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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한 일주문이 없이 소박한 모습으로 반겨주는 실상사 입구의 정겨운 표식
거창한 일주문이 없이 소박한 모습으로 반겨주는 실상사 입구의 정겨운 표식 ⓒ 이종혁
지리산 실상사(實相寺)를 여러 번 방문했지만, 그 전에는 산 아래 평지에 조용하게 자리 잡은 평범한 사찰로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알고 나면 다르게 보인다고 했던가요? 풍수학을 공부한 분과 함께 다시 방문한 실상사는 매우 새롭게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실상사 입구의 다리
실상사 입구의 다리 ⓒ 이종혁
3월 말에도 아직 녹지 않은 웅장한 천왕봉이 멀리 버티고 있습니다. 산 줄기가 주위를 감싸고 있지만 절터는 평평해서 편안한 느낌입니다. 버스에서 내려 다리를 건너면 실상사 입구입니다. 저를 가장 먼저 반겨주는 것은 아기자기한 목장승과 석장승. 조금만 더 걸으면 '지리산 실상사' 표식이 보입니다. 그 뒤 커다란 일주문 대신 바로 천왕문이 보이는데, 그게 일주문처럼 여겨졌습니다. 경내에 들어서니 단아한 탑과 석등, 소박해 보이나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저를 맞이합니다.

실상사에서 바라보이는 천왕봉. 3월 말에도 눈이 쌓여있다.(망원으로 찍음)
실상사에서 바라보이는 천왕봉. 3월 말에도 눈이 쌓여있다.(망원으로 찍음) ⓒ 이종혁
구산선문 첫번째 가람 실상사

통일신라시대인 828년(흥덕왕 3년), 홍척국사에 의해 창건된 실상사는 국내 최초의 선종사찰로 의미가 깊습니다. 선종은 달마대사에 의해 창건됐는데, 국내에선 홍척국사 이후 크게 번성하게 됩니다. 당시 국내 선종의 아홉 교파를 구산선문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때 근거지가 된 곳이 실상사와 장흥 보림사, 강릉 굴산사, 곡성 태안사, 보령 성주사, 능주 쌍봉사, 문경 봉암사, 창원 봉림사, 수미산 광조사입니다.

그 중 실상사는 정유재란 때 모두 불에 탔다가, 조선 숙종 때 건물 36동이 다시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다시 고종 때 화재를 당해 소규모로 복원되었습니다. 안내문에 나온 내용입니다.

천왕문에 들어서서 경내를 바라본 모습. 두개의 석탑과 석등이 조화롭게 균형을 이루고 있다.
천왕문에 들어서서 경내를 바라본 모습. 두개의 석탑과 석등이 조화롭게 균형을 이루고 있다. ⓒ 이종혁
실상사와 풍수

실상사는 풍수사상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함께 여행을 한 풍수전문가께서 설명을 해주십니다.

그는 "수련을 해서 풍수를 잘 읽게 되어 말씀드리는 부분은 아니다"고 운을 뗀 뒤, "서양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미신일수도 있겠지만 자연과 삶을 동일한 것으로 보아온 조상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이야기로 들어달라"고 다시 한 번 강조했습니다.

그는 "백두산에서 이어져 내려온 백두대간의 정기가 지리산에 이르러 그 기세를 멈추지 않고 일본의 후지산까지 전해진다"면서 "백두대간의 정기를 갈무리(잘 챙기어 간수함)해서 일본으로 가는 기운을 끊고 한반도의 기운을 더욱 강하게 하는 곳이 실상사의 풍수학적 의미가 있다"고 실상사를 소개했습니다.

약사전 철제여래좌상. 관광객이 손을 만지고 있다.
약사전 철제여래좌상. 관광객이 손을 만지고 있다. ⓒ 이종혁
약사전의 철제여래좌상

풍수전문가는 풍수와 관련된 실상사의 주요 장치들을 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약사전에는 철로 만들어진 2.7m의 불상이 있는데, 불상이 정확하게 천왕봉 자리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천왕봉에서 내려온 기운은 이 불상의 왼손을 거쳐서 나아갑니다. 그래서 왼손을 만지면 좋은 기운이 전해진다는 이야기 때문에 방문객들이 많이 만지고 있습니다. 반질반질하게 닦여진 게 사람 손을 많이 탔기 때문이지요. 이 손은 부서졌다가 복구됐습니다. 손 부분만 목재로 된 까닭입니다. 약사전 건물 뒤쪽에서 천왕봉을 등지고 서 있으면 기운이 흐르는 것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기감이 예민한 사람의 경우 빨리 감지하지요."

이 철불이 일본으로 흐르는 기운을 깔고 앉아 있다고도 합니다. 구경하는 동안 관광객들이 들어와 불상의 손을 만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철제여래좌상의 왼손. 손 부분만 목조로 되어 있으며 사람들의 손을 타서 윤이 난다
철제여래좌상의 왼손. 손 부분만 목조로 되어 있으며 사람들의 손을 타서 윤이 난다 ⓒ 이종혁

보광전 범종. 아랫쪽에 일본 지도가 그려져 있고 타종부분은 지워져 있다.
보광전 범종. 아랫쪽에 일본 지도가 그려져 있고 타종부분은 지워져 있다. ⓒ 이종혁


보광전 범종

풍수전문가가 이번엔 보광전 실내에 있는 조그만 범종을 이야기합니다. 그는 "타종하는 곳을 보면 일본 열도가 그려져 있다"면서, "하루 세 번 이 범종을 타종하는 것으로 일본 쪽으로 흐르는 기운을 차단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일제 시대 때는 주지스님이 일본경찰로부터 탄압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곁들였습니다.
실상사 석등과 보광전
실상사 석등과 보광전 ⓒ 이종혁

발굴할 때 나온 기와로 만들어진 옛 기와탑
발굴할 때 나온 기와로 만들어진 옛 기와탑 ⓒ 이종혁


문화재가 많은 실상사

실상사는 문화재가 많기로 유명합니다. 실상사백장암삼층석탑(국보10호)을 비롯 실상사수철화상능가보월탑(보물33호), 실상사수철화상능가보월탑비(보물34호), 실상사석등(보물35호), 실상사부도(보물36호), 철재여래좌상(보물41호), 증각대사응료탑(보물38호)과 탑비(보물39호), 백장암 석등(보물40호), 청동은입사향로(보물420호), 약수암목조탱화(보물421호), 석장승(주요민속자료 15호) 등이 대표적인 문화재입니다. 사천왕문을 지나면 옛기와탑이 나옵니다. 발굴하면서 나온 기와유적들로 만들어진 곳입니다.

낮은 돌담길과 대나무가 운치를 더해준다.
낮은 돌담길과 대나무가 운치를 더해준다. ⓒ 이종혁
농사에 쓰일 거름을 확보할 수 있는 전통식 친환경 뒷간은 재미있고, 나지막이 절을 둘러싼 돌담길은 운치 있습니다. 공양전에서 먹는 절밥 또한 일품입니다. 이 곳에선 템플스테이(사찰 체험) 프로그램이 진행 중입니다.

가까운 곳엔 지리산 백무동 계곡과 뱀사골 계곡이 있습니다. 백두대간의 기운이 흘러 내려와 모이는 실상사에서 그 기운을 한 번 느껴보는 것은 어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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