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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달팽이 ⓒ 유성호
명쾌한 논리다. 아무리 위대한 과학적 업적도 윤리성이 결여되면 사상누각일 따름이다. 우리 사회는 최근 생명윤리라는 화두의 한 가운데 서 있다. 배아복제 연구 선구자인 황우석 박사를 포스트로 내세워 질주하던 우리 ‘생명공학호’가 엄청난 윤리적 결함으로 급제동이 걸렸기 때문이다. 실험 조작이다.

조작 문제는 서울대 자체조사를 거쳐 이제 검찰의 손으로 넘어갔다. 관련자의 신문과 대질 등을 통해 언제 끝날지 모르는 법리논쟁에 들어갔다. 그러나 조작이 이미 밝혀졌기 때문에 책임질 사람을 찾아내면 이 문제는 일단락된다. 그리고 주홍글씨로 남는 윤리문제를 다독이는 것은 그들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의 몫이다. 우리 사회가 이런 고민에 휩싸여 있는 가운데 <녹색의 상상력>이 ‘기다렸다는 듯’ 출간됐다.

저자 박병상씨는 인천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 대표 등의 직함에서 알 수 있듯 생명과학의 무리한 발전 속도를 감시하고 제어하는 일을 하고 있다. 물론 이 책도 그 연장선상에 쓰여 졌다. 책이 나온 타이밍도 좋았다. 황우석 사태의 진실게임이 진행되는 가운데, 이 문제에 십자포화를 퍼부으며 책 전반부를 대거 할애했다.

책은 생명공학이 지닌 ‘동전의 양면’을 고찰하면서 위험성과 비윤리성에 무게중심을 두고 비판을 가한다. 또 인류의 근원적인 문제인 환경문제에 시각을 넓혀 하부구조인 생명공학 문제를 바라볼 것을 주문하고 있다. 질병의 원인인 환경오염을 그대로 두고 환경을 더욱 교란하는 생명공학으로 질병을 말초적으로 치료할 수는 없다는 것이 저자의 지적이다.

우리나라 생명공학 기술을 폄하하는 의미로 ‘젓가락기술’이란 표현이 있다. 이는 생명공학을 삶의 질적인 차원이 아닌 기술적 측면에서 바라보는 한편 그 속에 들어 있는 윤리적 문제에 대한 은근한 비꼼이 담겨 있다. 그런 지적에 화답이라도 하는 듯 황 박사팀은 연구용 난자 사용부터 시작해 모든 과정과 결과를 조작, 세계를 상대로 ‘연극’을 펼쳤다.

저자는 이러한 황 박사의 사기극을 ‘비판 없는 과학기술의 그림자’ 때문이라고 표현했다. 우리 언론의 호들갑스러운 이슈 따라잡기와 윤리문제에는 눈을 감아버린 이중성을 지적한다. 물론 광기어린 네티즌과 일부 언론의 돌팔매를 견디고 진실을 알린 < PD수첩 >의 용기에는 박수를 보내지만 그들만의 윤리인 취재윤리에 대해선 옹호할 생각이 없다고 한다.

그림자가 잔뜩 드리운 음습한 실험실에서 벌어지는 인위적 조작, 양심을 국익과 개인의 영달로 포장한 과학자들의 소곤거림, 우리 과학계는 언제까지 주홍글씨를 지고 가야하는지. 또 생태환경을 보지 않고 오직 자기분야의 과학적 성과에만 매달리는 과학자의 근시안적 안목. 속도전에 뒤지지 않으려고 브레이크마저 팽개쳐버린 위험천만한 과학계의 현실. 저자는 각박한 과학이라는 학문에 푸른 생명을 불어넣자고 주장한다.

<녹색의 상상력>은 다소 느리되 과학과 생태의 균형 있는 발전을 갈구하고 있다. ‘생태계에는 이해당사자가 없다’는 저자의 목소리는 새만금, 천성산 개발과정에서 노출된 생태양극화의 문제를 제대로 표현하고 있다. 승자도 패자도 있을 수 없는 과학의 진보 속에서 인간과 자연의 공생은 어쩌면 신인류로 가는 현생 인류의 성장통이라고 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 박병상
펴낸곳 : 달팽이
펴낸날 : 2006. 2. 15
쪽  수 : 270쪽
책  값 : 10,000원


녹색의 상상력 - 과학기술사회와 생태적 삶

박병상 지음, 달팽이(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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