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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3월 30일, 이병 아들이 100일 휴가를 나왔다(100일 휴가는 입대 100일의 성공적인 신병생활에 대한 포상차원에서 4박 5일간 보내주는 신병위로 휴가라고 함).

그 일주일 전 가족회의를 열어 대청소를 시작했다. 집안 구석구석 먼지를 털고, 침대커버와 이불은 세탁기에 돌리고 커텐은 욕조에서 발로 밟아 빤 후 반듯하게 다림질했다. 이틀 전엔 대형마트에 가서 딸아이가 적어 준 재료들을 꼼꼼하게 챙겼다. 요리사가 되겠다고 결심을 한 후 학원에 다니기 시작한 지 3개월, 실력을 발휘해 보겠다며 요리 담당을 자청했던 딸이었다. 그 정성이 예뻐 출장비 2만원을 얹어주며 환영했다.

▲ 휴가증
ⓒ 박영자
오전 일곱 시,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머니! 지금 부대에서 나왔어요. 강릉에서 9시 출발이에요.”
“어? 벌써 부대에서 나왔어? 아침은 어떻게 하고?”
“안 먹고 나왔어요. 집에 가서 어머니께서 해 주는 밥이 먹고 싶어서요.”

남은 두 시간 동안 맘 놓고 들어가서 먹고 마실 수 있는 돈은 있는 걸까? 아는 사람 없는 거리에서 보내게 될 아들을 생각하니 숨이 턱턱 막혀왔다. 베란다로 나가 창문을 열었다.

‘한겨울 바람도 이리 차갑지 않더만 무슨 봄바람이 이리 차갑노.’

혼자 중얼거리며 창문이란 창문은 모두 열었다. 답답한 마음은 마찬가지였다. 출근 준비를 하던 남편이 한마디 했다.

“걱정하지 말게 이 사람아! 남자는 군대를 갔다 와야 하는 거야?”

남편과 나는 시무룩한 기분으로 집을 나왔다. 금암동 터미널에서 아들과 만나기로 했다. 월말 교육이 있었지만 다행히 도착할 즈음 끝났다. 회사 근처 꽃집으로 갔다. 장미꽃과 안개꽃, 그리고 프리지아꽃을 골라 포장을 부탁했다.

▲ 100일 축하 꽃다발
ⓒ 박영자
처음으로 아들에게 주는 꽃다발이었다(학교 졸업식 때는 꽃다발을 준비하지 말라고 해서 사지 않았음). 꽃집 아줌마가 받게 될 사람을 물었다. 100일 휴가 오는 아들 이야기를 했더니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천원 깎아주었다. 많지 않은 액수였지만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된다고 했던가? 아줌마의 인심에 기분이 좋았다.

터미널 입구에 차를 세웠다. 몇 대의 버스가 지나고 또 멈췄다. 얼룩무늬 군복 입은 한 사람이 중간쯤 좌석에서 일어서는 게 보였다. 나도 모르게 자동차 문을 열고 뛰어갔다.

“이병!”(평소에 부른 호칭)
“충성!”

검게 그을린 얼굴, 아들이 거수경례를 했다.

“축하해. 멋진 군인이 되었네?”

꽃다발을 안겨주었다. 조금 통통해진 모습을 제외하곤 예전 그대로였다.

“힘들었지? 고맙다. 고맙다.”
“...”
“먹고 싶은 게 뭘까? 다 이야기 해 봐?”
“우선 집부터 가고 싶어요. 어머니께서 해 주신 밥이 제일 먹고 싶거든요?”
“그래도 좋은 곳에 가서 먹고 싶은 것 무엇이든 사 주고 싶은데...”
“아니에요. 집이 어떻게 변했는지도 궁금해서요.”
“변한 건 없을 거야! 학교에 가면서 현관문을 나서던 대뚱이가(딸아이 별명) 네 침대커버와 이불이 더러워질까봐 바닥에서 잤다던데?”(입대 후 딸아이가 아들 방에서 생활하였음)
“네에?”

아들은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할 때까지 간단한 대답만 했다. 엘리베이터를 탄 후 우리집 7층을 누르자 군화 끈을 풀기 시작하더니 현관문을 날쌔게 열었다.

‘오랜 기다림 때문일까? 지금 아들의 마음 속 외침은 무엇일까?’

허겁지겁 서둘러 거실을 들어서는 아들 모습에 마음은 답답했다. 점심을 준비하는 동안 아들은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마이크를 잡았다. 윤도현의 “사랑했나봐”를 불렀다. 물끄러미 바라보는 내게 말했다.

“어머니! 훈련소에서 재검 받으러(혈압이 높게 나와서) 강릉 병원으로 가던 때였어요. 차 안에서 임정희의 ‘Music is My life’가 들려오는 거예요. 순간 소름이 쫙 돋더라고요.”
“소름? 무슨 소름? 하하.”
“아마 모를 거예요. 다른 세계에 온 것 같았던 그 기분!”

엉뚱한(?) 대답에 아들과 만난 후 처음으로 소리 내어 웃었다. 그리곤 딸아이가 중불에서 자작하게 데워야 제 맛이라며 부탁했던 갈비와 잡채를 식탁에 놓았다. 무를 넣어 쇠고기 국도 끊였다. 특별한 반찬은 없었지만 동생의 초보 솜씨를 칭찬하며 아들은 밥 두 공기를 먹었다.

“어머니! 이병의 100일 휴가는 4박 5일이 아니라 4점 5초래요. 그만큼 시간이 빨리 간다고 그래요. 다섯 시에 진수와 중철이 만나기로 했어요. 진수가 내일 부대에 들어가는 날이라서 꼭 봐야 해요.”

하고 싶었던 일들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사람들도 얼마나 많았을까? 부대에서 미리 4박 5일간의 일정을 시간 단위로 세워놓았다는 종이를 보여주었다. 첫째 날, 먹고 싶은 것 - 치킨과 삼겹살, 군대에서 구두 닦았던 실력으로 아빠의 구두 닦기, 둘째 날 영화보기, 친구와 노래방 수영장 가기, 셋째 날, 서점, 친구와 클럽가기, 넷째 날, 가족과 함께 보내기, 디카 사러가기도 눈에 띄었다.

작년 K은행에서 경품으로 받았던 디카를 입대하기 전 부산 해운대에 갔다가 실수로 바다에 빠뜨리고 왔었다. 입대 후 받은 월급과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아두었던 돈으로 살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굳이 디카가 필요하지는 않았다. 그 마음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고맙다며 완강하게 손사래를 쳤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잠깐이었다. 다섯 시 친구를 만나러 나간 녀석은 ‘밤길 조심해서 와’새벽 한 시 잠자리에 들면서 문자를 남길 때까지도 소식이 없었다.

“얘, 친구들 얘기 들어보니깐 입대할 때보다 100일 휴가를 나온 후 복귀할 때 많이 힘들어 하더란다.”

청주에 살고 있는 언니의 말이 머릿속에서 회오리치던 지루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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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방문 후 놀랬다. 한창 나이 사십대에 썼던 글들이 아직까지 남아있다니..새롭다. 지금은 육십 줄에 접어들었다. 쓸 수 있을까? 도전장을 올려본다. 조심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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