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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빼미족들의 주활동무대인 PC방(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권우성
주침야활(晝寢夜活).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일 것이다. 모 디카 사이트에서 활동하는 네티즌이 만들어낸 용어다. 암울했던 그 시절의 상징인 '통금'이 사라지고, 유흥업소 영업시간 제한이 풀리는 등 사회 분위기가 해방 모드로 기울어지면서 '올빼미족'들은 드디어 새벽을 만끽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리게 됐다. 그와 더불어 탄생한 게임방과 편의점. 자, 그들은 진정한 새벽 인간으로 거듭났다.

'주침야활'이라는 말처럼 그들의 실생활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말은 없는 것 같다. 남들 다 잘 때 말똥말똥한 눈을 살포시 뜨며, 해가 중천에 뜨면 잠에 빠져드는 그들을 일명 '폐인'이라고도 하지만, 원래 뜻이 좋지 않아 가급적 지양하고 싶은 표현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을 '올빼미족'이라고 불러 달라.

나는 2년 가까이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며 그들을 지켜봤다. 주로 편의점과 게임방에서 일했는데, 새벽 시간이기 때문에 마냥 한가할 것이라고 봤던 내 예상은 완벽하게 빗나갔다. 알고 보니 여긴 총소리만 안 들릴 뿐이지 전쟁터였다. 그 전쟁터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새벽마다 벌어지는 총성 없는 '외상 전쟁'

ⓒ 박형준
경험자라면 알겠지만 게임방과 편의점에서 주인과 '알바'를 괴롭히는 가장 큰 골칫덩이는 바로 '외상'이다.

게임방이라면 유형이 참 다양하다. 다음에 찾아오면 반드시 정산하는 '매너짱' 손님이 있는가 하면, 나중에 준다고 끝없이 미루는 '돌발 상황'은 정말 난처하다. 이런 '매너꽝' 손님은 대부분 '올빼미족'이기 때문에, 새벽 시간에 일했던 내가 자주 겪어야 했다.

내가 일했던 한 게임방에서는 우유부단한 주인 성격을 눈치 챈 것인지(주인이 할아버지셨다), 무려 150만 원 가까운 외상을 쌓아두고도 갚을 생각을 하지 않는 손님이 있었다. 더 재미있는 것은 어느 날 그 동생까지 나타나 한 달 만에 20만 원의 외상을 경쟁하듯이 쌓았다는 것.

그래서인지 가장 최근에 일했던 게임방 사장님은 2만 원이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며, 철저하게 중간정산을 받으라고 지시했다. 여기서 조금만 '진도가 나가면' 알바와 손님 모두 불려가서 상담(?)을 받는다. 웬만한 곳에서는 모두 중간 정산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난 굳이 사장님 지시가 없더라도 내 정신 건강을 위해서 철저하게 중간 정산을 받았다. 그럼에도 스트레스 받을 때마다 한두 개비 피우던 담배가 어느새 하루 두 갑으로 늘어, 골초 중에 골초가 되고 말았다.

'외상'에서 비롯되는 이 모든 일들은 게임방 '올빼미족'이 대부분 대단한 체력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온라인 게임을 즐기는 이들은 최소 12시간 이상 게임을 하는 편인데, 어떤 이들은 사흘도 우습다.

한 50대 아저씨는 무려 열흘 동안 게임 삼매경에 빠졌다. 잠도 간이 소파에서 잠깐씩 잤다. 이럴 분을 볼 때면 갑자기 변이라도 당하면 어쩌나 얼마나 불안한지.

"술 드셨으면 제발 댁에서 주무세요"

편의점의 새벽 전쟁은 주로 술 때문에 일어난다. 외상을 주지 않는다고 난리가 나는 것은 물론이고, 갈 곳이 없어서 그러니 딱 한 잔만 편의점에서 마시다 가겠다고 떼를 쓰는 손님 등 그 유형도 다양하다. 물론 가장 골치 아픈 유형은 역시 '외상'이다.

편의점은 원칙적으로 외상이 없다. 편의점 외상 전쟁은 바로 이 부분에서 일어나는 충돌이다. 주로 취객들이 외상을 달라고 우기는 편인데, 외상은 안된다고 하면 고성이 나오는 것은 물론, 주먹을 휘두르는 취객도 있다. 오죽하면 그럴 때마다 매번 파출소에 신고해서 그런지 경찰 아저씨들과 오붓한(?) 친분을 나눴을 정도였다.

▲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에게 새벽 취객은 감당하기 힘든 손님이다. 서울시내의 한 편의점(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권우성
내가 기억하는 가장 특이한 손님은 한 50대 중반 아저씨였다. 매번 술 취해 오시는 이 손님은 냉장 쇼케이스에서 소주 한 병을 꺼내 갈증에 시달린 것처럼 술을 벌컥벌컥 마시고 대뜸 "돈이 없다"고 우기는 유형이다. 어쩔 수 없이 한두 번은 그냥 보내고 우리 돈으로 계산했지만, 그 다음부터는 그 아저씨의 출입 자체를 거부하게 됐다.

