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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성암으로 향하는 길에서 바라본 일출
사성암으로 향하는 길에서 바라본 일출 ⓒ 문일식
19번 국도를 달릴 즈음에는 시야가 확보될 정도로 날이 밝아 있었습니다. 섬진강 저편 지리산 한쪽 편으로 반가운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구름 사이로 빛이 퍼져 나오면서 세상은 해지는 저녁 풍경마냥 너른 하늘도, 굽이쳐 흐르는 섬진강의 물줄기에도 진한 황색의 기운을 불어넣고 있었습니다.

17번, 18번, 19번 국도가 교차되는 지점에서 길을 잘못 들어서 그만 17번 국도를 타고 하염없이 순천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유턴하는 곳이 없어 한참을 내려간 후에야 다시 돌아온 구례땅. 문척교를 건너자마자 광양매화마을로 향하는 861번 지방도를 버리고 섬진강을 거슬러 올라가다보니 사성암을 오르는 길이 나타났습니다.

사성암으로 오르는 가파른 길. 운전 주의!!
사성암으로 오르는 가파른 길. 운전 주의!! ⓒ 문일식
고민이 됐습니다. 차를 버리고 걸어 올라가야할지, 미친 척하고 차를 끌고 올라갈 것인지. 찾아놓은 정보에는 "차를 가지고 갈 수는 있지만 조심해야한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결국 차를 끌고 사성암에 오르기로 했습니다. 사성암 입구까지는 한없이 가파른 길의 연속이었습니다. 사고지점이라는 글씨가 크게 보이고, 안전운전을 신신당부하는 플래카드와 팻말을 지날 때마다 긴장하고 긴장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뒤를 보면 가파른 내리막길이고, 도로를 벗어나면 천길 낭떠러지였습니다.

차마저도 한참을 헉헉거리며 오른 뒤에야 사성암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안내표지판에는 사성암과 패러글라이딩 활공장, 정상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사성암의 전경
사성암의 전경 ⓒ 문일식
사성암은 성왕 22년인 544년에 연기조사가 오산의 정상부근에 건립한 암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원래는 오산암이라 불리웠는데, 원효 의상 도선 진각 등 4명의 고승이 수도한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해발 530m가 약간 넘는 오산의 정상 부근에 세워진 암자는 선승들의 수도처로 적당하다는 것을 바로 알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정상에 있을 것 같지 않은 작은 평지가 있고, 그 평지가 적당하지 않았는지 우뚝 솟은 절벽에 의지해 암자를 세워놓은 모습은 감탄사가 절로 나올 법 했습니다. 절벽에 바짝 붙여서 지은 건물은 약사전이고, 지장전과 스님들이 머무는 거처가 앞쪽에 있습니다. 그리고 절벽 뒤편으로 돌아가면 산신각이 사성암을 이루는 전각들입니다.

사성암의 전경..절벽위 둥지를 막 떠나 날아오르는 새의 모습처럼 날렵합니다.
사성암의 전경..절벽위 둥지를 막 떠나 날아오르는 새의 모습처럼 날렵합니다. ⓒ 문일식
사성암의 전각들은 오랜 창건역사와는 달리 지어진지 얼마 되지 않은 건물입니다. 아마도 그동안은 암자터였던 모양입니다. 고풍스런 느낌은 없지만, 절벽에 바짝 붙여 지어진 건물은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습니다. 팔작지붕의 모습은 마치 절벽위 둥지 속에서 막 날개짓을 하며 날아오르려는 새의 모습 같기도 했습니다.

사성암 약사전으로 오르는 길..담장에 놓여진 소망을 담은 기와들..
사성암 약사전으로 오르는 길..담장에 놓여진 소망을 담은 기와들.. ⓒ 문일식
견고하게 쌓은 담장과 계단을 따라 약사전에 올랐습니다. 모진 풍파에도 쓰러지지 않을 듯한 견고함과 정성이 느껴지는 길이었습니다. 사람들의 소망과 기도가 담긴 기와장들이 담장 위로 길게 늘어서 있었습니다.

