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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신문
[이은경 기자] 국제결혼이 급증하고, 미국의 프로풋볼 스타 한국계 혼혈인 하인스 워드의 방한이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관용의 정신으로 다원화 사회에 대한 인식 전환을 이루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사각지대에 있는 소외계층의 존재에 사회가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요즘, 자식을 해외로 입양시킨 생모들의 목소리를 다큐영화에 담아냄으로써 입양 이면의 가부장적 폭력성을 드러내고자 하는 시도가 조용히 추진되고 있다.

해외 입양인의 생부모 찾기와 한국문화 체험 등을 지원하는 ‘뿌리의 집’이 제작을 맡고, 그 자신 입양인인 재미교포 태미 추씨가 감독을 맡아 아이를 입양 보낸 20대부터 60대까지의 생모 5, 6명에 관한 다큐 영화를 만들고 있다. 입양인 생모들에 대한 ‘첫’ 다큐로 기록될 이번 영화는 올해 말 완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뿌리의 집 운영자 김도현 목사는 “입양인과 입양 부모의 이해를 돕기 위해 다큐를 만들기로 했지만, 입양의 책임과 아픔을 한 여성에게만 지우는 남성 중심의 폭력성과 이에 물든 우리 사회에도 책임을 묻고 싶다”며 “이번 다큐를 계기로 생부를 추적하고 양육의 책임을 엄중히 물을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와 법적·제도적 장치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오랫동안 미혼모와 그에 관련된 양육·입양 문제를 상담해온 애란원 한상순 원장은 “생모들 역시 원인과 과정에 대해선 눈감으면서 결과에 대해서만 여성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우리 사회에 분노하고 있기에 자신들의 문제를 스스로 말하길 절실히 원하고 있다”며 “생모 문제에 대해 우리 사회는 으레 회피하거나 부정하는 것으로 일관해왔지만 다큐영화를 계기로 이들의 문제가 정확히 조명돼 전문적인 상담 등 대책 마련에 사회가 적극 개입했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입양인 생모들에 관한 다큐는 LA 영락교회, 미네아폴리스 칠드런스 홈 소사이어티(Children's Home Society), 외교관부인회 등의 후원금 1000여만 원 정도가 종자돈이 돼 시작됐지만, 총 제작비가 1억여 원이 넘을 전망이어서 뿌리의 집 측은 입양 문제와 대안에 관심을 갖고 있는 개인과 단체의 도움을 절실히 바라고 있다.

가부장제가 만든 '원죄'에 평생 멍든 삶
입양인 생모 체험 다큐 어떻게 만들었나

샌프란시스코에서 교사로 재직하며 결혼도 한 30대 후반의 입양인 출신 여성 A. 아이를 원해 불임클리닉을 다니다 의사로부터 조언을 듣는다. 한국에 대한 증오가 너무나 깊어 새 생명이 당신 몸 안에서 자랄 수 없으니, 한국의 생모를 찾아 화해하고 오라는.

A의 생모는 대학 졸업 후 러시아계 혼혈인과 결혼했지만, 한국 사회에 뿌리내릴 수 없었던 남편때문에 전적으로 생계를 책임져왔다. A를 포함, 위로 딸 둘과 아들 세 남매를 키우던 중에 이따금 집에 들르곤 하던 남편에게 거금 3000만 원을 융통해 사업자금으로 줬다가 남편은 잠적해버리고 생모는 빚에 몰려 감옥에 들어갈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때 60대 후반의 교장선생님이 나타나 생모에게 빚을 다 갚아주겠다며 청혼을 한다. 단, 당신에게 ‘처녀’ 장가드는 것처럼 하고 싶으니 세 자녀를 떼어놓고 오라는 조건이 붙는다. 이에 생모는 당시 십대였던 세 자녀를 입양시키게 된다.

A는 불임클리닉 의사의 조언에 따라 한국으로 돌아와 우여곡절 끝에 생모를 만난다. 그러나 생모는 “이 집에 처녀로 시집왔는데, 네가 나를 ‘엄마’라고 하면 어떡하느냐”며 A를 거부한다. A는 결국 생모에 대한 분노를 넘어 생모 역시 한국 사회 가부장제의 또 다른 피해자였음을 깨닫는다.

미국으로 입양된 한 여성의 역사다.

2003년 개원과 함께 입양인의 상처를 치유하고 정체성을 찾는 작업을 병행해온 ‘뿌리의 집’이 ‘입양’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이다. 더구나 이 다큐는 입양인의 시선으로 입양 문제를 바라본 이제까지의 다큐들과 달리 입양인 생모들의 목소리를 빌려 입양 문제를 조명하는 첫 시도라는 점에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뿌리의 집 운영자이자 이번 다큐를 기획 제작한 김도현 목사의 말대로 “입양을 둘러싼 입양인, 양부모, 생부모 삼자 중 가장 약해 자기 목소리조차 낼 수 없어 잊혀져 가는 존재”가 바로 생모들이기에 다큐를 통해 자신들의 상처를 커밍아웃한다는 점에서 한층 의미가 깊다.

