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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봄을 시샘이라도 하듯 강한 바람이 몰아치던 지난 3월25일. 경기도 과천 서울대공원 광장에는 10여명의 대학생과 지체·정신 장애인 10명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이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만난 것처럼 정겨워 보였으나 놀랍게도 알고 보니 오늘이 처음이란다. 무엇이 처음만난 대학생들과 장애인들을 이처럼 친하게 만들었을까? 거슬러 올라가보자.

2006년 3월 초 복지관으로 한통의 전화가 왔다. "안녕하세요! 저는 평택대학교 사회복지학부 장애인 자원봉사 동아리 '루트' 회장 배명수라고 합니다." 알고 보니 1년 전 복지관에 실습 신청을 했다가 사정이 있어 하지 못했던 그 학생이었다.

"복지관 장애인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열심히 활동하고 싶은데요..."
"몇 분이나 되시는데요?"
"15명이요."

나는 약간 우려스러웠다. 인원이 많은 봉사단체일수록 효과적이긴 하지만 지속적이지 않을 경우엔 프로그램에 중대한 타격을 입히기도 하기 때문이다. 몇 가지 주의사항을 이야기 해주고 그래도 하겠냐고 했더니 적극적으로 하겠단다. 거기다 바로 시작하면 더 좋겠다고 한다. 일단 복지관으로 와서 설명을 듣고 빨리 시작할 수 있으면 시작해보기로 했다.

▲ 대공원 광장에서 루트와 장애인들과
ⓒ 이경국
18일 토요일. 약속한 오후 1시가 되자 크고 훤칠한, 예쁘고 아직 고등학생 티를 벗지 않은 10여명의 선남선녀가 밝게 인사를 하며 약속장소에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평택대학교 사회복지학부 자원봉사 동아리 '루트'입니다."

나는 그들에게 장애인 사업에 대해 20여 분간 설명을 했다. 그들은 모든 설명이 끝난 후 내민 자원봉사 신청서에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어 이름을 적었다.

사실 장애인 프로그램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시설에서 생활하는 장애인들과 달리 단지 내에 독립적으로 거주하는 장애인들은 관계형성이 어렵고 잘못 접근하면 프로그램 진행 자체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장애인복지관이 아닌 지역사회에 있는 복지관이기 때문에 외출을 한 번 하려고 해도 애로사항이 많다.

"그럼 다음주부터 하도록 하지요. 다음주에 관계형성 하는 차원에서 장애인분들과 함께 이곳 산본에서 과천 서울 대공원까지 전철을 이용해서 다녀와 봅시다. 굉장히 어려울 거예요. 힘들고... 마음의 준비 하고 오세요."

이만큼 겁을 주면 봉사자 중 어느 정도는 두려움을 갖기 마련인데 이들은 더 의기양양해 졌다.

"다음 주에 더 많은 친구들이 올 겁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회장의 모습에 왠지 믿음이 간다.

▲ 가족같지 않나요?
ⓒ 이경국
▲ 다소 장난스러움! 그 안에서 적극성
ⓒ 이경국
드디어 25일 당일. 1시가 되자 저번 주에 보았던 학생들과 처음 본 학생 10여명이 복지관으로 들어왔다. 말 그대로 신세대의 옷차림이다. 다소 봉사하기에는 불편하지도 적합하지도 않은 그런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몇 가지 주의사항을 알려주고, 장애인들과 대면을 했다. 장애인들은 어색해 했지만, 루트 회원들은 밝기만하다.

드디어 이동이 시작되었다. 진지한 모습으로 대상자 한 명에 자원봉사자 한 명에서 두 명까지, 약속한 듯 자연스럽게 접근한다.

금정역에 도착하자마자 가파른 계단이 일행을 가로 막는다. 학생들은 대상자 한 명 한 명을 휠체어에 앉힌 채로 네 명씩 짝을 지어 계단 위로 들어올린다. 장애인들은 다소 부담스러워보였지만, 이내 봉사자들에게 자신을 맡긴다. 정신장애인인 '시내'씨는 이내 대공원에 가기를 거부한다. 사회복지사가 개입해 다독이고, 루트 회원인 1학년 여학생에게 몇 가지 지침을 주고 맡긴다.

