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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린우리당 서울시장 후보경선 출마를 선언한 강금실 전 법무장관은 9일 종로구 신문로 선거사무소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 한나라당 서울시장 경선 후보를 사퇴하고 오세훈 전 의원 지지를 선언한 박계동 의원과 오 전의원이 11일 오전 국회 기자회견장에서 포옹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재밌을 것 같다."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의 서울시장 출마를 바랐던 사람들의 입에서 쉽게 튀어나오는 말이다. 구체적인 이유에 앞서 이들은 선거판에서 뭔가 흥미거리를 찾고 싶어했다.

"재밌게 됐다."

오세훈 전 한나라당 의원이 서울시장 출마 결심을 하자 '강금실 독주'를 제어할 그럴싸한 대항마가 나온 데 대한 관전자들의 호기심어린 표현이다.

"재밌게 됐다" vs "인기투표하냐"

이같은 열기에 대한 해석은 엇갈린다. 그 중심에 '이미지 정치' 논란이 있다. '굴러 들어온 돌'에 의해 채일지 모르는 '박힌 돌'의 비판이 가장 거세다.

10여차례 서울시 정책발표회를 열어온 이계안 열린우리당 의원은 "이미지나 이벤트 경쟁이 아니라 오로지 정책과 콘텐츠로 승부하겠다"고 강 전 장관을 겨냥하고 있다.

한나라당 후보들은 더 거칠다. 홍준표 의원은 "서울시장 선거는 '인기투표'가 아니"라며 강금실-오세훈의 대결을 "탤런트 선발대회구도"로 깎아내렸고, 맹형규 전 의원은 "이미지 정치는 '묻지마 투표'를 조장하는 제2의 지역주의"라며 "유령에 홀려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노동당의 후보인 김종철 전 최고위원 역시 "선거의 본질은 정책과 비전을 검증하는 데 있다"며 "정치권에 때아닌 염색이 한창"이라고 말해 이미지 정치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다.

언론도 크게 다르지 않다. "쇼와 이벤트가 선거판에 범람하면서 정책선거 약속은 실종되고 말았다"고 걱정이 늘어졌다. 21세기는 감성과 이미지의 시대라고 전망하던 것과는 사뭇 다른 태도다.

이미지 정치를 '조장'한 당사자들의 항변은 이렇다.

강 전 장관은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법무부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어떤 성과와 한계가 있었는지 분석없이 '이미지 정치'라고 비난한다"며 "정작 내용에는 관심없는 사회가 아닌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런 기초작업이 이뤄지는 사회로 가는 데 조금 기여할 수 있었으면 했다"고 출마의 동기를 밝히기도 했다.

오세훈 전 의원은 11일 '강북도심 부활 프로젝트' 정책 기자회견을 가진 뒤 기자들이 "이미지 정치 아니냐"고 질문하자 "어떤 이미지가 만들어진 것인지, 이미 실체적 진실이 형성된 이미지인지는 구분되어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자신은 후자에 해당한다는 항변이었다.

비판받는 '이미지 정치'에 대해 이 두 후보는 정면 돌파 의지를 보이고 있다.

강 전 장관은 이미지에는 정치인의 정치철학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되려 긍정적으로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붉은색과 푸른색의 혼합색인 보라빛을 앞세워 서울의 강·남북 격차, 정치와 비정치의 경계를 허물겠다고 밝힌 바 있다.

'녹색'을 내세운 오 전 의원은 환경에 대한 담론이 형성되기 전부터 환경운동연합 등에서 시민운동을 해왔다는 점을 내세워, 자신에 메고 있는 녹색 넥타이에는 경험과 철학이 녹아 있다고 적극적으로 해명한다.

▲ 이미지를 안고 굴러온 돌에 채일지 모르는 박힌 돌. 일찌감치 서울시장 후보경선을 준비했던 이계안 열린우리당 의원(왼쪽)과 홍준표 한나라당 의원은 이미지 정치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선거 관심도 상승... 이미지는 문자보다 강했다

그렇다면 '이미지 정치'란 뭘까.

민주노동당 부설 진보정치연구소의 김윤철 연구기획실장은 "기존의 이미지 정치 개념에는 '실제와 다른 허구적 내용을 가지고 의도된 효과를 내는 것'이라는 부정적 의미가 깔려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이미지 정치를 긍정적으로 해석하려는 쪽과 충돌이 발생한다는 것.

김 실장은 이어 강금실·오세훈의 이미지에 대해 "현재의 정당 정치가 희망을 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변화에 대한 대중적 희망이 흡입된 결과"라며 "이같은 바람을 정치권이 적극적으로 받아 다시 태어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적극적인 해석을 주문했다. 이들의 이미지에는 변화에 대한 무형의 콘텐츠가 잠복해 있다는 얘기다.

강금실·오세훈 이 둘의 출마 동인은 대중의 호출이 결정타였다. 정치할 생각이 없다던 강 전 장관을 끌어낸 것도, 서울시장 불출마를 선언한 오 전 의원을 다시 번복케 한 것도 여론이었다.

대중은 이들의 '퇴장'도 기억하고 있었다. '개혁'. 강 전 장관은 검찰 개혁, 오 전 의원은 정치 개혁을 주도했다. 강 전 장관은 청와대와 검찰 개혁의 방향이 맞지 않아 자의반 타의반으로 법부무 장관직을 내놨고, 오 전 의원은 정치개혁 관련법 개정을 추진한 뒤 스스로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들은 누군가의 표현처럼 "권력 앞에 게걸스럽지 않았다". 강 전 장관에 대한 여권의 총선 출마 러브콜이 끈질겼지만 본인이 완강히 고사했고, 오 전 의원 역시 재선이 보장되었지만 '정치권 물갈이'의 대의를 선도하며 기득권을 내놨다.

사인(私人)으로 돌아가서도 정치적 영향력은 줄어들지 않았다. '탈정치' '비정치'를 선언한 이들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지속되었다. 춤이면 춤, 스포츠면 스포츠….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은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그러다가 '이름'이 불려졌고, 정치의 '꽃'인 선거에서 그에 부응하는 모종의 임무를 부여받았다.

정치권, 숨어있는 대중의 희망을 읽어라

첫 효과는 선거에 대한 관심도 상승으로 나타났다. 2~3월 50%대에 불과하던 서울시장 선거 관심도가 최근 갤럽 조사에선 70%에 달했다. 68%에 달하던 첫 지방선거 투표율이 점차 떨어져 지난 2002년 선거에선 49%였고, 이번엔 그 이하로 떨어질 거란 분석이 나오는 상황. 투표율 하락이 대표성 상실로 이어지는 대의 민주주의의 위기를 극복한다는 점에서도 이들의 출현은 의미 심장하다.

<씨네21> 편집장 출신의 소설가 조선희씨는 "이미지는 문자(논리)보다도 강력한 메시지"라고 말한다. 가령 최초의 여성 법무부장관이나 여성 총리가 "그 존재 자체로 이미 개혁적"인 메시지를 던져주는 것과 같은 효과다. 개혁이란 '제도'와 함께 '관념'이 변화해야 한다는 것인즉, 이미지는 우리의 고정관념을 바꾸는 절반의 운동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서울시정에 대한 그럴싸한 정책을 내놓기도 전에 강금실-오세훈이 정치권의 뒤통수를 후려친 이미지는 무엇인지, 그 실체를 자문해 보는 것 또한 대중에겐 전에 없던 재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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