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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신문
[박윤수 기자]아프리카 여성영화들이 국내 영화계에 참신한 문화적 충격을 주고 있다. 6일 개막해 14일까지 계속되는 제8회 서울여성영화제에서 가장 두드러진 섹션은 ‘아프리카 특별전’. 개막작을 포함한 총 14편의 아프리카 여성영화에 표현된 여성할례, 에이즈, 조혼 등 아프리카 여성들의 적나라한 현실이 관객들의 가슴을 뒤흔든다.

아프리카 영화산업의 현실은 국내에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아프리카 특별전을 기획한 최선희 프로그래머는 “유럽의 아프리카 영화제를 참관하고 다양한 소재와 이를 다루는 방식에 놀랐다”고 밝혔다. 또한 “69년부터 격년제로 아프리카 영화제가 열리고 있으며 2003년부턴 여성영화제도 열리고 있다”고 아프리카 영화산업을 얘기했다.

아프리카 여성 감독이 만든 최초의 영화는 72년 사라 말도르 감독의 ‘삼비장가’이며 본격적인 영화 제작을 시작한 것은 80년대부터다. 문학인이나 인류학자, 법조인 등 지식인 여성들은 문맹률이 높은 여성들에게 보다 쉽게 다가가기 위해 영화를 이용했다. 현재 아프리카 전역에 걸쳐 100여 명의 여성 감독이 활동 중이며 아프리카 여성들의 현실을 알리고 그들의 의식을 일깨우는 데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개막작인 킴 론지노토·플로렌스 아이시 감독의 ‘법조계의 자매들’(2005)은 카메룬의 한 법정을 배경으로 여성 검사와 재판관이 무슬림 마을의 여성들과 연대해 폭력에 저항하는 내용을 다뤘다.

부르키나파소의 판타 나크로 감독은 ‘아프리카 영화의 뉴웨이브’라 불리며 가장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단편 ‘코나테의 물건’(98)은 남편에게 콘돔 사용을 요구하는 아내를 통해 에이즈 문제를 코믹하게 돌아보는 영화이며 장편 데뷔작인 ‘그 밤의 진실’(2004)은 아프리카 민족갈등을 여성의 눈으로 바라보는 작품이다.

‘아프리카 여성영화의 대모’로 일컬어지는 세네갈 출신 사피 파이 감독의 ‘셀베’(83)는 남편이 도시로 떠난 뒤 가족 부양과 가사의 이중부담을 안고 살아가는 주인공의 일상을 보여준다. 셀베는 아프리카 저개발국의 많은 여성이 직면한 상황을 대변한다.

소설가이자 영화감독인 짐바브웨의 치치 단가렘바 감독은 국제여성영화제를 만들고 여성 영화 워크숍과 시나리오 훈련센터를 만드는 등 교육에 힘쓰고 있다. ‘카레 카레 즈바코: 옛날 옛적에’(2004)는 개미 정령들의 도움으로 게으르고 못된 아버지를 물리치고 아이들을 지켜내는 어머니를 그린 짐바브웨의 오래된 전설에 판타지와 뮤지컬을 혼합했다.

여성의식화란 계몽주의 정신에 대중성까지 가미한 작품들도 등장했다. 케냐 출신 안느 문가이 감독의 ‘사이카티’(92)는 정략결혼을 거부하고 간호사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도시로 간 마사이족 소녀의 이야기. 상영 당시 관객들의 반응이 뜨거워 극장이 축제 현장 같았다고 한다. 이번 영화제에선 의사가 돼서 마을로 돌아온 사이카티를 그린 후속편 ‘날으는 의사 사이카티’(98)를 상영한다. 라자 아마리의 ‘레드 사틴’(2001)은 평범한 중년 여성이 벨리 댄스를 접하면서 자신의 욕망에 눈을 뜬다는 내용을 담았다.

극장이 부족한 탓에 비디오의 형태로 주로 만들어지지만 아프리카의 영화산업의 규모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다. 최선희 프로그래머는 “‘놀리우드’라 불리는 나이지리아에선 1주일에 30여 편의 비디오 작품이 만들어지며 수익률 면에서 할리우드와 인도에 이어 세계 3위”라며 “최근 여성 영화인들의 진출도 활발해지고 있다”고 밝혔다.

