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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14만의 도시 제천에 도서관의 꿈이 영글고 있다. 공공도서관 4곳과 주민 도서관 2곳의 규모라면 그런 꿈을 꾸기엔 아직 이르다. 도서관 절대부족이라는 평가를 받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난 2년 사이 ‘청구 꽃다지 도서관’, ‘보물창고’ 등 주민 도서관이 두 곳이나 생기고, 시와 시립도서관이 2004 년부터 ‘책 나눠 읽기’ 프로그램을 펼쳐오면서 그런 꿈은 꿈으로만 남지는 않을 것이란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주민도서관이 풀뿌리 민주정치와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면, 북 크로싱(Bookcrossing)이라는 책 나눠 읽기 프로그램은 관이 주도하는 것이면서도 읽기 문화를 널리 퍼지게 하는 일로서 의미가 있다. 책을 읽는 일은 친근하면서도 손쉬운 문화 활동이다.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접근이 소홀히 여겨지기도 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충북에서 ‘낙후도시’로 여겨지는 제천에서 ‘읽기 문화’가 넓어지는 현상은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문화도시를 표방하는 일에서 경제 규모가 늘어가는 것만큼의 즉각적이고 눈에 보이는 경제적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문화적 기반을 늘리는 것 또한 경제적으로 상당한 부가가치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제천은 작년 충북도의 기업도시와 혁신도시의 입지로 선정되는 것을 기대했지만 혁신도시의 (3개 기관)분산배치 지역이라는 성과를 내는 데 그쳐야 했다. 어쨌거나 지역경기가 오랫동안 침체상태에 놓여있고 새로운 인구가 유입되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문화도시로서의 모습을 갖추어 가는 일은 제천에 또 다른 가능성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한방 특화도시로서의 모습을 갖추어 가는 일 등 지역 경기를 활성화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 하겠지만 문화도시로서 제천을 가꾸어 가는 일도 시급하다. 영상도시를 목표로 하는 일과 함께 도서관 도시를 목표로 한다면 문화도시로서의 제천은 그 나름의 독특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시대에 관이 주도하여 시민들을 ‘읽는 문화’에 익숙하게 만드는 것은 그리 친숙한 풍경은 아니다.

▲ 제천 시청 현관에 마련된 '북 크로싱' 공간
ⓒ 한정석
2004년부터 제천시와 시립도서관이 펼치고 있는 이른바 ‘북 크로싱(bookcrossing)’이라는 프로그램은 자신이 본 책을 여러 사람들이 이용하는 곳에 내어다 놓아 다른 사람들이 책을 보고 다시 제 자리에 되돌려 놓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제천시와 시립도서관은 지금까지 시립도서관에 기증된 책 500권과 시 산하 직원들이 기증한 도서를 ‘북 모임’ 홈페이지에 등록하고 시민 모두가 이용할 수 있도록 해 왔다. 그동안 시민들이 기대 이상으로 호응해 줬고 프로그램도 제 자리를 잡았다.

이제는 책을 놓아두는 곳을 더 늘릴 계획이란다. 지금까지는 시청 생활민원과와 시청 현관으로 국한되었으나 이제부터는 구 시청 민원실과 시민회관의 만남의 광장, 역전 농협에도 이 프로그램으로 마련한 책들이 놓여진다. 이렇게 되면 책 읽는 문화는 더 익숙해 질 것이다. 더 많은 책들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나눠질 것이며,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질 것이다.

관이 주도하여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북 크로싱 사업과 함께 앞으로도 제천시는 공공도서관이나 사설도서관, 주민도서관이 더 늘어나도록 정책을 입안하고 펼쳐야 할 것이다. 공공도서관 건설은 자치단체에서 부지를 확보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어 수월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문화적 기반을 늘여가는 일이 중요하다는 발상을 갖는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닐 것이다.

또한 사설도서관이나 주민도서관들이 더 많이 늘어나도록 지역주민들을 격려하고 지원하는 일도 시가 맡아야 할 몫이다. 많은 시민들이 가족 단위로 가까운 도서관을 언제든 찾을 수 있게 된다면 지금보다 훨씬 아름답고 건강한 가족 문화, 마을 문화, 지역 문화를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다.

제천시가 도서관 도시를 추진한다는 공식 발표는 아직 없다. 그러나 다른 목표는 차치하더라도 읽는 문화를 널리 퍼지게 한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도 제천이 도서관 도시가 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 할 것이다. 제천시의 움직임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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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말이 사물을 올바로 담아낼 때까지, 사물들을 올바로 이끌어 낼 때까지 말과 처절하게 대면하려 한다. 말과 싸워서, 세상과 싸워서, 자신과 싸워서 지지 않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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