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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대한민국에서 봉급쟁이로 산다는 것>
ⓒ 랜덤하우스중앙
우리나라의 봉급쟁이 숫자를 따지면 얼마 정도 될까? 평범한 사람을 칭할 때에도 '봉급쟁이'라는 말을 붙이는 걸 보면 이 단어가 이미 '평범한 사람'의 대명사가 된 듯하다.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을 볼 때 봉급 받고 사는 이들이 대부분인 걸 보면 우리나라의 봉급쟁이 인구는 꽤 될 것 같다.

책 <대한민국에서 봉급쟁이로 산다는 것>은 아주 평범한 50대 가장이 봉급쟁이 인생에 대해 유머러스하게 풀어 놓는 수필집이다. 책의 내용은 일반적인 봉급쟁이의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저자가 깨달은 인생철학을 아주 위트 있게 실어 술술 읽힌다.

저자 특유의 재미있는 인생 경험담과 재치 있는 문체는 같은 봉급쟁이로서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봉급쟁이로 살면서 얻은 재미와 애환, 윗사람을 대하는 방법, 아랫사람과 관계를 맺는 법, 적은 봉급으로 한 가정을 꾸려나가는 노하우 등이 솔직하면서도 재미있게 전개되어 일반 독자는 이 글에 매우 공감하게 된다.

봉급쟁이로 사는 게 항상 고리타분하고 답답한 것만은 아니다. 아니, 어찌 보면 봉급쟁이만큼 마음 편한 직업도 없다. 꼬박꼬박 출근하여 제 할 일만 잘하면 저절로 들어오는 돈에, 안정적인 회사의 경우 40대가 되어 밀려날 때까지 큰 걱정 없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 자영업자들이 갖고 있는 수입 지출에 대한 온갖 고민과 복잡한 세금 계산 등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것도 봉급쟁이다.

"봉급쟁이만큼 근로기준법을 정확히 지키는 직업도 드물어서 달력의 빨간 글씨는 물론이고 주 5일, 각종 법정 휴일과 회사에서 따로 주는 휴가 등 따지고 보면 노는 날이 많기도 하다. 사실 이것저것 빼고 나면 실제 근무하는 날짜는 1년에 250일이 채 안 된다. 봉급쟁이 입장에서 출근 안 하고 월급 받는 것처럼 즐거운 일이 어디 있을까?"

이왕 회사에 들어가서 봉급쟁이 생활을 시작한 이상, 여러 불만 사항이 있을지라도 이처럼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자영업자들이 돈을 벌기 위해 피땀 나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에 반해 봉급쟁이들은 회사 일에 충실하기만 하면 휴가도 즐길 수 있고 적지만 월급도 꼬박꼬박 챙길 수 있다.

저자는 한 때 직장 상사가 마음에 안 들어 고생했던 경험을 토로하면서 아내의 현명함 때문에 그 위기를 극복했다고 한다. '그 상사가 월급을 주는 것도 아니요, 또 그 상사 때문에 회사를 다니는 것도 아니니, 그가 싫다고 회사를 때려치우는 것은 당신만 손해'라는 아내의 말에 마음을 가라앉힌 남자.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부분일 것이다. 상사가 싫어 회사를 때려치우면 결국 자기 자신만 손해이다. 참고 견디다 보면 상사는 나보다 먼저 회사를 떠난다.

이 책에 나온 대한민국 봉급쟁이 선언은 '이왕 봉급쟁이로 살 것이면 그냥 멋지게 살자'는 사고를 반영한다.

"모든 불행은 남의 탓이다. 잠깐만 '쪽팔리면' 만사가 편하다. 이길 수 없으면 뻗대고 우기고 삐쳐버리자. 따지면 따질수록 일이 커진다. 잘 찍은 눈도장 하나 열 인감 안 부럽다. 터놓고 이야기하자고 할 때 입 바른 말 쏟아내 보자. 세계는 넓지만 봉급쟁이 세상은 터무니없이 좁다. 멀쩡할 땐 힘드니 쓰러질 때 넘어뜨리자. 마이너스 통장, 조연 인생에 당당하자. 오래 있는 게 복수다."

어차피 회사에서 20~30년 버틸 생각이라면 이 정도의 '철판'을 깔 수 있어야 한다. 너무 힘들게 낑낑거리며 회사 생활을 해 봤자 자신의 정신 건강에 이로울 것이 하나도 없다. 그리고 마지막 선언처럼 회사에 '오래오래 머무르면서' 돈도 벌고 자신의 여가도 즐기고 알콩달콩 가정을 꾸려 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봉급쟁이가 누릴 수 있는 최상의 행복이 아니겠는가.

이 책을 회사의 CEO들이 본다면 은근히 열이 받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냥 대충대충 월급이나 받아 챙기는 회사 직원들이 얄밉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그저 월급만 챙기며 회사를 다닌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소소한 일들을 모두 책임지고 발 빠르게 움직이는 작은 개미와 같은 직원들이 있기에 한 기업이 제대로 운영되고 유지된다.

저자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들도 바로 그런 것이다. 기왕 '개미'로서의 인생을 선택한 이상, 세상의 봉급쟁이들이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누리며 사는 것. 30년 인생을 회사에서 보낸 '봉급쟁이 선배'가 던지는 인생 메시지에 많은 공감이 간다. 모든 봉급쟁이 인생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대한민국에서 봉급쟁이로 산다는 것

권용철 지음, 홍윤표 그림, 랜덤하우스코리아(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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