프리카연맹(AU)과의 정상회담도 예정되어 있다. 4월 29일부터 5월 5일까지, 노동절 휴일마저 반납하고 지구 반대편으로의 강행군에 나서는 것이다. 임기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그의 적극적인 외교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지 않을 수 없다.

고이즈미 총리 취임 후, 일본은 동북아의 '섬'이 되었다. 반복되는 야스쿠니 참배로 중국과의 정상 회담은 단 한차례도 열리지 못했고, 한국과의 셔틀 회담(양쪽을 오가면서 이뤄지는 회담)도 잠정 중단된 상태다. 북방 영토 문제 등으로 갈등을 빚고 있는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과의 회담도 공동성명조차 발표되지 않는 보기 드문 사례를 남기며 성과 없이 끝났다.

그나마 두번이나 평양을 방문하며 공을 들였던 북한과의 관계정상화도 납치 문제와 부시 행정부의 강력한 제동으로 말미암아 무위로 끝날 공산이 크다. 미국과의 돈독한 동맹관계를 제외하고는 그야말로 고립무원 상태인 것이다. 일본 내부에서도 국제무대에서의 고립을 우려하며 '외교의 실종'을 질타하는 비판적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고이즈미 총리는 느닷없이 아프리카 행을 결정했다. 야스쿠니 참배 중단을 전제로 후진타오 중국 주석이 정상회담을 제의한 것을 즉각 거절한 것과는 사뭇 대비되는 대목이다.

그는 왜 지금 아프리카로 가는가.

먼저 거론할 수 있는 것은 중국 견제와 석유 확보다. 경이적인 경제성장을 지속하고 있는 중국은 석유를 비롯한 자원 확보 외교에 총력을 기울여왔다. 에너지에 대한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중동은 물론이고 중남미와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전 방위적 외교 공세를 펼쳐 왔던 것이다.

중국은 이미 반미 좌파 정권들이 득세하는 라틴아메리카와 이념적, 경제적으로 견실한 유대관계를 확보했고, 아프리카에서도 무상원조에 가까운 경제협력 제공으로 든든한 민심을 얻고 있다. 2010년경에는 아프리카의 석유 산출량이 세계 전체의 20%에 달할 전망이다.

현재 중국정부의 초청을 받은 1만여명의 아프리카 학생들이 베이징에서 무상교육을 받고 있는 걸 보면, 그동안 중국의 에너지 외교가 얼마나 치밀하게 전개되어 왔는지 능히 짐작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중국은 중남미와 아프리카 산유국들과 '제3세계 연대'를 명분으로 석유 계약의 위엔화 결제를 추진하고 있다. 그동안 세계 석유시장의 단일 통화로 군림해왔던 달러의 위상까지 넘보고 있는 것이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미국이 위엔화 결제를 체결한 짐바브웨를 '폭정의 전초기지'로 지목하는 등 엄중한 경고 메시지를 보냈지만, 중국은 오히려 짐바브웨에 전투기와 자금 등을 제공하며 아프리카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중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그동안 일방적인 친미노선을 취해왔던 일본 입장에서도 에너지 자원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특히 석유를 대체할 것으로 각광받고 있는 천연가스의 최대 보유국인 러시아가 최근 중국과 파이프라인 공급 계약을 전격 체결하면서 일본의 위기의식은 더욱 고조되었다.

날로 확대되는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하고, 에너지 자원의 안정적인 확보를 위해서 특단의 대책이 요구된 것이다. 고이즈미 총리가 부랴부랴 아프리카로 향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더불어 일본의 '정치대국화'를 향한 열망도 이번 아프리카 방문의 저변에 깔려있는 중요한 목적 가운데 하나다.

지난해 전후 60년을 맞아 범국가적 차원에서 야심차게 추진됐던 유엔 개편과 상임 이사국 가입 실패는 일본 정부와 국민들의 자존심에 적지 않은 상처를 남겼다. 53장의 투표권을 갖고 있는 아프리카연맹에 각별히 공을 들였음에도 불구하고, 막판 표심이 흔들렸던 것은 중국의 입김 때문이었다는 것이 일본에서의 일반적인 관측이다.

아시아 국가들과 불편한 관계가 이어지고 있는 일본으로서는 상임이사국 가입과 정치대국화로의 결실을 맺기 위해서 아프리카연맹의 전폭적인 지지를 끌어내는 것에 사활을 건 셈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이번 아프리카 방문에서 일본의 최대 무기인 '돈 꾸러미'를 풀어 특유의 현금 외교를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아프리카 연맹은 아시아 국가들과는 달리 과거사 문제나 영토 분쟁 등의 껄끄러운 이슈가 없음도 긍정적인 대목이다.

과연 일본의 풍부한 자금은 검은 대륙의 마음까지도 살 수 있을 것인가? 일본이 막차를 타고 아프리카 외교전에 뛰어들면서 미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 사이의 불꽃 튀는 패권 경쟁과 에너지 전쟁은 한층 더 뜨거워질 전망이다.

덧붙이는 글 | 중국 교민지에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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