그 아저씨는 두 번째 거사에 성공하며 아무도 없는 밤거리를 비틀비틀 걷다가 뒤늦게 달려오신 아주머니에게 "이놈의 인간아"라는 고성을 듣고 구타까지 당하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우리가 보고 듣기 민망할 정도로 '쩍쩍' 소리가 밤거리를 울렸으니. 워낙 무서운 기세로 벌어진 일이라 접근해 말릴 엄두도 못 냈다.

공짜 커피가 주업무를 바꿔놓다

게임방 알바가 가장 싫어하는 일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커피 배달'. 밤새는 탓인지, 올빼미족들은 커피라면 사족을 못 쓴다. 보통 사람이라면 많이 마셔도 하루 5잔 이내겠지만, 그들은 5잔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 24시간을 기준으로 기본이 10잔이고, 많으면 20잔이다.

더 황당한 것은 자판기가 분명히 있음에도 뽑아먹기가 귀찮아서인지, 매번 배달을 요구한다는 것. 알바의 주된 업무인 돈 계산이나 각종 청소보다 커피 뽑아주는 일을 더 많이 할 정도다. 특히 하루에 20잔 넘게 마시던 한 아저씨. 문을 열고 들어오는 자체로 본능적인 두려움이 느껴졌다.

예전에는 이 자판기 커피에 요금 100원을 받았다. 그때는 커피를 뽑아먹는 사람이 드물었는데, 서비스 차원에서 공짜로 방향을 바꾼 그날부터 '커피 배달'이 알바의 '주업무'가 돼버렸다. 100원의 위력이 이 정도일 줄이야.

게임방이야 그렇다 쳐도, 편의점에서는 외상이 없다면서 왜 공짜 얘기가 나오냐고? 여기서도 사소한 공짜가 이따금 고성이 나오게 한다. 비닐봉투 때문이다. 환경정책에 따라 신고 정책까지 생기면서 비닐봉투를 유료로 제공하게 된다.

하지만 일부 손님들의 인식은 아직 바뀌지 않았다. 비닐봉투가 절실히 필요할 정도로 물건을 많이 샀다면 모르겠지만, 고작 캔맥주 하나 사놓고 비닐봉투 그냥 달라고 떼쓰는 아저씨들 참 많았다. 20원 얘기하면 화낸다. 어쩔 수 없다. 이거 잘못 걸려서 신고 당하면 손해 보는 건 우리뿐이니까.

게임방에서는 게임 때문에 정말 급할 때가 아니라면 웬만하면 본인이 직접 뽑아먹는 미덕이, 그리고 편의점에서는 정부의 정책을 충분히 인식하는 미덕이 필요하다. 공짜 너무 좋아하면 뭐 된다는 우리 조상님들의 슬기로운 말씀도 있지 않던가?

▲ 올빼미족 덕에 커피 배달이 게임방 아르바이트생들의 주업무가 돼 버렸다.
ⓒ 박형준
오늘도 '올빼미족'과 '새벽 알바'는 같이 밤을 지새운다

물론 먹을 것이 있으면 반드시 알바도 나눠주는 고마운 분들도 많다. 이런 분들은 평소에도 알바를 '혹사'시키지 않는다. 사소하다면 사소할 수 있는 게임의 현장에서도 인격은 유감없이 드러난다. 이것만 확실히 알아두자. 알바도 인격에 따라 친절의 정도가 좌우될 수 있다는 것. '왕'으로 대접받고 싶다면, '왕 노릇'도 어느 정도는 해야 한다.

'올빼미족'들에게 부탁하고 싶다. 알고 보면, 알바들 불쌍하다. 물론 무단으로 결근한다거나 무책임하게 일하는 '무개념 알바'들도 있어 확실한 주의를 줘야겠지만, 기본적으로는 법정최저임금을 전혀 보장받지 못하는 가련한 '비정규직'들이다. 업소 사장님에게 '계약서'를 들이미는 용감무쌍한 '알바'는 없다. 노동부는 정말 실태 조사라도 한번 하는지 궁금하다.

'올빼미족'과 '새벽 알바'는 같이 밤을 지새우며 동고동락하는 사이다. 결국 어차피 부대끼며 사는 같은 '서민'들인 것이다. 냉정하게 자신을 돌아보며, '게임비'를 지급할 여력이 되지 않는다면, 과감히(?) 집에 들어가서 숙면을 취하는 게 어떨까?

'올빼미족'도 돈 없으면 할 수 없다는 준엄한(?) 자본주의의 원칙을 내가 지나치게 적용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기본적으로 쓸데없는 일로 서로 인상을 찌푸리는 일처럼 피곤한 순간은 없다고 본다. 피곤한 일을 사서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즐거운 게임을 위해, 보다 더 즐거운 '새벽'을 위해 '올빼미족'은 자신을 '폐인'으로 깎아내리는 불필요한 일은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와 한겨레신문의 제 블로그에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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