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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왕조에서 미군정기까지 350년 하의도 농민들의 투쟁사를 한 권의 책으로 엮은 하의도 농민운동사 표지
ⓒ 최성환
농민들에게 토지는 곧 생명이다. 그 토지가 거친 바다를 건너 척박한 땅을 일구어 만든 땅이라면 그 의미는 더 말할 것 없다. 전라남도 신안군 하의도의 농민들은 이렇듯 자신들이 피땀 흘려 개척한 토지에 대한 정당한 권리를 찾기 위해 350여년의 세월동안 줄기차게 투쟁했다. 그것이 이른바 '하의도 농민운동'이다.

하의도 농민운동의 역사는 멀리 조선왕조 정조 때의 세도가에 대한 항쟁에서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쳐 가깝게는 미군정에 대한 항거까지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관통하고 있다.

최근 하의도 출신의 한 수필가가 하의도 농민운동사의 흐름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하의도 농민운동사>를 발간하여 주목받고 있다. 하의도 농민운동사가 단행본으로 발간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저자인 김학윤(1936년 생)은 하의도에서 태어나 광주농고와 전남대 농대를 졸업하고, 농업조합에서 줄곧 직장생활을 했다. 이 때문에 농민들의 애환과 그들에게 토지가 지닌 의미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몸소 실감할 수 있었다. 농협에서 정년퇴임을 한 후 그는 자신의 선조들이 수백여 년 동안 불의한 권력에 맞서 싸워온 이 자랑스러운 역사를 기념하고, 널리 알리는 일을 남은 평생의 과제로 삼았다.

첫번째 과제는 하의도 농민운동기념관을 건립하는 일이었다. 뜻있는 사람들을 모아 하의3도 농민운동기념사업회를 조직하고, 추진회장을 맡았다. 그 노력 덕분에 현재 신안군 하의도에 농민운동기념관이 건립되어 개관을 앞두고 있다.

또 하나의 과제는 일반인들도 '하의도 농민운동'의 역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관련 책을 발간하는 것이었다. 수년 동안 국내외에 남아 있는 관련 자료를 찾아서, 수필집 <창작수필>에 '하의도 농민운동사'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년간 연재한 내용을 토대로 드디어 단행본을 발간하게 됨에 따라 그 노력의 결과물을 대중 앞에 공개하게 되었다.

<하의도 농민운동사>는 섬이라는 특수한 조건에도 불합리한 사회체제에 대해 저항의 함성을 높였던 신안 도서 지역 농민들의 숭고한 뜻을 되새기게 한다. 비록 하의도라는 작은 공간 속에서 발생하는 하나의 사건이지만, 우리는 이 한 권의 책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의 흐름을 살펴 볼 수 있다.

<하의도 농민운동사>에는 책머리에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농민운동사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 설명과 연표가 정리되어 있고, 본문은 제1부 '하의도'에서부터 제10부 '농민의 품으로 되돌아온 하의도'까지 총10부로 구분되어 하의도 농민운동사를 알기 쉽게 서술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은 "완성본이 아니라 이제 시작일 뿐"이라며, "더 많은 사람에게 하의도 농민운동의 역사가 알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창작 동기를 밝히고 있다. <하의도 농민운동사>는 도서출판 '책과함께'에서 발간했다.

▲ 섬마을 하의도의 한 교회에서 지역민과 청소년들에게 하의도 농민운동의 의미를 전달하고 있는 저자 김학윤 선생
ⓒ 최성환

▲ 개관을 준비하고 있는 하의도 농민운동기념관을 둘러보고 있는 방문객
ⓒ 최성환

▲ 하의도 농민운동기념관에 전시된 농지 분배 기록물
ⓒ 최성환


후손의 감정을 어떻게 예우해야 할까

친일파에 대한 공부를 하고, 과거 그들의 행적이 지역에 미친 영향에 대한 어떤 글을 정리하다 보면 항상 염두에 두는 부분이 그 후손들이다. 후손들에게 행여 마음의 상처를 주지는 않을지 염려가 앞서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와는 정반대로 참 황당한 기분이 들게 하는 전화 한 통을 얼마 전에 받았다.

중요한 회의를 하고 있던 중에 계속해서 똑같은 번호로 전화가 오자, 매우 긴급한 일이 있는 것 같아 잠시 회의자리를 피해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건 사람은 하의도 농민운동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인 지주 홍우록의 친손자였다.

