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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세상사, 보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요즘 제 눈에 보이는 세상은 행복보다는 불행, 기쁨보다는 슬픈 뉴스가 많은 것 같습니다. 내남없이 힘들게 살아가는 분들이 많은 것 같고 왠지 웃음을 잃어버린 분위기가 아닌가 하여 우울하기도 합니다.

그러던 중 저는 지난 4월 1일 만우절을 맞아 '그래, 이 우울한 기회에 우리 모두가 뭔가 실컷 웃을 수 있는 일은 없을까' 골똘했습니다. 때마침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성대모사로 모 방송국 라디오 프로그램에 2년 동안 고정 출연했고, 공중파 방송에도 소개된 바 있는 신용화(49·프로축구 대전시티즌 홍보팀장)씨를 만났습니다.

제 고교 시절 선배이기도 한 신씨에게 '만우절을 맞아 뭐 그럴싸한 거짓말 좀 없을까' 주문했더니, '아주 좋은 게 하나 있지!'하며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극비 DJ 방문, 이 정도면 어떻겠느냐'며 그 자리에서 DJ 성대모사를 시연했습니다.

어찌나 실감이 나고 생생한지 배꼽을 쥐며 웃던 저는 가상 기사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 가상 기사는 의외성은 있어도 왠지 웃음을 자아내는 데는 적절치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불현듯 '박근혜 대표 극비 결혼'이라는 제목이 생각났고, 신씨의 성대모사를 이용하려면 DJ를 주례로 세워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가상 기사를 작성하면서 가슴이 뛰었습니다. 박 대표의 극비 결혼이라는 가상 뉴스 자체가 우리 국민에게 호기심과 즐거움을 주는 데 충분하다고 믿었습니다. 아울러 박 대표가 평소 주장한 상생과 화합의 정치에 맞게 박 대표가 DJ에게 주례를 청하는 것도 의미 깊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생존해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지하에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그동안의 악연을 끊고 화합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도 일견 돋보이는 발상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비록 가상이긴 해도 화합과 상생의 가치를 도모하고 우리 정치사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스스로 참신한 아이디어라고 우쭐하기도 했습니다.

가상 기사와 주례사를 작성하여 신씨와 함께 검토했습니다. 방송 경험이 아주 많은 신씨도 내용을 검토하더니, '만우절에 우리 국민 재미있게 뒤집어질 내용'이라며 적극 찬성했습니다. '애드리브'까지 넣어 주례사를 연습하는 신씨의 목소리는 신이 내린 목소리처럼 DJ와 닮아 있었습니다.

3월 31일 밤에 기사를 작성하고 녹음을 떠서 <오마이뉴스>에 송고했습니다. 기사 채택 여부는 <오마이뉴스> 편집팀의 권한이기에, 그 허무맹랑한 듯 재미있는 기사가 생나무에 머물든 정식 기사로 채택되는 개의치 않기로 하고 다음날을 기다렸습니다.

저는 크게 놀랐습니다. 4월 1일 정오쯤에 메인톱에 오른 만우절 뉴스는 '그 어떤 정치적 이해나 목적이 없음'을 전제했는데도 많은 네티즌이 다양한 정치적 색안경을 낀 채 비난성 댓글을 달았습니다. 힘든 세상사 속에 많은 분이 단 하루만이라도 즐겁게 너털웃음을 지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댓글은 정말이지 의외였습니다.

제 기사를 읽고 댓글을 검토했다는 한 친구는 "글쓴이의 순수한 마음을 읽기보다는 박근혜 야당 대표가 극비 결혼했다는 의외성이나 황담함에 놀라 당파적 사고를 하다 보니 비난성 댓글이 표출된 것"이라고 조심스레 진단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오히려 <오마이뉴스> 편집팀에게 크게 미안했습니다. 만우절에 한 번이라도 크게 웃어보자는 이유에서 쓴 글로 저 개인보다는 <오마이뉴스>라고 하는 매체가 싸잡아 비난받는 것에 대해 고민해야 했습니다.

시민기자로서 차라리 그러한 글을 쓰지 않았더라면 편집팀의 고뇌도 없었을 것입니다. 시민기자의 글을 우대하는 <오마이뉴스>이기에 글쓴이의 입장을 수용하였다고 봅니다. 감사함과 미안함이 교차합니다.

화합과 상생이라는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누가 보아도 거룩합니다. 수많은 계층과 문화의 충돌, 그리고 심각한 양극화 현상 속에서 여전히 지속하고 있는 정치적 분열은 진저리가 날만큼 증오스럽습니다.

비록 가상으로 쓴 만우절 기사가 여러분께 매끄러운 대접을 받지 못했다 해도, 우리 대한민국에서 서로 증오하고 멸시하는 사람들이 거룩한 화합과 상생으로 거듭났으면 하는 바람을 담은 글이었다고 자부합니다.

가상은 현실을 전제로 할 때 아름답다고 믿습니다. 그냥 즐겁게 넉넉한 웃음으로 화답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리며, 개인의 생각이 반드시 옳은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우쳐주신 네티즌께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만우절은 또 오겠지요.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모두가 즐겁게 함께 웃는 세상을 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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