여성영화제 100배 즐기기
영화와 이벤트가 있는 봄

서울여성영화제 기간 아트레온 극장은 여성 영화인 및 예술인을 위한 이벤트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영화뿐 아니라 영화제 측이 마련한 다양한 행사를 통해 영화제를 즐겨보자.

아트레온 1층의 열린광장은 매일 새로운 행사가 열리는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다. 영화 감독과 배우가 출연해 관객과 영화에 대한 자유로운 이야기를 나누는 토크쇼 ‘매일 그대와’엔 배우 심혜진, 방은진 감독, 옥랑상 수상자인 경순·이혜란 감독이 참여한다. ‘유자차는 어항밴드’ ‘스윙 시스터즈’ 등 아마추어 여성 예술인들의 야외공연도 이곳에서 열린다.

‘쾌girl-女담’은 해외 게스트와 관객이 하나의 주제를 놓고 토론을 벌이는 프로그램으로 3일간 열린다. ‘파니 핑크’의 도리스 되리 감독, 아프리카 여성 감독인 판타 나크로와 안느 문가이, 그리고 일본의 배우 출신 감독인 다다노 미아코가 각각 출연한다.

다큐멘터리에 관심이 많은 관객이라면 ‘필름 인사이드: 특별강연’을 놓치지 말자. 프랑스의 시몬 드 보부아르 영상센터의 니콜 페르난데 페레 사무국장이 ‘70년대 프랑스 페미니스트 다큐멘터리’에 대해 강연한다.

영화를 공부하는 사람에겐 섹션 포럼을 권한다. 프랑스의 시몬 드 보부아르 영상센터, 홍콩 아트센터, 대만여성영화제, 도쿄여성영화제 등 각국의 여성영화 아카이브 관계자들이 모여 아시아 지역의 여성영화 아카이브와 배급 네트워크 구축에 대해 의논한다.

국제포럼은 아시아 여성활동가 및 여성 영화인들과 여성주의적 이슈를 심도있게 토론하는 여성영화제만의 프로그램. 2006년 포럼의 주제는 ‘여성의 생식력을 둘러싼 국가와 문화권력’으로 출산정책의 새로운 방향성을 모색한다.

한편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문화생활을 즐기지 못하는 관객을 위한 서울여성영화제만의 특별한 서비스인 놀이방을 올해도 만나볼 수 있다. 영화제 기간 내내 아트레온 지하2층에서 오전 10시∼오후 6시 30분까지 운영된다. 문의 02-583-3598, www.wffis.or.kr / 여성신문 홍지영 객원기자

페미니즘 영화 거장 한자리에
서울여성영화제 찾는 여성 영화인들

▲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다다노 미아코, 판타 나크로, 도리스 되리, 데니스 보스트롬 감독.
영화 ‘파니 핑크’로 국내에도 많은 팬을 가지고 있는 독일 여성 감독 도리스 되리가 제8회 서울여성영화제에 참석하기 위해 첫 한국 방문에 나섰다.

영화제 기간엔 도리스 되리 감독 외에도 아프리카의 판타 나크로와 안느 문가이, 일본의 다다노 미아코, 미국의 데니스 보스트롬 등 20여 명의 여성 영화감독 및 영화인이 한국을 찾는다.

도리스 되리 감독은 여성과 게이 친구와의 우정과 여성의 자아 찾기를 그린 독특한 여성영화 ‘파니 핑크’로 잘 알려져 있지만 영화 외에도 뮤지컬, 베스트셀러 작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다재 다능한 인물이다.

페미니즘을 추구하면서도 대중성을 잃지 않아 평단과 관객 양쪽의 호응을 얻고 있다. 이번 영화제에선 신작 ‘내 남자의 유통기한’을 상영하고 ‘쾌걸 여담’의 초대 손님으로 관객과 깊은 대화를 나누는 시간도 갖는다.

