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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지방기념물 3호인 제주성지
제주도 지방기념물 3호인 제주성지 ⓒ 김강임
제주오름이 인도해 준 제주성지

제주시 인근에 있는 제주 오름을 오르다 보니 오름 산정에 서면 으레 제주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제주시 사라봉과 제주시 원당봉, 제주시 도두봉 산정에서는 봉수대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사람들에게 봉수대는 긴요한 통신시설이었다.

그러면 과연 이곳에서 지키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래서 찾아간 곳이 제주성지다. 제주성지는 우리집 인근에 있다. 자동차를 끌고 수도 없이 성지 옆을 지나가기도 하고, 제주시 동문시장에 갈 때면 제주 성 앞을 지나가기도 했다. 그러나 왜 그리도 제주성은 마음에 담아두지 못했을까?

제주시 오현단에서 바라본 제주성지
제주시 오현단에서 바라본 제주성지 ⓒ 김강임
변방의 섬 그리고 제주성(城)

어느 곳에서나 성(城)은 자신이 살아왔던 역사를 말해준다. 또 성은 선인들이 지켜왔던 자립과 자존의 능력을 밟아볼 수 있는 곳이다. 제주성지 역시 약자인 변방의 섬사람들의 아픔이 숨어 있는 곳이다. 무엇보다도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어느 도시보다도 침략의 기회가 많았던 제주사람들에게 성(城)의 의미는 자신을 지키는 것만큼이나 소중하다.

제주성지 안에 살았던 사람들 그리고 침략을 막기 위해 끊임없이 돌을 날라 성(城)을 쌓았던 사람들. 그래서 제주성지는 더 많은 궁금증을 갖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제주성지 인근에 새겨진 안내문을 읽는 순간 허탈감에 빠져 버린다.

행정기관에서 제시한 제주성지 안내문
행정기관에서 제시한 제주성지 안내문 ⓒ 김강임
…1925년부터 1928년까지 제주항을 개발하면서 성벽을 허물어 바다를 매립하는 골재로 사용하면서 제주성의 옛자취는 대부분 없어졌다.…
-제주성지 안내문 중에서-


성벽과 고목
성벽과 고목 ⓒ 김강임
그동안 성 앞을 지나쳤을 때마다 성 안이 궁금했던 내게 안내문의 이 대목은 발걸음을 주춤하게 했다.

'제주 성(城)을 헐어 매립골재로 사용했다고? 설마 그럴 수가….'

제주여행을 하면서 혼자 묻고 대답해 보는 허탈감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실 제주여행을 하면서 지방문화재와 국보, 보물로 지정된 곳을 돌아보면서 관리소홀과 보존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문화재청이나 해당 기관에 연락을 취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러나 성을 헐어 매립골재로 사용했다는 무지는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할지. 그 허탈감은 제주성지를 두 바퀴 돌아보고 나서야 추스를 수 있었다. 내 마음을 아는 듯 제주성을 지키는 강아지 한 마리는 성지안내문을 읽고 있는 내 곁에서 꼬리를 흔들며 나를 위로한다.

새로 복원된 오현단과  제주성지
새로 복원된 오현단과 제주성지 ⓒ 김강임
탐라국의 유서 찾을 수 있을까?

고려 숙종 때 제주 지방 특유의 화산암을 이용하여 확장 축조했다는 제주성지. 제주성은 역사적으로 언제 쌓았는지 모르는 불분명함에도 탐라국 수부 축성-조선 중종 때 일어난 삼포왜란 당시 방어시설- 명종 때 을묘왜변의 격퇴- 하천 주변에 익성과 보를 쌓았다는 사실 등이 스며있다.

그러나 그 흔적을 찾아내기란 현존하는 제주성지가 왠지 어설프기만 하다. 몇 백 년 동안 뿌리를 내린 고목 옆으로 한 치의 빈틈없이 쌓아올린 돌담길을 걷노라니 탐라의 유서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새로 길이 뚫리면서  성도 사라졌어요
새로 길이 뚫리면서 성도 사라졌어요 ⓒ 김강임
그러나 더욱 마음이 아픈 것은 한적한 성(城) 터를 돌아보는 나그네를 보고 반갑게 맞이하는 노인정에 계신 할아버지의 말씀.

" 제주 성(城) 보러 왔수꽈? 뭐 볼 꺼 있다고! 제주 성(城) 말이우다, 도시계획으로 새 길 내면서 성도 잘라버렸지 마심!"

노인정 앞에 서 계신 할아버지께서는 등 뒤에 서서 예전에 무너져 버린 성지 소식을 계속해서 퍼부어 댔다. 그러나 한마디 말도 화답할 수 없는 나는 4월을 시샘하는 꽃샘추위에 온몸이 바짝 얼어붙었다.

돌을 쌓아 올려 변방의 섬을 지켜왔던 선인들의 자립정신을 제주항에 내다 버린 몰지각한 행동과 성(城)의 보존과 도시계획의 우선순위를 인지하지 못하는 행정에 울분을 터트리는 순간이었다.

유서깊은 유적지 제주성지


제주성은 제주시 이도1동 1437-6외 3필로, 언제 처음 쌓았는지 분명하지 않으나 이 지방에 많은 화산암을 이용하여 고려 숙종 때 둘레 4,700척, 높이 11척으로 확장·축조하여 면모를 새롭게 하였다. 조선 중종 7년(1512) 삼포왜란 뒷수습책의 일환으로 목사 김석철이 둘레 5,486척으로 확장하고 방어시설을 갖추었다. 이때 성 안에는 샘이 없어 별도로 중성을 쌓아 급수토록 하였다.
명종 10년(1555) 을묘왜변 때에 왜선이 침범하여 성을 포위하고 공격했으나 이를 격퇴하는 데 성공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목사 성윤문이 성벽 높이를 5척 더 높여 쌓고 포루 등의 방어시설을 더 갖추었고, 정조 4년(1780) 목사 김영수가 산저천변(山底川邊)과 별도천변(別刀川邊)에 익성(翼成)과 보(堡)를 쌓았고 이후 계속 수축을 보았다. 지금은 이들 옛자취가 거의 없어졌으나 탐라국 때부터 있었던 유서 깊은 유적지이다. - 문화재청-

덧붙이는 글 | ☞ 찾아가는길: 제주시-제주시 남문로터리-제주성지로 10분 정도가 걸린다. 제주성지 옆에는 오현단이 자리 잡고 있다. 제주성지를 한바퀴 돌아보는데 걸리는 시간은 20분 정도가 소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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