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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쉬켁의 버스 터미널
비쉬켁의 버스 터미널 ⓒ 김준희
비쉬켁의 버스터미널은 오전부터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알마티, 카라콜, 촐폰아타로 가는 사람들, 호객하는 기사들의 목소리와 확성기 소리로 시끌벅적했다.

이곳에서 출발하는 버스는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대형버스가 아니다. 10~15명 정도 탈 수 있는 포드 미니버스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특별히 정해진 출발시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손님이 모이기를 기다렸다가 버스가 차면 출발하는 그런 형식이다.

버스의 주변에는 신문을 파는 가판대, 삼사를 파는 가게와 작은 매점이 있고 바나나를 파는 아주머니와 과자를 팔며 돌아다니는 어린아이들로 북적였다.

난 촐폰아타로 가는 버스를 골라 탔다. 촐폰아타는 이식쿨 호수의 북쪽 중앙에 위치한 작은 도시다. 비쉬켁에서 촐폰아타로 가는 버스의 요금은 150솜(솜은 키르키즈스탄의 화폐단위, 1달러는 약40솜). 택시를 타면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는데 버스는 얼마나 걸릴지 모를 일이다.

이식쿨 호수는 키르키즈스탄의 북동쪽에 위치한 호수다. 해발 1600m에 위치해 있고 최대 깊이가 700m에 이르는 이 호수는, 남미의 티티카카 호수에 이어서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산악호수다. 염호인 이 호수는 염분의 농도 때문에 겨울에도 얼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붙은 이름이 이식쿨. '이식'은 '뜨겁다'라는 뜻이고 '쿨'은 물이라는 뜻이란다.

이식쿨 호수는 이번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가 될 것이다. 중앙아시아를 여행하겠다고 계획했을 때부터, 난 이 지역에 있는 4개의 큰 호수를 보겠다고 작정하고 있었다. 몽골의 홉스골, 러시아의 바이칼, 카자흐스탄의 발하쉬 그리고 이제 마지막으로 이식쿨 호수를 보러간다.

동서로 184km, 남북으로 61km의 크기를 가진 이 호수는 그 주위에 여러 개의 마을과 도시가 있다. 그리고 여행자들을 위한 숙박시설이 있다. 즉 배낭여행자들은 마음만 먹으면 대중교통과 싼 숙박시설을 이용하면서 이식쿨 호수의 동서남북을 모두 여행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지금껏 여행했던 다른 큰 호수들과의 차이점 중의 하나다. 홉스골은 호수의 남서쪽에 모여 있는 캠프장을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바이칼은 워낙 커서 한바퀴를 돌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리고 발하쉬 호수는 그러고 싶은 생각조차 들지 않는 곳이다.

비쉬켁에서 촐폰아타 가는 길
비쉬켁에서 촐폰아타 가는 길 ⓒ 김준희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비쉬켁에서 탈라스로 갈 때의 그것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양옆으로 높은 산이 늘어서있고 그 사이로 난 포장도로를 따라서 버스는 달리고 있다. 한참을 달리던 버스는 '발릭취'라는 이름의 항구도시로 들어섰다. 이 곳이 이식쿨 호수의 초입에 있는 항구도시인 모양이다.

발릭취를 벗어나자 오른편 창밖으로 이식쿨 호수가 보인다. 멀리 호수 너머로 높은 산들이 늘어서있는 이식쿨 호수는 한낮의 햇살을 받아서 반짝이고 있다. 이식쿨 호수는 우리나라에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그 빼어난 경관 때문에 구소련 시절부터 공산당 간부들의 휴양소로 사용하던 곳이다. 그리고 아주 오래 전부터 호수 깊숙한 곳에 거대한 괴물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오는 곳이기도 하다.

이런 이식쿨 호수는 육상 실크로드의 요충지이기도 했다. 천산산맥의 북쪽을 가로지르는 천산북로의 실크로드 가운데에 위치한 이 호수는, 물에 소금기가 많아서 식수원으로는 적합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천산 산맥과 알타이 산맥 가운데에 아늑하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당시에 실크로드를 오가는 상인들에게 좋은 휴식처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도 휴식처가 되길 바랐다. 탈라스도 조용한 곳이긴 했지만, 거기에서는 온갖 상상으로 머리가 복잡했기 때문에 마치 내가 그곳에서 한바탕 전투라도 치른 기분이었다. 그런 탈라스를 빠져 나오면서부터는 기분도 가라앉고 마음도 차분해졌다. 촐폰아타에 가면 그 아름답다는 이식쿨 호수를 바라보면서 그저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촐폰아타의 거리
촐폰아타의 거리 ⓒ 김준희
비쉬켁을 떠난 버스는 4시간이 넘어서 촐폰아타에 도착했다. 버스터미널에서 내린 나는 무작정 배낭을 메고 길을 따라서 걸었다. 촐폰아타는 철이 지나서 한가한 관광지라는 느낌이다. 한눈에 보더라도 민박집이 분명한 곳들이 여럿 보이고, 깨진 맥주병과 온갖 쓰레기들이 작은 길 곳곳에 버려져 있다.

일요일이라서 그런지 더욱 쓸쓸해 보이는 촐폰아타는 가게도 바자르도 문을 닫았고 거리에는 사람도 별로 없다. 여름에는 많은 여행객들로 붐비는 곳이겠지만 지금은 10월 중순, 차가운 호수 바람이 불어오는 이곳의 풍경은 쓸쓸하기만 하다.

길가의 식당에서 늦은 점심으로 40솜짜리 라그만과 차이를 먹고 민박집을 찾았다. 넓은 마당에 깨끗하게 꾸며놓은 민박집이 하루에 250솜이다. 아침식사를 제공하지는 않지만, 혼자 사용하기에 적당한 작은 방에는 화장실과 샤워시설도 갖춰져 있다. 마당 한쪽에 있는 부엌에서 취사를 하지는 못하지만, 대신에 커피포트는 언제든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단다.

라그만과 차이. 합쳐서 1000원이다.
라그만과 차이. 합쳐서 1000원이다. ⓒ 김준희

촐폰아타 민박집 정원
촐폰아타 민박집 정원 ⓒ 김준희
오면서 언뜻 보았지만, 관광지라서 그런지 거리에는 많은 카페와 상점과 바자르가 있다. 카페에서 밥을 사먹어도 될테고, 바자르에서 빵이나 '도시락' 라면을 사서 대충 때워도 될 것 같다.

방에 들어가서 씻고 정리하고 나니 어느덧 5시가 넘어있다. 이식쿨 호수의 구경은 내일 하기로 하고 오늘은 그냥 쉬기로 했다. 어제 탈라스에서 비쉬켁으로 오는 버스를 6시간 동안 탄데다가, 오늘도 4시간 넘게 버스를 탄 피로 때문일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렇게 보고 싶었던 이식쿨 호수의 구경을 잠시 뒤로 미루고 싶기 때문일지 모른다.

마당 한쪽에는 흔들의자가 놓여있다. 이 민박집에는 여행자를 위한 방이 족히 10개는 있지만, 손님은 나 혼자뿐이다. 커피를 만들어서 흔들의자에 앉았다. 커피를 홀짝이면서 촐폰아타의 조용한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은 저녁이다.

덧붙이는 글 | 2005년 7월 부터 10월까지 4개월간 몽골-러시아(바이칼)-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키르키즈스탄을 배낭여행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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