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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저는 다른 사람들 일에 끼어드는 걸 싫어합니다. 각자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지요. 물론 항상 그렇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이런 경우는 예외겠지요. 가령 국회의원이 술집에서 여기자를 성추행한다든가, 총리가 3·1절에 만세삼창 대신 내기골프를 친다든가, 이름깨나 있는 사람이 특정인에게 독설을 퍼붓는다든가….

저는 남하고 저를 비교하는 것도 싫어합니다. 아마 그랬던 것 같아요. 본능적으로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아무리 뜯어봐도 제가 내세울 게 없었거든요. 도무지 남보다 잘하는 게 없었으니까요. 공부도 못했지, 운동도 못했지, 말도 더듬었지…. 그렇다고 외모가 좋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작은 키에 큰 머리, 까무잡잡한 얼굴, 이러니 자신감인들 생겨났겠습니까.

저는 직장에서나 집에서나 조용한 편입니다. 있는 듯 없는 듯 그렇게 살아갑니다. 남에게 도움을 준 적도 별로 없습니다. 오히려 피해 끼치지 않고 살아간 것만으로도 다행입니다. 아마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저도 모르게 무관심이 몸에 밴 듯합니다. 타인은 물론 가족에게까지 말입니다.

그러다 보니 성격도 소극적으로 변해가더라고요.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이겠지만 저보고 다들 순하다고 합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저보고 천사라고까지 합니다. 뭐, 제가 화낸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나요. 저는 그때마다 고개를 설레설레 흔듭니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저도 사람입니다. 어찌 화를 내지 않겠습니까? 단지 참을 뿐이지요."

그런데 있지요. 부끄럽게도 제게는 나쁜 버릇이 한 가지 있습니다. 아마 제 말을 들으면 독자들도 실망하실 겁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사실대로 털어놓아야지요. 그래야만 속이 편하니까요. 그게 뭐냐 하면 말이지요. 이상하게도 가족에게만은 제가 화를 잘 낸다는 겁니다. 오죽했으면 아내가 저 보고 그랬겠습니까. 아이를 셋 키운다고요.

▲ 제 두 딸입니다
ⓒ 박희우
지난 일요일(19일)이었습니다. 저는 무단히도 아내에게 화를 냈습니다. 원인은 봉급에 있었습니다. 3월 봉급이 예상보다 적게 나왔습니다. 아내가 쓸 곳은 많은데 큰일이라고 합니다. 아이들 과외부터 줄여야겠다고 합니다. 제가 4월에는 좀 나아질 거라며 아내를 위로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습니다. 불쑥 아내가 제 심기를 건드리는 말을 합니다.

"안되겠어요. 식당에라도 나가서 접시라도 닦아야겠어요."

갑자기 자존심이 상합니다. 남편의 권위가 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더욱 제 심기를 건드리는 것은 은근슬쩍 아무개 아빠하고 저를 비교합니다. 그분은 공장에 다니는데 월급이 그렇게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애써 마음을 다독거립니다. 참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럴 때는 말하는 것만큼 좋은 게 없습니다. 하지만 목소리에는 노기가 배어있습니다. 저도 그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거, 무슨 말이요. 공무원은 자고로 청렴해야 합니다. 그리고 당신 말이요? 뜬금없이 왜 이웃 남자를 끄집어들이고 그래요. 그 사람은 그 사람이고 나는 나란 말이요. 그 집보다 조금 아껴 쓰면 될 것 아니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제 마음이 여간 쓰린 게 아니었습니다. 아내도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옷을 챙겨 입었습니다. 봉급이 아무리 적게 나왔어도 가족들까지 우울하게 할 순 없습니다. 저는 가족을 데리고 식당에 갔습니다. 삼겹살을 푸짐하게 먹었습니다. 아이들은 아무 것도 모른 채 "아빠, 우리는 부자지요?"라며 재잘댑니다.

그런데 오늘 새벽이었습니다. 제게 메일이 한 통 들어왔습니다. 눈에 익은 이름입니다. 그분은 이전에도 제게 메일을 종종 보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한 번도 답장을 해주지 못했습니다. 영어 실력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메일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Your salary is not little in America. Even though American seem very rich, most of them don't make much money. Living expense in S. Korea is TOO high. Since last year, gasoline price is up and up. I suffer too much. I don't know why everything is expensive in S. Korea. Don't you think there is something wrong?"

"당신의 월급은 적은 게 아니다. 미국이 부자처럼 보여도 실상은 그렇지 않다. 한국에서는 생활비가 비싸다. 휘발유 값으로 나도 고통을 겪고 있다. …."

저는 영어 실력이 짧아 이 정도로밖에 해석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정확한 해석을 기다리겠습니다. 어쨌든 메일은 제게 위안이 되었습니다. 우울했던 감정이 싹 가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제가 글을 올릴 때마다 위로의 메일을 보내주었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아내도 자기 딴에는 미안했던 모양입니다. 어제는 저를 위로한다며 백숙까지 끓였습니다. 백숙을 먹으면서 저는 아내의 등을 다독거렸습니다.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합니다. "이래도 식당에 나갈 거요?" 하니 아내가 제 팔을 꼬집습니다. 아내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얼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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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이 맞는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저는 수필을 즐겨 씁니다. 가끔씩은 소설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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