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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은 단군시대에는 모래가람, 모래내, 사천(沙川), 기문화, 백제 때는 다사강(多沙江), 그리고 고려 초에는 두치강으로 불리다가, 고려 말에 섬진강으로 그 이름을 굳혔는데 특히 옛날부터 그 고운 모래로 유명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각 지자체의 눈 먼 이득 챙기기에 급급하여, 무작정 포크레인으로 파내다 보니 위쪽으로부터 모래들이 자꾸만 쓸려 내려와 지반침하현상이 뚜렷하다. 그 여파로 수십 만 년 잠자고 있던 암반들이 튀어 올라와 섬진강의 환경파괴에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런 섬진강은 곡성군 오곡면 압록에 이르면 폭이 넓어지기 시작하여 양쪽으로 넓은 모래사장이 펼쳐지고 수량이 더욱 풍부하여 진다. 옛날에는 하구에서 40㎞ 거리인 구례구까지 배의 향해가 가능했으나, 현재는 이용되지 않고 있다. 어딘들 강줄기가 아름답지 않은 곳이야 있겠는가마는 곡성에서 압록, 구례로 이어지는 이 길은 바로 섬진강가와 맞닿아, 일년 내내 수많은 꽃들이 피고 지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는, 그야말로 백미 중의 백미이다.

기차의 레일이 곱게 섬진강 강줄기를 따라 순하게 놓여 있으며, 이 길을 따라 또 얼마나 많은 나그네들이 애를 태웠을까? 예술가들의 가슴은 또, 얼마나 시렸을까. 건너편 물 속에 잠긴 지리산의 마음은 아, 시인이 아니더라도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깊이 통찰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또한 이곳은 순천대에 계시는 곽재구 시인의 시에 정태춘님이 곡을 붙인 아름다운 <유곡나루>가 있고, 그 건너편으로 곡성군에서 관광용으로 개발한 옛 시절의 열차도 타 볼 수 있어 그 정취를 한껏 더 느끼게 해준다.

1965년 운암제 아래에 섬진강 다목적 댐(갈담저수지)이 건설되었으며, 이 물은 보성강과 합쳐져 광양만 으로 흘러들어 남해와 그 기나긴 몸을 합친다. 그러나 이 지역에 1988년부터 광양제철소가 건설되어 건너편 여천 공단지역과 더불어, 청정지역 남해 바다의 오염을 갈수록 가속화 시키고 있다.

그리고 하류 쪽인 하동군 화개면 용강리에는 840년에 창건된 신라고찰 쌍계사와 불일암, 천관녀의 오줌발처럼 힘차게 떨어지는 아름다운 옥류(玉流), 불일폭포가 있다. 먼 옛날부터 이 지역은 야생녹차의 주산지로도 유명했으며, 들어가는 입구부터 많은 차실과 녹차들이 전시되어 있고, 녹차를 직접 만드는 공장들도 이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되고 있다. 들어가는 입구에 화개장터가 유명하며, 조영남이 불렀던 "경상도와 전라도를 사이에 두고 섬진강 구비 따라 화개장터에"의 노래무대로도 유명하다.

특히 수십 리 길의 섬진강가를 따라 펼쳐지는 벚꽃이 필 때, 이 길을 따라 쌍계사까지 피는 벚꽃 길도 이 섬진강과 어울려 그야말로 눈이 부시다. 그리고 가까운 곳에 홍쌍리 씨의 매화마을이 있고, 하춘화가 불렀던 "하동포구 80리에 달이 뜨는데"의 <하동 포구>의 무대도 이 인근이다.

금강산 구경도 식후경이라, 구경 길에 지친 나그네들이 배를 채울 수 있는 것으로는, 물 맑은 섬진강 은어, 속 풀이로 천하 일미인 재첩, 빨간 발이 돋보이는 참게 들이 유명하다. 특히 아는 사람들만 살며시 잡아서 몸보신과 술안주로 으뜸인 메기, 가물치들도 잡힌다. 섬진강가에는 이 시대를 비껴서 살고 계시는 송수권 시인께서는 요즘에도 밤이 되면 가만히 내려가셔서, 섬진강의 가물치를 다잡고 계시는지 모르겠다.



강은 긴 그리마를 늘이고 흐른다
보이지 않는 날개를 달고
무심코 버려진 강변의 돌들을 불러모아
서글서글한 눈을 뜨게 하고 얘들아 얘들아
손 잡아라 속삭이며 흐른다
돌들의 따스함 돌들의 숨결
강은 큰 날개를 펴서 살아 있는 힘으로
몇 평의 모래밭을 만들고
반역질처럼 창칼을 들고 온 산발치를 묶어
처갓집 안방에 들던 때의
푸른 대님 푸는 소리로
속살 비치는 웃음까지 어여삐 그려낸다
강은 살아 있는 우리들의 꽃밭
우리들 편으로
사라질 때는 우리들의 서러운 이름자를
긴 모래톱에 새기고 간다
너는 듣는가 지리산 노간주나무
채양 넓은 잎새에 튀는 몇 낱의 물방울에
바다가 모여 서서 웅얼웅얼 빛나는 것을
산이 제 골짜기로 깊어지면서 한 시대의
적막한 물소리를 만들고
띠처럼 죄는 강물에 몇 개의 산봉우리들이
늦가을 뜨거운 불을 뒤집어쓰고 목을 떨군 채
담금질 쇠처럼 피시식 꺼져 가는 소리를
강이 흐른다 천 년의 대낮에
장대같이 살아 눈부신 강이 흐른다. - 송수권의 <섬진강>


