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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 집 큰애가 '2006년 고향의 봄 백일장대회'에 나갔습니다. 큰애는 집을 나서기 전부터 기대어 부풀어 있었습니다. 2년 전에도 창원시에서 주최하는 백일장 대회에서 상을 탔기 때문입니다.

백일장대회는 창원시 용지공원 노천마당에서 열렸습니다. 저와 큰애는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글 쓸 용지부터 받았습니다. 공원에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대부분 가족 단위로 나왔습니다. 초등학생, 중고등 학생, 대학 및 어른들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 큰애가 포즈를 취하고 있습니다
ⓒ 박희우
사회자가 오늘 있을 행사를 소개했습니다. 사회자 뒤에는 귀빈들이 나란히 앉아있었습니다. 저는 귀빈들을 유심히 살폈습니다. 혹시 그분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찾는 분은 다름 아닌 이종찬 시인입니다. 그분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이기도 하십니다. 저와는 고등학교 동창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분은 없었습니다.

심사위원장이 마이크 앞에 섰습니다. 모든 시선이 심사위원장에게 쏠렸습니다. 그분이 시제를 발표했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1~3학년) 시제는 운문에서 <새싹>, 산문에서 <시험>입니다. 고학년(4~6)은 운문에서 <봄비>, 산문에서 <내가 사는 동네>입니다. 그 밖에도 중고등 학생, 대학·일반을 소개했습니다. 심사위원장이 몇 가지 당부의 말씀을 합니다.

"학부형들이 아이들을 도와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글 내용까지 바꿔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의 마음은 순수합니다. 글 속에는 어린 삶이 고스란히 배어있어야 합니다. 어른들이 쓴 글은 금방 표시가 납니다. 제가 하는 말씀을 학부형 여러분께서는 꼭 지켜주셨으면 합니다."

우리 부녀는 공원에 자리를 깔고 앉았습니다. 큰애는 초등학교 4학년입니다. 운문을 택해서 시제는 <봄비>입니다. 큰애는 가방에서 미리 준비한 연습용 백지를 꺼냈습니다. 쓱쓱 글을 써내려갑니다. 막힘이 없습니다. 무척 대견스럽습니다. 10분 남짓 걸렸나 봅니다. 저한테 글을 보여줍니다.

▲ 큰애가 괴로운듯 하늘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 박희우
저는 글을 읽어 내려갔습니다. 생각보다 글을 잘 썼습니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표현했습니다. 글 속에 봄비 내리는 풍경이 나타납니다. 겨우내 얼었던 얼음이 등장합니다. 풀잎이 봄비를 맞으며 새록새록 솟아난다고 합니다. 숲 속 동물들이 겨우내 있었던 일을 얘기합니다.

"잠자는 생활은 너무 지겨웠어. 지금부터 기지개를 펴볼까!"

저는 주위를 둘러봅니다. 가족들이 군데군데 무리를 지어 앉았습니다. 대부분 글을 쓰기보다는 음식 먹기에 바쁩니다. 그래도 보기에만 좋습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듭니다. 아내와 작은딸도 함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말입니다. 지금 아내와 작은딸은 그림 그리기 대회에서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을 겁니다.

큰애가 지금까지 쓴 글을 정성스레 용지에 옮겨 적습니다. 행여 잘못 쓸까 봐 최선을 다합니다. 이제 큰애가 글을 다 쓴 모양입니다. 저에게 보여줍니다. 저는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만하면 됐습니다. 진솔하게 어린 동심을 잘 표현했습니다. 저는 아주 잘 썼다며 큰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공원에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어른도 종종 눈에 띕니다. 그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듭니다. 나도 한번 써볼 걸 하고 말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없습니다. 고작해야 20여분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공원을 나섰습니다.

▲ 어른도 열심히 글을 쓰고 있습니다
ⓒ 박희우
공원 주위에는 벚나무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아직 꽃망울을 터트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꽃망울을 터트리겠지요.

어, 그런데 이게 웬일이지요. 비가 한두 방울 떨어집니다. 말 그대로 정말 봄비입니다. 살포시 내리는 게 여간 포근하질 않습니다.

봄비를 맞으며 걷는 우리 부녀가 무척 보기에 좋았던 모양입니다. 큰 아름드리나무에서 작은 새가 자꾸만 지저귑니다. 새소리에 맞춰 우리 부녀도 노래를 불렀습니다. 고향의 봄입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린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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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이 맞는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저는 수필을 즐겨 씁니다. 가끔씩은 소설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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