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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4월 7일 교정의 벚꽃 야경
2006년 4월 7일 교정의 벚꽃 야경 ⓒ 김환희
아이들의 저녁 시간이 지나자 교정에 활짝 핀 벚꽃 사이로 오색 전등불이 켜졌다. 올해는 이상기온 탓에 4월 초까지 꽃샘 추위가 기승을 부려 벚꽃의 개화 시기가 예년에 비해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그 꽃망울은 탐스러웠다.

매년 담임을 하면서 벚꽃을 배경으로 반별로 단체사진을 찍는 것이 연례행사처럼 되어버린 지 오래다. 그렇지 않아도 매일 열 한시까지 하는 야간자율학습에 지쳐있는 아이들이기에 잠깐의 휴식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었다.

문득 아이들을 위해 깜짝쇼를 해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방법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도무지 아이들에게 트집을 잡을 만한 건수를 찾을 수가 없었다. 자칫 잘못하면 아이들의 마음을 다치게 할 수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할 수 없이 요즘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청소문제를 들어 아이들을 운동장에 집합시키기로 했다.

그날 저녁이었다. 야간자율학습 1교시가 시작되기 전에 우선 실장에게 엄한 경고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저녁 식사 후, 모두 현관 앞에 집합. 담임"

잠시 뒤, 실장으로부터 문자메시지에 대한 답장이 왔다.

"선생님,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십니까?"

갑작스런 나의 경고성의 문자메시지 내용에 실장이 당황했던 모양이었다. 혹시라도 아이들이 나의 깜짝쇼를 눈치라도 챌까 더 엄한 경고성의 문자메시지를 다시 보냈다.

"7시까지 집합완료. 시간 못 지키면 큰 벌을 받게 됨. 담임"

7시가 되어가자 어둠 속에서 우리 반 아이들이 하나 둘씩 현관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나는 아이들을 완벽하게 속이기 위해 한 손에 회초리를 들고 현관 앞에서 아이들을 기다렸다. 아이들은 손에 들고있는 회초리를 보면서 장난이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들었는지 긴장을 하며 줄을 맞춰 서기 시작했다. 그러나 몇 명의 아이들은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기도 했다.

현관 앞에 집합한 모든 아이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고개를 떨구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우스운지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완벽한 깜짝쇼를 위해 침착하게 행동하기로 했다.

"자, 열외 없이 다 모였지? 요즘 교실 청소상태가 잘 안 되고 있는 거 알지? 그래서 지금부터 간단한 벌을 주겠다. 인정하지?"
"선생님, 어떤 벌을 주실건가요?"

벌을 받는다는 말에 겁을 먹었는지 한 녀석이 먼저 선수를 치며 물었다.

"궁금하니? 그럼 우선 너부터 여기에 서서 기준을 잡아. 알았지? 그리고 나머지는 OO를 중심으로 줄을 서는 거야. 자, 실시."

아이들은 내 주문에 신속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나는 계속해서 아이들에게 주문을 했다. 영문을 모르는 아이들은 내 주문을 잘 따랐다.

"자, 그럼 지금부터 세상에서 가장 멋진 자세를 취하기 바란다. 그리고 그 자세로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것이 오늘의 벌이다."
"예~에? 무슨 벌이 이래요?"

"왜? 이 벌이 마음에 들지 않니? 그럼 진짜 벌 한번 받아볼래?"
"선생님 그러시는 것이 어디 있어요? 저희들은 진짜인 줄 알았잖아요?"

"내 말이 맞지?"
"너 어떻게 알았니?"

사실 그랬다. 아이들은 나의 깜짝쇼를 미리 눈치를 채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오히려 내가 눈치를 챌까 조심스럽게 내 주문을 따라와 주었던 것이었다. 그제야 아이들은 눈치를 챘는지 얼굴 위로 웃음을 지어 보였다.

2006년 4월 7일 교정의 벚꽃을 배경으로
2006년 4월 7일 교정의 벚꽃을 배경으로 ⓒ 김환희
반짝이는 오색전등 불빛에 비춰진 아이들의 얼굴이 그렇게 천진난만하게 보일 수가 없었다. 오랜만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내 기분까지 좋아졌다.

"자, 얘들아 준비 됐니? 치∼즈. 하나 둘 셋…."
"치~즈……."

아이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승리의 'V'자를 손가락으로 그리며 카메라가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액정 모니터 위로 나타난 아이들 모두가 행복해 보였다. 어설픈 감독에 의해 이루어진 잠깐의 깜짝쇼가 훌륭한 배우들의 연기에 의해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의 한 페이지로 장식되는 날이었다.

덧붙이는 글 | e조은뉴스와 한교닷컴에도 싣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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