아프리카 여성 감독들의 방문도 화제가 되고 있다. 부르키나파소 출신 판타 나크로 감독과 케냐에서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는 안느 문가이 감독이 그 주인공. 이들은 영화 상영 외에도 ‘아프리카, 여성, 영화’를 주제로 한 ‘쾌걸 여담’에도 참여한다. 안느 문가이 감독은 여성단편경선 부문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할 예정이다.

‘임신 36개월’의 다다노 미아코 감독은 일본의 유명 여배우 출신으로 이번 영화가 장편 데뷔작이다. 94년 시노부 야구치 감독의 ‘원피스’로 데뷔해 영화, TV, 광고 등에서 활약했다. 다다노 미아코 감독도 ‘쾌걸 여담’에 초대돼 관객들과 스타에서 감독이 된 경험을 이야기할 계획이다.

데니스 보스트롬 감독은 다큐멘터리, 영화, 교육용 영화 등의 작가로 활약하다 장편영화에서 웨스 크레이븐, 조지 루카스, 웨인 왕 등 유명 감독의 스크립터로 활동했다. 여성 질병에 대한 서로의 경험을 나누며 치료법을 소개하는 그의 영화 ‘여성건강보고서’는 페미니스트 다큐멘터리의 고전 중 하나로 꼽히는 작품이다.

프랑스의 페미니스트 비디오와 영화 자료 보관소인 시몬 드 보부아르 시청각센터의 니콜 페르난데 페레 사무국장은 여성영화 아카이브 구축의 전문가로 서울여성영화제와 깊은 인연을 맺어온 인물. 오타케 요코 도쿄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과 판 우 대만여성영화제 사무국장, 뉴스릴 아카이브를 운영하는 미국의 대표적인 여성운동가 로즈 페인도 한국을 찾는다.

홍콩아트센터 관장이자 홍콩독립단편영화제 집행위원장인 테레사 퀑은 아시아단편경선 심사위원 자격으로 한국을 찾는다. 서울여성영화제의 유일한 경선부문인 아시아단편경선 심사위원에는 테레사 퀑과 안느 문가이 감독 외에 배우 심혜진씨와 서울대 법학부 양현아 교수,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의 공동 제작사인 ‘엔젤 언더그라운드’의 이진숙 대표도 참여한다.

"세계가 공감하는 영화 만들고 싶다"
<날으는 의사 사이카티>의 안느 문가이 감독

케냐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영화 <사이카티>와 속편인 <날으는 의사 사이카티>를 만든 안느 문가이 감독이 9일 한국을 찾는다. 아프리카의 여성 감독으로서 여성주의와 대중성을 적절히 배합하는데 성공한 안느 문가이 감독과 이메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안느 문가이 감독은 케냐 언론대학과 나이로비의 미국문화센터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독일로 건너가 뮌헨 영화학교에서 시나리오 작법과 연출을 공부했다. 그의 영화는 빠르게 도시화되어 가는 조국 케냐와 아프리카의 문화를 소재로 하고 있다.

- 영화제와 한국을 찾게 된 소감은
"첫 번째 한국 방문을 앞둔 소감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최고'다. 서울여성영화제에 참여하게 돼 무척 설렌다."

- 영화를 통해 무얼 얘기하고 싶었나
"아프리카 여성의 눈으로 아프리카인과 여성의 현실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사이카티>는 가난, 임신, 매춘 등 아프리카 여성을 나타내는 스테레오 타입에서 벗어나 어려움을 스스로 극복해 가는 긍정적인 아프리카 여성상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 <사이카티>가 케냐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케냐에서 여성 감독이 만든 최초의 영화라는 사실이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영화 속 캐릭터가 겪는 상황이 케냐에 사는 보통사람들과 비슷해 관객들이 영화에 쉽게 공감할 수 있었다."

- 케냐에서 여성의 지위는
"케냐에서 여성이 자신의 재산을 소유할 수 있게 된 것은 최근의 일로 그전까지 여성은 경제적인 약자였다. 최근 정부 차원에서 여성들에게도 동등한 기회를 부여하려는 정책을 시도하는 등 상황은 계속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여성들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려면 남성보다 두 배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 현실이다."