약사전 난간에서 바라본 섬진강과 주변풍경... 헉헉거리며 올라온 길이 보입니다.
약사전 난간에서 바라본 섬진강과 주변풍경... 헉헉거리며 올라온 길이 보입니다. ⓒ 문일식
약사전에 올라 난간에 서자 저 아래로 섬진강 줄기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풍경이 조용히 다가왔습니다. 방금 전 헉헉거리며 올라왔던 길도 보였습니다. '내가 저 길을 올라왔단 말이지. 올라올 때는 멀어 보이고 길어 보이고, 흔들림도 있었지만, 지금 내려다보는 방금 전의 그 길은 그저 하나의 실을 아무렇게나 옮겨놓은 듯 하구나. 지금에 와서야 별것도 아닌 것을…' 앞을 내다보고 넓게 보는 것이 무엇인지를 극명하게 비춰주는 순간이었습니다.

사성암 북쪽 절벽쪽에서 바라본 구례읍과 너른 벌판의 풍경
사성암 북쪽 절벽쪽에서 바라본 구례읍과 너른 벌판의 풍경 ⓒ 문일식
약사전을 내려와 절벽 뒷편으로 다시 올랐습니다. 강한 바람이 바위를 비집고 얼굴을 한없이 강타했습니다. 차디찬 느낌보다는 시원한 느낌이 드는 것은 이제 봄이 오고 있다는 전조가 아닐런지. 바람을 마주하며 절벽 뒷편으로 오르자 구례읍과 너른 들판이 한눈에 조망되는 장관이 펼쳐졌습니다. 이곳에도 역시 돌로 견고하게 쌓은 낮은 담장들이 보기좋게 굽이굽이 이어져 있고, 절벽 안쪽으로 숨은 듯 지어진 산신각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사성암 북쪽 절벽에서 바라본 섬진강과 지리산의 풍경
사성암 북쪽 절벽에서 바라본 섬진강과 지리산의 풍경 ⓒ 문일식
다시 동편으로 낮은 담장을 따라가니 섬진강과 지리산이 오묘한 조화를 이루며 고즈넉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아침 햇빛이 구름에 가려서인지 맑은 풍경을 여지없이 가리고 있었습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지리산이 한없이 낮아 보이다니. 지리산이 맞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산 아래의 복잡스러움과는 달리 지리산의 모습은 정기를 가득 머금은 채 편안히 누워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사성암을 내려와 광양을 달리는 길에 바라본 장엄한 지리산
사성암을 내려와 광양을 달리는 길에 바라본 장엄한 지리산 ⓒ 문일식
사성암에는 한 시간 남짓 있었습니다. 쉽게 떠나기에는 너무나도 아쉬움이 남는 곳이었습니다. 다시 구불구불 이어진 길을 조심스레 내려와 사성암과의 마지막 눈짓을 나누었습니다. 이제는 861번 지방도로를 타고 섬진강과 어깨를 마주하며 광양을 가야 했습니다. 오산 정상 사성암에서 바라보던 지리산이 이제는 위엄있고, 당당한 모습을 찾은 것 같습니다.

섬진강이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며 일렁이고 있습니다.
섬진강이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며 일렁이고 있습니다. ⓒ 문일식
푸르디 푸르고 차갑게만 느껴지는 섬진강 물결과 아직은 기나긴 겨울잠에서 깨지 않은 듯 산세에서 느껴지는 짙은 색감은 떠나는 겨울의 끝자락을 놓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 곧 봄이 찾아오겠지만, 아직까지는 아니라며 은은하게 기다릴 줄 아는 대자연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조만간 흐르는 강물에서 봄이 느껴지기 시작한다면 그제서야 저 당당한 지리산도 곧 봄을 품안에 품겠지요. 섬진강 위로 떨어지는 햇살이 반짝이는 모습을 보며 저도 봄을 기다려 봅니다.

덧붙이는 글 | 유포터에 송고합니다.
지난 2월 26일 여행동호회(www.cafe.daum.net/tourwelove) 답사차 다녀온 여행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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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자연과 역사를 느낄 수 있는 글과 사진을 남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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