섬진강 물결 위로 은빛처럼 시 한 편이 내려앉고, 일찍 나온 새 몇 마리 강심을 넘어간다. 그 상류를 따라 올라가면 섬진강의 시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김용택 시인이 노모를 모시고 살고 있다. 이제 선암사 뜨락, 천 년 등걸에서도 매화가 눈을 뜨고, 김유정이 쓰러졌던 눈 시리게 알싸한 생강꽃도 피어날 것이다. 구례 산동 마을의 산수유도 지리산가에 불을 밝히고, 수만 송이 벛꽃도 지리산 530리 따라 환장하게 펑펑 터질 것이다

또 이 강이 섬진강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된 연유는 한 제국의 국운이 기울어 가는 고려 말 1385년(우왕11)에, 전남 광양시 진성면 섬거에 왜구가 광양 쪽으로 피해갔다는 전설 때문에, 그렇게 불려졌다고 한다.

그리고 이 최초의 발원지가 있는 데미샘이 있는 봉우리를 '천상데미'라고 부르는데, 데미샘에서는 0.67㎞ 위쪽에 있으며, '데미'라는 말은 '봉우리, 덩어리 둔덕'이라는 말 등으로 쓰인다. 그러므로 천상데미는 '천상으로 올라가는 봉우리'라는 뜻이며 그 아래에 샘이 있다하여 '데미샘'으로 불린다.

▲ 데미샘 가는 길.
ⓒ 윤재훈

▲ 천상데미로 오르는 길, 수북히 눈 쌓인 빈 의자만 외롭다.
ⓒ 윤재훈

여기는 지역적으로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 원신암 마을 상초막이골이며, 여기서 발원된 물이 3개 도(道) 10개 시(市), 군(郡)을 거쳐 광양만으로 빠져나간다. 길이는 212,3㎞이며 유역 면적은 4,896.5㎢로 우리나라에서 9번째로 긴 강이며, 남한에서 4번째로 큰 강에 속한다.

▲ 자, 이제 출발이다. 가다가 넘어져도, 무릅이 깨어져도, 울기 없기!
ⓒ 윤재훈

또한 이곳은 천리 길 금강의 발원지하고도 인접하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역 태극의 형상을 취하고 있다. 또한 이곳의 물은 사시사철 그 수원이 마르지 않고, 수정 같이 많은 물이 이가 시리도록 차가우며, 물맛도 아주 뛰어나다. 그래서 <택리지>에서도 이곳을 "천하의 가장 살만한 곳"으로 기록하고 있다.

▲ 봉황산, 데미샘에서 마지막으로 빠져 나오는 계곡.
ⓒ 윤재훈

섬진강을 돌아 나오는데 세월 잊는 배 한 척, 낯선 땅에 납작하게 엎드려 서럽게 울고 있었다. 그 위로 장자의 '빈 배' 가 내려앉고 "너 어디로 가고 있느냐?"고 나를 다그치는 것 같았다.

빈 배

다른 이들을 다스리는 이는 혼란 가운데 산다
다른 이의 다스림 아래 있는 이는 슬픔 가운데 산다.
그러므로 요(堯)* 는 다른 이에게 영향을 주거나
다른 이에게서 영향 받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혼란에서 맑음을 얻고
슬픔에서 자유를 얻는 깊은
도(道)와 함께 사는 길이다.
비어 있는 그 나라에서

한 사람이 강을 건너가다
빈 배가 그의 작은 배와 부딪치면
그가 비록 나쁜 기질이더라도
그는 화를 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배 안에 사람이 있으면
그는 그에게 피하라고 소리칠 것이다
그래도 듣지 못하면 그는 다시 소리칠 것이고
더욱 더 소리를 지르면서 저주를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이 모든 일은 그 배 안에 누군가 있기 때문에 일어난다
그러나 그 배가 비었다면
그는 소리치지 않을 것이고 화내지 않을 것이다

세상의 강을 건너가는 그대 자신의 배를
그대가 비울 수 있다면
아무도 그대와 맞서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그대를 해 입히려 하지 않을 것이다

…현자는 말했다
스스로에 마음차하는 이는
쓸모없는 일을 한다
구하고자 하는 마음은 잃음의 시작이고
이름 얻고자 하는 마음은 이름 잃음의 시작이다

사람의 무리 가운데에서
구함과 이름 얻음으로부터 자유롭고
그 속으로 내려와 사라질 수 있는 이는 누구인가?
그는 도(道)와 같이 흘러 다닌다. 뵘 없이
그는 삶 그것처럼 돌아다닌다. 집 없이, 이름 없이
구별함 없이 그는 소박하다
겉모습으로는 그는 어리석은 자이다
그러나 그의 발걸음은 자취 남김이 없다
그는 힘 가짐이 없다
그는 무엇을 이룸이 없다
그는 이름 얻음이 없다
또 그는 누구를 판가름함이 없어서
아무도 그를 판가름하지 않는다

그러한 이가 전인(全人)이다
---그의 배는 비어 있다.


* 요 임금, 높을, 멀 요

(1부 끝)

<이 글은 섬진강을 따라 직접 걸으면서 강이 끝나는 지점까지 연작으로 쓸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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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5년여 세계오지 배낭여행을 했으며, 한강 1,300리 도보여행, 섬진강 530리 도보여행 및 한탄강과 폐사지 등을 걸었습니다. 이후 80일 동안 5,830리 자전거 전국일주를 하였습니다. 전주일보 신춘문예을 통해 등단한 시인으로 시를 쓰며, 홍익대학교에서 강의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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