- 아프리카 영화산업의 현실은
"아프리카에서도 할리우드 영화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나 아프리카의 영화산업은 한창 발전하는 중이고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다. 몇 년 후면 아프리카 블록버스터 영화도 충분히 제작할 수 있다고 본다."

- 앞으로의 계획은
"케냐뿐 아니라 전 세계인에게 다가갈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다음 영화도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씩씩한 젊은이가 주인공이 될 것 같다."

- 아시아 단편경선 심사위원으로서 심사기준은?
"외국 영화의 모방이 아닌 한국영화의 진정한 '아이덴티티'를 찾고자 노력하겠다. 독창적이고 새로운 아이디어, 그리고 이를 발전시켜 나가는 감독의 능력에 중점을 두고 심사하겠다."

서울여성영화제 프로그램 추천작

제8회 서울여성영화제에서 소개되는 33개국 97편의 영화들을 다 보기란 불가능한 일. 서울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가 적극 추천한 놓치면 후회할 영화들을 소개한다. 올해 영화제에선 특히 다큐멘터리 장르가 강세인 것이 특징이다.

[추천인:임성민, 남인영, 김선아, 최선희 프로그래머]

임신 36개월 (다다노 미아코 감독/ 일본/ 2005)

임신 9개월에 접어든 29세의 후유코는 엄마가 될 준비를 하지 못한 채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철없는 남편 도루는 다른 여자를 만나면서 매일 밤 취한 채 들어와 곯아떨어진다.

자격 없는 부모를 비난하듯 36개월이 되어도 나오기를 거부하는 아기로 인해 후유코는 방송에서 유명인사가 된다. 독특한 소재와 설정의 영화로 배우 출신 감독의 데뷔작이다. 부모의 역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영화다.

신경쇠약 직전의 신부 (소피 필리에 감독/ 프랑스/ 2005)

상류층 요양원에서 마취 전문의로 일하는 폰테인 리글루는 남부러울 게 없는 여성으로 얼마 전 오래된 남자친구로부터 청혼까지 받은 상태.

그러나 기쁠 줄만 알았던 청혼을 받고 오히려 깊은 혼돈 속에 빠지는 폰테인은 청혼에 대한 답변을 차일피일 미룬다. 결혼을 앞둔 여성의 불안한 심리를 코믹하게 다룬 이 영화는 여성에게 있어 사랑과 결혼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비행기 납치범, 레일라 카흐레드 (리나 마크볼 감독/ 스웨덴/ 2005)

비행기를 납치한 최초의 여성 레일라 카흐레드를 다룬 다큐멘터리. 69년 당시 24세의 아름다운 여성 레일라는 많은 팔레스타인인들의 영웅이 됐고 팔레스타인계 스웨덴인 리나 마크볼의 10대 때 우상이기도 했다. 감독은 비행기 납치가 있은 지 35년이 지난 후 카메라를 들고 그를 찾아가고 당시 극한의 두려움을 느꼈던 승객, 기장, 남자 승무원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았다.

소똥 (페아 홀름퀴스트·수잔 카달리안 감독/ 스웨덴/ 2005)

인도의 환경운동가이자 핵 물리학자인 반다나 시바를 중심으로 유전공학, 생명윤리, 민간농업 방식을 둘러싼 전 지구화와 특허권 싸움을 그린 다큐멘터리로 환경영화제와 공동 초청한 작품이다.

부부 감독인 페아 홀름퀴스트와 수잔 카달리안은 반다나 시바를 2년 동안 추적해 완성했다.

연극 (펠린 에스메르 감독/ 터키/ 2005)

터키 남부의 산악지대, 농사에서 건설 일까지 하며 힘들게 살아가는 9명의 여성. 잔뜩 수줍은 모습으로 학교에 모인 이들은 학교 교장과 함께 각자의 인생을 바탕으로 한 연극 대본을 쓰고 실제 공연을 준비한다.

스스로한테도 말하기 두려웠던 이야기까지 서슴없이 나누기 시작한 여성들은 호기심에 가득 차 그들을 바라보는 마을 남성들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창작 일념을 불태운다. / 여성신문 박윤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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