"잘 해 보세요."
"걱정 마세요."

약 40분 후 루트회원과 장애인 일행은 거의 같은 시간에 대공원에 도착했다. 다소 지쳤을 법도 한데, 장애인들과 그들 사이에는 다양한 대화들이 오고 간다. 40분 동안의 만남이라기에는 너무나 친숙한 그 모습. 참 좋아 보이기도 하고, 저렇게 빨리 친해질까에 대한 신기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대공원 광장에 모이자 두 말 할 것 없이 사진을 찍고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떠들어댄다. 지친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시간과 동선을 정해주고, 맘껏 해보라고 지침을 준다. 밝은 모습들이다.

약 1시간 넘는 시간 동안 일행들은 대공원 주변을 구경했다. 호수도 보여주고, 아직 피지 않은 꽃들, 그리고 장애인들 개인 생활에 대해 이야기 하고 깔깔거리며 가족처럼 그렇게 즐겁게 걷는다.

장애인들 얼굴이 복지사와 프로그램 진행할 때보다 밝다. 사회복지사에게도 말 안하던 갖가지 이야기들을 쏟아내는 것을 보며 외부 프로그램의 중요성, 자원봉사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지에 대해 알 수 있었다.

미리 준비한 김밥과 음료수를 나누어 먹으면서, 장애인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외부에서의 용변을 처리하면서 얼굴 한 번 붉히지 않는 봉사자들이 참 위대해 보였다. 시간이 흘러 복지관으로 돌아갈 시간. 약간 지쳐 보이기는 하지만 진지한 얼굴은 여전하다.

▲ 너무 좋아요!!! 장애인 모임 회장님인 진회장님과 한컷
ⓒ 이경국
학생들은 다시 조를 짜 휠체어를 대공원역 전철의 가파른 계단위로 올려놓았다. 이제 장애인들은 학생들에게 자신의 몸을 온전히 맡겨버린다. 오후로 갈수록 바람이 세차게 분다. 복지사는 줄곧 그들의 동선을 살피지만, 잠시의 어려움도, 귀찮음도 찾을 수 없다. 말 그대로 봉사 그 자체를 실천하고 있었다.

봉사를 마친 뒤 평가시간. 다양하지는 않았지만 저마다 한 가지씩 느낀 점이 있었던 모양이다. 평가지를 나누어주고 쓰게 하니 그 장소에 한 사람도 없는 것처럼 조용히 평가를 한다. 내용도 아주 다양하고, 의문점과 불편함이 많았던 모양이다. 가득 적는다.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참 재밌는 프로그램이 될 듯합니다."
"그분들에게 잘 못해드린 것 같아 아쉬워요. 담에는 더욱 열심히 할게요."

내가 보기에 루트 회원들은 자신들의 역량을 모두 발휘했다. 이정도 수준이라면 그냥 믿고 맡겨도 될 듯하다.

"루트'가 무슨 뜻이에요?
"루트는 불완전한 수를 말하잖아요. 딱 떨어지지 않는, 정의하기 어려운 수가 루트죠. 저희는 불완전한 것을 완전하게 만들기를 희망한답니다."

작별인사를 하고 뒤돌아서서 멀어져가는 그들을 보면서 처음과 끝이 같은 동아리인 듯하고, 이었으며, 일 것이다라는 생각이 교차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복지관에 와서 장애인들을 위한 어떤 봉사라도 하겠다는 '루트' 회원들을 보면서 저절로 묻어나는 미소는 숨길 수가 없었다. 그들을 일주일에 한 번씩 보길 희망한다.

덧붙이는 글 | 자원봉사 단체는 많습니다. 그중에 옥석을 가리기 힘들지요. 봉사란 간단한 듯 하면서도 어렵습니다. 특히 단체의 경우에는 더욱더 그렇습니다. 루트는 옥과 같은 단체인듯합니다. 이런 단체는 많이 알려줘야 하지 않을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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