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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소> 겉그림
<들소> 겉그림 ⓒ 효리원
이문열의 펜이 어린이를 위해 움직였다. 자신의 작품을 개작하여 초등학교 고학년들을 위한 <들소>를 선보인 것이다. <들소>의 배경은 신석기 시대다. 부족의 소년들은 들소를 잡는 성년식을 준비하기 위한 훈련에 여념이 없다. 들소를 잡는 활약으로 이름이 붙여지고 사람들의 평가도 나오는 만큼 한 치도 소홀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단 한명만은 예외다. 그 소년은 최고의 남자가 되어 용감무쌍하다는 소리를 듣는 것보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 예술을 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부족에서는 그런 생각을 용납하지 않는다. 부족에서는 전체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 생각조차도 그래야 한다. 그래서 소년은 괴롭지만 어쩔 수 없이 성년식에 참가한다.

씨름이나 창던지기 같은 훈련 대신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만들던 소년이 가뜩이나 하기 싫은 들소잡기에서 좋은 성과를 거둘 리는 만무하다. 소년은 톡톡히 망신을 당한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소를 겁내는 자’다. 애처로운 이름을 얻은 소년은 들소잡기 때문에 크게 실망한다. 자신이 망신당한 것보다도 ‘뱀눈’이라는 교활한 소년이 어부지리로 들소를 잡았는데 아무도 그것을 모른 채 뱀눈을 칭찬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솔직한 마음을 지닌 소년을 쓸모없는 사람으로 취급하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는 것이다.

성년식을 기점으로 소년과 뱀눈은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된다. 뱀눈은 계속 속임수를 쓰며 부족에서 가장 강인한 남자로 성장하게 된다. 반면에 소년은 ‘무력’보다는 ‘예술’을 사랑하기에 부족에서 무시당한다. 동굴에서 무기에 그림을 그리는 일만 해야 하고, 먹는 것도 용사들이 먹다 남은 음식을 먹어야 한다. 그래도 소년은 어떻게든지 참는다.

하지만 짝사랑하던 여자가 ‘힘’ 때문에 뱀눈을 사랑하자 소년은 더 이상 참지 못한다. 그래서 용감해지기로 하고 사냥에 참가하지만 그것은 소년에게 허망한 일이었다. 소년이 하고 싶었던 것은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기 때문이고 소년은 다시는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그 마음을 다잡기로 한다.

시간이 흘러 뱀눈이 부족의 지도자가 되고 소년은 종교적인 역할을 맡아 부족의 그림을 그린다. 최고 권력자가 된 뱀눈은 자신의 뜻에 반대하던 소년의 친구를 죽이면서까지 자기 마음대로 부족을 다스리려 한다. 그리곤 한없이 커진 욕심 때문에 다른 부족들과 전쟁을 벌이기까지 한다. 뱀눈은 소년에게도 협조할 것을 요구한다. 소년은 갈등할 수밖에 없다. 따르자니 자신의 신념을 배반하는 것이었고 반항하면 친구처럼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들소>의 줄거리는 권력과 예술에 대한 상징적인 것들을 내포하고 있다. 뱀눈은 권력이고 소년은 예술인데 이들은 서로 대립할 수밖에 없다. 뱀눈은 독재자인데 반해 소년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추구하는 자유인이기 때문이다. 최고 권력자는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고 그에 따라 소년을 억압한다. 소년이 반항하려 해도 소용없다. 뱀눈에게는 소년에게 없는 군대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년에게는 신념이 있다. 그리고 의지가 있다. 소년은 뱀눈과 뱀눈을 따르는 부족을 뒤로 하고 그림을 그리던 동굴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리다만 소 그림을 계속 그린다. 뱀눈이 자신의 출세를 위해 죽였던 소의 생동하는 모습을 벽에 그리는 것인데 이러한 행위는 대단히 상징적이다. 권력자가 군대와 같이 ‘눈에 보이는 것’으로 아무리 억압하고 강요한다 해도 예술인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적인 자유로움으로 권력자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때문이다.

둘의 대립에서 승자는 누구일까? 당장은 뱀눈처럼 보일 것이다. 예술이 권력으로부터 도망친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종래에는 소년이 승자임이 밝혀진다. 소년이 그린 그림이 수많은 세월을 거쳐 ‘알타미라 벽화’로 세상에 공개되어 영원히 기억되기 때문이다. 뱀눈은 권력을 잃자마자 잊혀졌다. 하지만 소년은 오랫동안, 영원히 기억된다. 권력에 굽히지 않는 예술가의 정신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신석기시대를 살던 소년의 행적을 ‘알타미라 벽화’까지 연결시키는 탁월한 상상력을 보여준 <들소>는 권력과 예술의 관계를 적절하게 비유해 ‘우의 소설’다운 면모를 한껏 뽐내고 있다. 더욱이 어린이들의 시선에 맞춘 만큼 내용이 쉽다.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로서 제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다.

들소

이문열 지음, 최일룡 그림, 박우현, 휴이넘(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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