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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알록달록 동물원>
ⓒ 시공주니어
아기 책을 구입하기 위해 인터넷 서점을 기웃거리다 보면 책에 대한 아이 엄마들의 평가를 대충 알 수 있다. 이 책은 아이가 너무너무 좋아하더라, 그림이 예쁘다 등 좋은 평부터 시작하여 책 모서리가 너무 날카롭다, 종이가 얇다, 그림이 조잡하다 등의 부정적인 평가까지 엄마들의 눈은 예리하기만 하다.

다른 엄마들의 평가를 굳이 관찰하지 않더라도 몇 권의 아기 책을 구입해 보면 어떤 책이 아이에게 좋은지 한눈에 들어온다. 종종 아기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책을 만나게 되면 우리나라 출판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생긴다. 모서리가 너무 뾰족한 책, 아이가 별로 좋아할 것 같지 않은 삽화, 얇은 종이로 금방 찢기는 책 등 가끔은 이게 진짜 아기 책인가 싶을 때가 있다.

이번 기사에서는 '왜 이렇게 만들 수밖에 없을까, 좀더 신중하게 성의껏 만들었으면 좋았을 것을…'하는 아쉬움이 드는 책 두 권을 소개해 볼까 한다.

첫 번째로 소개할 책은 로이스 엘러트의 그림책 < Color Zoo >를 번역한 <알록달록 동물원>이다. < Color Zoo >는 아기의 시각적 능력을 고려하여 원색과 단순한 도형만으로 책의 전부를 구성하였다. 네모, 동그라미, 타원, 다이아몬드 모양 등의 도형을 이용하여 사자, 호랑이, 원숭이 등의 동물을 표현했다는 점이 매우 독창적이고 특이한 그림책으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책의 판권을 '시공 주니어'가 가지고 있으며 <알록달록 동물원>이라는 이름으로 번역되어 나왔다. 영어책 전문 서점에서 구입한 < Color Zoo >와 <알록달록 동물원>을 비교해 보면 두 책의 차이점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원본은 하드 보드지로 만들어져 잘 찢기지 않고 모서리를 둥글게 처리하여 아이의 눈을 다치게 할 위험이 별로 없다. 반면 번역되어 출판된 <알록달록 동물원>은 얇은 종이 재질로 되어 있다. 이 책은 특이하게 각 책장에 동그라미, 네모, 세모 등의 도형 모양이 구멍으로 뚫려 있는데 가뜩이나 얇은 탓에 찢어지기 쉽다.

돌 이전의 아이들이 볼 만한 책인데 그 시기 유아의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출판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쉽게 가지고 놀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종이의 재질과 책의 형태 또한 신중히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또 다른 책은 레이먼드 브릭스의 < The Snowman >을 번역한 <눈사람 아저씨 만져보기 책>이다. 이 책의 경우 원래는 글자 하나 없이 그림으로만 표현한 '진짜' 그림책이다. 영어책 서점에서 찾아보면 여러 출판사에서 보드북(종이 재질이 단단하고 모서리를 둥글게 한 책), 하드커버 양장, 페이퍼백 등 다양한 형태로 내 놓았다.

▲ 책
ⓒ Puffin Books
우리나라에서는 '마루벌'이라는 회사가 판권을 갖고 파스텔로 그려진 그림책 <눈사람 아저씨>와 기존의 것을 재구성하여 만져보기를 할 수 있도록 입체적으로 만든 <눈사람 아저씨 만져보기 책> 두 종류를 선보였다. 둘 다 기존 원작에 충실해서 편찬했으므로 그림이나 색감의 전달력 면에서는 손색이 없다.

아쉬운 점이라면 보드 북이 아닌 일반 그림책으로 내놓는 바람에 아기들에게는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반 그림책처럼 겉표지만 두꺼운 양장이고 내용은 얇은 종이에 담겨 있다. 책 표지의 뾰족한 모서리는 자칫 아이의 눈을 다치게 할까 두렵고 얇은 책장은 연약한 피부에 상처를 낼 것만 같다.

<만져보기 책>의 경우 유아의 촉감을 자극하는 효과가 있어 많은 아기 엄마들에게 인기가 있다. 책 속에는 장화의 미끄러운 부분, 털모자와 목도리의 까실까실함, 고양이털의 부드러움을 모두 살려내어 아이의 손을 붙잡고 만져보기 체험을 하기에 좋은 편이다. 그래서 오감이 급속하게 발달하는 시기인 돌 전 아기에게도 적합한 책이다.

책의 내용 또한 마음 따뜻해지는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눈이 많이 온 날 눈사람을 만들며 놀았던 한 아이. 이 아이의 꿈에 눈사람 아저씨가 방문하여 같이 하늘을 날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는 낭만적인 스토리를 담고 있다. 색연필로 그려진 예쁜 그림과 파스텔 톤의 색상 또한 전 세계인의 마음을 끌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이 책을 아이에게 읽어 주는 동안 엄마는 내내 가슴을 졸여야 한다. 끝이 송곳처럼 뾰족한 책의 귀퉁이가 아이의 눈을 찌르기 쉽기 때문이다. 색연필로 잔잔하게 그린 파스텔 톤의 그림, 가슴 따뜻한 이야기, 만져 보기 체험을 할 수 있는 좋은 구성에도 불구하고 높은 점수를 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아이의 안전을 고려하지 않은 형태의 책을 어떤 엄마가 좋다고 하겠는가. 아이 책을 출판하는 사람들은 좀더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자기 아이가 이 책을 볼 때에 어떤 점이 편리하고 또 어떤 점이 불편할까를 고려한다면 이런 문제는 좀 줄일 수 있지 않을까?

기존의 원서는 아이의 특성을 배려하여 보드북으로 출간했는데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재질이 바뀌는 책들. 이런 책들을 보면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번역 책 출판을 통한 이윤 창출에만 급급한 나머지 책을 읽는 대상에 대한 고려는 뒷전인 듯하다. 좋은 그림책의 판권을 사 국내 시장에 내놓으면서 '우리가 독점 계약이니 사 볼 사람만 사 보시오'라는 식의 배짱은 이제 그만 둘 때이다.

알록달록 동물원

로이스 앨러트 글.그림, 문정윤 옮김, 시공주니어(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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