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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대구를 출발해 내달 1일 서울에 도착 예정인 석진우씨. 4급 시각장애인인 석씨는 "장애아 자녀 가정에 희망과 웃음이 넘치는 그날까지"라는 구호로 자전거 횡단 중이다.
지난 25일 대구를 출발해 내달 1일 서울에 도착 예정인 석진우씨. 4급 시각장애인인 석씨는 "장애아 자녀 가정에 희망과 웃음이 넘치는 그날까지"라는 구호로 자전거 횡단 중이다. ⓒ 석진우씨 제공
"아이구, 죽겠습니다. 자전거 횡단 이거 사람 죽이는 겁니다."(웃음)

석진우씨는 30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환한 웃음을 자주 터뜨렸다. 석씨는 자전거로 전국을 횡단 중이다. '사서 고생'인 셈이다.

석씨는 "둘째날 추풍령을 지날 때 비·바람·눈 다 맞았다"며 "자전거가 앞으로 나가는지 뒤로 가는지 모를 정도로 세찬 바람을 만났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그는 "이게 바로 장애를 가진 자녀를 둔 부모들의 마음일 것"이라고 풀이했다.

"장애아 어머니들이 아이들과 함께 거리낌없이 4월 봄햇살을 만끽했으면 좋겠다. 대부분 장애아동의 부모들은 당신들이 부끄러워 집 밖을 잘 안 나온다. 그게 현실이다. 장애아동을 가진 것이 죄도 아닌데…. 자녀에게 장애가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지난 25일부터 대구-구미-대전을 자전거로 활주하고 있는 석씨에게 소원을 묻자 대뜸 '4월 봄햇살'로 말문을 열었다.

올해 가을 다니는 교회의 목사가 될 석씨는 지난 11월부터 자전거 횡단을 준비했다. 3개월 동안 9kg이 빠졌다. 녹내장으로 시력도 안 좋은데다 횡단 도중 체력까지 떨어지면 '아버지의 소원'이 두 아이들 앞에 허망하게 무너질까 두려웠다.

"장애인의 날(4월 20일)이 있는 4월에 횡단을 하면 되겠다"고 마음먹은 석씨는 "장애 아동의 부모님들이 얼마나 큰 고통을 겪으며 살고 있는지 홍보하고 싶다"고 말했다.

석씨의 아이들은 석씨와 달리 시력에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나도 15살 때 녹내장을 앓아 결국 시력에 문제가 생겼다, 녹내장은 유전될 수 있다는데 우리 아이들에게도 언제 시각장애가 올 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석씨도 다른 부모들처럼 아이들이 장애로 인해 불편함을 겪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는 대학에서 사회복지학 공부를 하고 있지만, 검정고시에서 낙방의 아픔을 몇 번 겪었다. 영어 점수가 항상 미달됐기 때문. 영어사전의 활자가 너무 작아 영어공부의 기초인 사전찾기가 불가능했다. 석씨는 "한 과목 때문에 떨어져 굉장히 낙심했었다"고 말했다.

석씨는 대도시에 들를 때마다 즉석 집회와 전단지 배포 등을 한다. 횡단에 드는 비용은 주위 사람들의 후원을 받았고, 같은 교회에 다니는 한 장애아 부모는 한달 월급을 쾌척했단다.

전국 대도시를 돌며 각 도시의 편의시설에 대한 석씨의 지적은 계속됐다. "대전 인도를 보니까 점자 보도블럭이 없더라, 그러면 시각장애인이 어떻게 다니겠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점자 보도블럭이 있다고 해도 인도에 차를 주차시켜 놓으면 다닐 수 없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인권위 농성하는 다운증후군 민서 아빠 "학교만 가게 해달라"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아들을 가진 박성희씨. 박씨는 30일 서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열린 '장애인 교육지원법 제정을 위한 전국 부모 결의대회' 도중 무대에 올랐다. 그는 집회 이후 국가인권위원회까지 삼보일배를 하기 위해 흰색 앞치마를 둘렀다.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아들을 가진 박성희씨. 박씨는 30일 서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열린 '장애인 교육지원법 제정을 위한 전국 부모 결의대회' 도중 무대에 올랐다. 그는 집회 이후 국가인권위원회까지 삼보일배를 하기 위해 흰색 앞치마를 둘렀다. ⓒ 오마이뉴스 이민정
홀로 서울 생활을 시작한지 18일째. 박성희씨는 매일 저녁 집으로 전화를 걸어 가족들의 안부를 묻다가 첫째 민서의 목소리를 들으면 아쉬움이 남는다. 3살짜리 둘째는 "아빠 보고싶어요, 언제 오세요"라며 종알거리지만, 7살 민서는 한시간 통화를 해도 말이 없다.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어 표현이 서툴기 때문이다.

박씨는 지난 13일 객지 생활을 시작하면서 단식을 시작했다. 국가인권위에서 타 지역 부모들과 함께 장애인 교육지원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투쟁을 시작했다. 18일간 차와 효소로 버티고 있다.

30일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열린 '장애인 교육지원법 제정을 위한 전국 부모 결의대회'에 참석한 박씨에게 자녀의 교육과 관련해 바라는 것을 묻자 "욕심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학교만 다니게 해주면 된다, 꼴찌가 돼도 좋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단식까지 할 이유가 있었을까? "장애를 가진 것이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죄인 취급당하고, 특히 학교에 다녀야 할 아이들이 교육 현장에서 차별을 받고, 구석으로 내몰리는 등 교육받을 기회를 박탈당하는 현실을 부모로서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고 답했다.

그는 "제정된 지 30년이 지난 특수교육진흥법을 폐기하고, 장애인 교육지원법을 오는 4월 발의해서 올해 통과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연말에는 유아 교육이나 졸업 이후 취업 등을 뒷받침할 법안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갈 길이 멀단다.

"현행 특수교육진흥법은 장애아동 교육에 대해 권고사항만 있을 뿐 의무사항은 없어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편하게 교육받을 수 있도록 현실적으로 시스템이 구체화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 관계자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자신의 아이들이 '벌레' 취급을 받는 수모도 겪었다. "비장애 아이들이 벌레죽은 모습을 보면 섬뜩하듯이, 장애 아이들이 같은 교실에 있는 것을 보면 무엇을 느끼겠냐"고 했다. 박씨는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며 농사를 접고 충남장애인부모회 홍성지회장을 맡아 거리로 나왔다.

박씨는 이날 집회에 참석한 부모 1000여명을 인솔했지만 아들을 걱정할 때는 아버지로 돌아간다. "주말 집으로 내려가서 민서를 관장해줘야 하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아버지 몫을 하기에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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