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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전형적인 봄 날씨입니다. 들판에 아지랑이가 모락모락 피어납니다. 곳곳에 새싹이 움틉니다. 얼마 안 있어 버들가지에도 물이 오르겠지요. 물론 제가 살고 있는 뒷동산에도 진달래가 붉게 타오르겠지요. 어쨌든 봄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아름답습니다. 행인들 얼굴에 그렇게 씌어 있습니다. 생기 돋은 얼굴이 그걸 말해줍니다. 아이들이 노래를 부릅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린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홍난파 작곡, 이원수 작사의 ‘고향의 봄’이라는 노래입니다. 선생께서는 이 노래를 1925년(당시 14세)에 지었습니다. ‘고향의 봄’ 배경은 제가 살고 있는 경남 창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국민들은 이 노래를 애국가보다도 더 많이 부른다고 합니다. 어린이 날이면 어김없이 이 노래가 나옵니다. 고 육영수 여사도 이 노래를 즐겨 불렀습니다.

▲ 아내가 가져온 꽃도 금방 이렇게 피겠지요
ⓒ 박희우
공원에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가족 단위로 많이 나왔습니다. 자전거를 타기도 하고 아버지와 아들이 축구를 하기도 합니다. 큰애는 자전거를 가지고 나오지 않은 게 아쉬운 모양입니다. 자전거 타는 아이를 부러운 듯 바라봅니다. 저는 가족을 데리고 농구장에 갔습니다. 두 패로 나뉘어 농구를 했습니다. 아이들도 재미있어 합니다.

“엄마, 배가 고파요?”

작은애가 말합니다. 저는 싱긋 웃으며 식당에 가자고 합니다. 아이들이 좋아합니다. 식당에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텔레비전에서는 야구 중계방송이 한창입니다. WBC 4강전, 한국과 일본의 경기입니다. 7회 말입니다. 6:0으로 한국이 지고 있습니다. 7회 말이라, 아무래도 힘들 것 같습니다. 삼겹살이 나옵니다. 저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많이 먹으라고 합니다.

그런데 아내 표정이 어둡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내쉽니다. 저는 지금 18년째 법원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직급은 6급이고 17호봉입니다. 그런데 3월 봉급이 얼마인지 아십니까? 제세공과금을 제하고 230여만 원이었습니다. 들어갈 돈은 많은데…. 아내의 걱정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습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아껴 쓰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습니다. 저보다 수입이 적은 사람들도 많으니까요. 그런데 있지요. 어쩐지 서운한 마음을 숨길 수는 없습니다. 어떻게 된 영문이 20년 가까이 근무했는데도 형편이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수당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일이 편해진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자꾸만 늘어갑니다.

저는 삼겹살 2인분을 더 주문합니다. 아내가 괜찮다고 하지만 저는 고집을 굽히지 않습니다. 기어이 2인분을 추가하고 맙니다. 한번 올 때 맘껏 먹어두는 게 제 마음도 편합니다. 아이들도 친구들에게 자랑하겠지요. 근사한 식당에서 외식을 했다고 말입니다. 하, 하, 근사한 식당이라고 해봤자 삼겹살 먹은 게 전부이긴 합니다만.

식당을 나설 때쯤 야구가 끝났습니다. 6:0으로 한국이 졌습니다. 그래도 저는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습니다. 4강이 어디입니까. 4강에 올라오면서 일본과 미국을 연거푸 제압한 우리가 아닙니까. 오늘은 실력으로 진 게 아닙니다. 운이 나빴을 뿐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했습니다.

화창한 봄날입니다. 살랑살랑 부는 바람이 더 없이 포근합니다. 인부들이 도로가를 정리합니다. 그런데 막 움터 오르는 꽃들을 마구 파냅니다. 이유를 물으니 시민들이 이곳에 아무거나 심는다는 겁니다. 호박도 심고, 고추도 심고, 꽃들도 심고…. 그래서 철쭉으로 통일을 시킨다는 겁니다. 어쩐지 그들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여러 가지 모습을 볼 수 있는 것도 여간 큰 행복이 아닙니다. 아내가 안타까웠던지 인부에게 부탁합니다.

“아저씨, 막 움터 오르는 저 꽃 있지요. 한 삽만 퍼 줄 수 있으세요?”
“얼마든지 퍼 드리지요.”

아내는 아저씨가 펀 준 꽃을 두 손으로 받쳐가지고 옵니다. 집에 오자마자 네모진 화분에 옮겨 심습니다. 저는 저 꽃이 무슨 꽃인지 모릅니다. 아내더러 물으니 자기도 모른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름을 모르면 어떻습니까. 보면 볼수록 아름다운데요. 아내는 손으로 열심히 화분 주위를 닦습니다. 그 모습이 하도 아름다워 저는 한참을 바라보고 서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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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이 맞는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저는 수필을 즐겨 씁니다. 가끔씩은 소설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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