김 목사는 많은 입양인들을 접하면서 그들의 중심 주제가 바로 ‘엄마’라는 공통점을 발견했기에 다큐의 방향을 일찌감치 생모의 입장을 부각하는 것으로 정했다.

미국으로 입양됐다가 4년 전부터 서울에 거주해온 태미 추씨를 감독으로 발탁하고 감독, 연구원 등과 팀을 이뤄 연말까지 6개월간 다큐 제작을 위한 사전 조사작업을 전개했다.

아이를 해외로 입양시킨 여성들을 찾아 심층 면접을 시도하고 이들 중 20대부터 60대까지의 다양한 연령층 여성 5, 6명을 다큐 출연자로 섭외했다. 그리고 4월 4일 첫 촬영이 시작됐다.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제작진은 입양 이면엔 우리 사회의 총체적인 가부장적 폭력이 자리잡고 있다는 데 동의하게 됐다.

해외로 입양된 아이들 대부분은 한국에선 더 이상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없는 상태로 몰리게 된다. 그리고 그 끝에는 그들의 생모가 있다. 입양인과 그들 생모의 삶 속엔 산업화, 자본주의, 인종차별의 복잡다단한 메커니즘이 숨어있지만, 이 모든 것의 이면에 있는 것은 바로 남성 중심 사회의 의도적인 때론 의도하지 않은 폭력성이다.

반면 정작 생모들은 피해자인데도 어느새 가해자가 돼 입양에 대한 십자가를 일생 지고 살게 된다. 김 목사는 이들의 존재를 “가부장제가 주는 수치심에 일생 멍든 여성들”이라 정의한다.

미혼모 전문 지원기관인 애란원 한상순 원장은 “입양인 생모들은 분노 우울 무력감에 사로잡혀 ‘친모 신드롬 증상’을 나타내게 된다”며 “나는 아이를 무책임하게 낳아 버렸으니 가치 없고 나쁜 여자, 행복하게 살 자격이 없는 여자, 일생 불행한 여자가 돼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고 입양 후유증을 지적한다.

그는 “사회는 미혼모가 된 것을, 또 아이를 입양 보내버린 것을 잊어버리고 새출발하라고 은연중 강요하지만, 당사자들은 이를 절대 잊어버릴 수 없다”며 “반면, 이들 여성들이 아이를 입양 보내고도 정상적 생활을 하는 것을 보며 성적으로 문란하고 아이에 대해 이기적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겉으론 그렇게 보일지라도 이들은 일생 자신의 아이에 대한 기억과 사상으로 고통 받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때문에 한 원장은 “이젠 우리 사회가 이들 여성의 고통과 그 해결책에 관심을 가지고 대안을 제시해나가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 여성신문 이은경 기자

"생모에만 '십자가' 강요 안돼"
[인터뷰]제작자 김도현 목사

입양인 생모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기획하고 제작을 총지휘하고 있는 사람은 여성이 아닌 남성, 더구나 목사다. 제작 배경에 관심이 모아질 수밖에 없다.

제작자 김도현 목사는 92∼2001년 스위스 베른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면서 본격적으로 입양인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스위스에 자리잡은 지 얼마 안 돼 한국계 입양 여성의 자살 사건이 일어난 것이 직접적 계기였다.

이후 현지 입양인들을 초청해 모임을 가지면서 자조단체를 조직하는 한편, 입양인에 관한 신학적 연구를 시작했다. 그는 입양 문제의 큰 두 축은 “자식을 입양 보낸 생모 입장에선 가부장제가, 입양된 아이들 입장에선 유럽, 미국 등 서구 중심주의가 최대의 적으로 가장 큰 갈등 요소”라고 해석해낸다.

김 목사의 입양 연구의 첫 단계는 바로 생모들의 문제를 분석해내는 것이었다. 정체성으로 고민하는 입양인들에게 생모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해결책이라 생각했기 때문.

2004년 완성해 영국 버밍엄대에 제출한 논문 역시 “가부장적 한국 교회와 신학이 어떻게 변해야 입양인 생모들을 죄악시하지 않고 교회 공동체의 일원으로 기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란 고민에서 시작됐다.

“연구에 있어 여성신학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 한국 교회가 여성신학을 수용 못하면 입양인에게 삶의 의미와 길을 열어줄 수 없을 것이다.”
김 목사는 입양인들의 생모들을 만나면서 매번 “이 분들이야말로 우리 사회 가장 변두리에 내몰려 있는 여성들이다”란 생각을 하곤 한다. 그래서 입양인 생모 문제에 관해 여성단체와 연대하기를 바라고, 다큐를 통해 우리 사회가 입양인 생모의 소리에 관심을 기울여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문의 02-3210-24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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