그는 자신이 홍우록의 친손자인데, 김학윤이라는 사람이 도대체 누구인데 자신의 할아버지를 매국노로 만들었느냐며 막 화를 내었다. 그 손자라는 분은 매우 흥분한 상태였고, 영문도 모르고 전화를 받은 필자에게 심한 욕설까지 퍼부었다.

내용을 확인해 보니 이런 사연이 있었다. 그는 김학윤 선생이 신안문화원에서 지난 2005년에 발간한 <신안문화 15호>라는 책에 투고한 글을 우연히 인터넷을 통해 읽게 되었는데, 자신의 할아버지를 매국노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 분노한 것이었다. 집안의 명예를 훼손했으니, 가만두지 않겠다며 당장 고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필자가 <신안문화>의 편집장을 맡고 있기 때문에 연락처를 알 수 있었던 모양이다. 당혹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매우 어이없는 기분이 들었다. 홍우록이라는 인물은 하의도 농민들을 수탈한 악덕 지주로 평가받고 있다. 하의도 농민들이 자신들이 개척한 토지에 대한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며, 수백 년간 투쟁해오던 시기의 마지막 한국인 지주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그는 하의도 토지에 대한 자신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불법적인 세금을 거두어들이고, 농민들이 이를 거부하자 폭력배까지 동원하여 농민들을 협박했던 인물이다. 특히 농민들과 토지 소유권을 둘러싼 재판을 벌였는데, 판결에서 패소하게 될 것을 예상하여 불법적으로 하의도 토지를 외부인에게 헐값에 팔아치워 버린 인물이었다.

하의도 농민들은 재판에서 승리하자 이제 토지에 대한 정당한 권리를 찾았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홍우록이 하의도 땅을 다른 사람에게 팔아치워 버렸다는 사실을 몰랐다. 결국 토지는 일본인 지주의 수중에 들어갔다.

그 탓에 수백 년간 싸워 온 투쟁에 대한 하의도 농민들의 기대는 순식간에 날아갔다. 하의도 농민들을 일본 제국주의의 비호를 받는 일본 지주들에 맞서서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하는 처량한 신세로 전락하게 한 장본인이 바로 홍우록이었다. 이러한 내용은 당시 신문기사나 재판 관련 기록에 분명히 남아 있어 명백한 근거가 있는 상황이었다.

후손까지 그 죄를 물어서는 안될 일이지만, 만약 후손이 있다면 과거를 뉘우치고, 지금이라도 하의도민들에게 고개 숙여 사죄를 하는 것이 도리일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명예훼손이니, 글쓴이를 그만두지 않겠다느니 하면서 호통을 치는 일이 벌어졌다. 적반하장이라는 말이 이래서 생겼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는 일단 그 후손의 감정을 추스르게 한 후 이틀에 걸쳐 전화통화를 나누면서, 자세한 상황설명을 전달했다. 그 후손이라는 사람은 자기 집안의 과거 행적과 내력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외국에 나가 오래 살다가 다시 귀국했기 때문에 하의도 농민운동사에서 자신의 선조가 어떻게 평가되고 있는지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던 중에 매국노로 묘사된 한 수필을 보고 무작정 흥분하게 된 것이다.

일단 하의도 농민운동과 관련된 그동안 연구물, 각종 언론에 보도되었던 자료들을 보내 주어 그 내용을 토대로 먼저 사실관계를 확인해 보라고 했다. 홍우록의 행적에 관한 이름이 언급된 당시 신문자료, 법원 판결문 등에 형광펜으로 색을 칠해서 보내주었다. 보내 준 자료로도 수긍이 가지 않으면, 정부에서 운영하고 있는 '친일반민족행위진상조사위원회'에 사실 관계를 확인해 달라는 민원을 내자는 제안을 담은 편지도 함께 보냈다.

내용을 확인한 후 다시 연락하겠다던 후손은 그 뒤로 아직까지 소식이 없다. 물론 그때 미안했다는 사과 전화도 받지 못했다.

새롭게 <하의도 농민운동사>를 쓴 김학윤 선생은 과거의 잘잘못을 따지기 위해 이런 책을 쓴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다만 그러한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고, 그 속에 담긴 우리 선조의 숭고한 정신을 후세에 전하기 위함임을 강조한다.

그 후손이 이 <하의도 농민운동사>를 읽는다면 또다시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고 나설지,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생각을 할지 무척 궁금해진다. / 최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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