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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표지
ⓒ 전희식
저자이자 대담자인 최재천은 참말을 했다가 곤욕을 치렀던 사람이다. 몇 년 전 호주제 개정문제로 한참 시끄러울 때 이 법의 개정을 주도하는 여성단체 쪽에서 최 교수에게 자문을 구한 적이 있다. 오로지 생물학적으로만 볼 때 부계중심의 호주제가 과연 타당한지를 물었던 것인데, 동물행동학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최재천은 바로 답을 내 놓았다. 차라리 모계중심 호주제가 생물학적으로는 더 맞는다고.

경희대 교수인 도정일은 말한다. 온 세계의 동물계에서 자기처럼 괴이하게 게으른 동물을 최재천 교수도 처음 만났을 거라고. 최 교수가 속 터져 폭발하지 않고 4년이나 기다려 주어 책을 내게 된 것을 보면 인간이란 참 대단하다고 말한다. '동물을 연구하는 인간'인 최 교수를 한껏 치켜세우는 '인간을 공부하는 동물' 도정일의 지적 재담이 유쾌하다. 그런데 도정일의 이 말은 고도의 자기 기만은 아닐까?

바로 이 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도달하는 재미는 이런 식이다. 단세포 생명체건 인간 같은 고등동물이건 그들의 거짓말이나 기만과 위장은 수십 억 년의 진화가 만들어 놓은 생존술의 일부라는 것이다. 신화와 민족설화에 보면 인간의 이런 생존술이 잘 반영되어 있다.

▲ 도정일교수
ⓒ 전희식
그리스신화의 제우스는 주로 여성들을 호려 자손을 퍼뜨리는데 거짓말을 사용했고 <별주부전>의 토끼는 목숨을 구하기 위해 속임수를 썼다. 구약성서에는 '야곱'의 아들들이 동생 '요셉'을 장사꾼들에게 팔아먹고 와서는 천연덕스레 아비에게 거짓말을 한다.

재미있는 것은 거짓말을 할 때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할 때 거짓말 전략은 성공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인간 존재를 가리켜 '도덕적 동물'이라고 칭했는지도 모른다. 인간이 도덕적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이 얼마나 철저하게 비도덕적인 인간인가를 깨닫는데 있다고 한다.

형제 사이에, 부부 사이에 오늘도 숱한 거짓말로 생존술을 구가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이 책은 곳곳에서 어색한 웃음을 머금게 한다. 거짓말쟁이 자신에 대한 자각의 쑥스런 웃음이다. 도정일과 최재천은 이렇게 인간을 동물 취급하면서, 또는 동물과 신화를 현재 시점으로 의인화 해 가며 대담을 벌인다.

그동안 명상서적과 생태주의 책들만 읽다가 이 책,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나다 대담>을 읽으면서 앎의 또 다른 세계를 맛보게 된다. 우리가 예수를 하나님의 독생자가 아닌 역사적 인물인 '인간예수'로 접근 할 때 훨씬 합리적이고 깊이 있는 신앙심에 도달하게 되듯이, 모든 자연생태와 인간행위를 이해하고자 할 때 한쪽 분야에 대한 무지를 원동력으로 삼기보다 여러 분야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할 때 자기 정체성도 온전해 질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이 인간의 거짓말에 대한 이야기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예술과 과학, 동물의 교미와 인간의 섹스, 신화와 과학 등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무척 딱딱한 주제들이다. 영화나 게임처럼 즐길 수 있는 주제들이 아니다. 그럼에도 재미있게 이런 주제들을 소화 할 수 있는 것은 '대담'이라는 형식 때문으로 보인다.

'대담' 형식으로 인해 곳곳에서 발견되는 주제 외적인 재미가 있다. 어느 대목에서는 분명 서로 얼굴을 붉히면서 논쟁을 벌였을 것으로 보이기도 하고 어떤 대목에서는 상대방의 반론에 밀려 슬그머니 화제를 돌리는 대목도 보인다.

일방적인 전달자와 수용자로 만나는 전통적인 저자와 독자 사이가 여기서는 전복된다. 독자 눈에 발각되는 저자의 꼬락서니(?)가 도리어 주제 접근을 용이하게 한다. 이로 인해 생기게 되는 저자에 대한 친근감도 독자를 끌어당기는 기재다.

▲ 최재천교수
ⓒ 전희식
인간을 철저히 동물로 보고 접근해서 인간의 문명과 과학 및 본능을 분석하는 최재천과 인간의 생각과 사랑과 행위를 연구하는 도정일이 풀어내는 이 '대담'은 수준 있는 수다라고 봐도 될 테고 세상 밖으로 나온 연구실이라고 봐도 된다.

두 분 석학들의 대담에 관전자로 빠져 들면서 그들의 사소한 무지(!)를 발견하는 기쁨도 크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생태환경을 말하면서 생태주의의 기본 원리인 순환과 상호의존을 간과하고 문화환경과 인문환경을 무리하게 적용시키는 경우다. 두 분이 의도하지 못한 채 독자에게 주는 고도화된 선물인지도 모른다. 최재천의 말을 빌리자면 DNA 사령부의 계획된 지휘인지도.

덧붙이는 글 | 휴머니스트 펴냄. 25,000원.


대담 -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나다

도정일.최재천 지음, 휴머니스트(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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