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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희용
ⓒ 장희용
이 봄비와 꽃샘추위가 지나면 농부의 손길을 더욱 바빠집니다. 겨우 내 곳간에 모셔 두었던 종자들을 매만지기도 하고, 달력 한 귀퉁이를 찢어 싸두었던 씨앗들이 잘 지냈는지 살펴보기도 하지요. 짬짬이 보관된 농기계에 눈길을 주면서 매만져 보기도 하고, 겨우 내 할일 없이 밭 한 구석에 꽂혀 있던 삽 등 농기구도 슬슬 일할 채비를 합니다.

논과 밭으로 향하는 농부의 발걸음도 잦아집니다. 논과 밭둑도 살피고, 논에 남아 있는 소 먹일 짚을 집으로 옮기기도 하고, 동네 한가운데 쌓아 둔 농협에서 나온 비료를 경운기에 싣고 각자의 집이나 논과 밭두렁에 옮겨 놓기도 합니다. 농사지을 채비를 하는 것이지요.

그 중에서 제일 중요한 건 논을 갈고, 논과 밭에 퇴비도 내는 것입니다. 이 맘 때쯤 농부가 논과 밭을 갈고 퇴비를 주는 것은 사람이 기운을 내기 위해 보약을 먹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논을 갈아 주고 퇴비를 주어야 땅 속에 있던 흙이 밖으로 나와 숨도 쉬고 햇볕도 받고, 또 퇴비를 먹고서 기운을 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논과 밭에 보약을 주면서 본격적인 농사 준비를 하는 동안 비닐하우스 안에서는 이미 농사가 시작되었답니다. 보약 먹은 논과 밭에 갈 농작물 새싹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것이지요. 제일 먼저 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것은 고추와 감자입니다. 굳이 순서를 따진다면 아마 고추가 농사 시작 1호일 겁니다.

실제 밭에 심는 것으로 따지면 감자는 대부분 3월 초중순경에 심고 고추는 5월에 심으니 감자가 빠르다고 할 수 있겠지만, 감자와 고추 모두 밭에 심기 전에 싹을 틔우는 데, 감자는 심기 전 한 달 전부터 싹을 틔우고 고추는 모종을 키워 내는 기간이 길다보니 1월 중순경부터 싹을 틔웁니다. 그러니 실제 농사의 시작은 고추가 제일 빠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장희용
ⓒ 장희용
고추에 대한 농부의 마음은 정성, 또 정성 그 자체입니다. 제일 먼저 시작하는 농사이고 보니 남다른 신경이 쓰이는 탓입니다. 그래서인지 고추씨를 뿌리고 싹을 틔우는 동안 농부들이 보이는 고추 사랑은 자식 사랑과 같습니다.

이 맘 때 농부는 고추에게서 눈을 떼지 않습니다. 고추 모종은 추위에 약하기 때문에 아침, 점심, 저녁으로 항상 보살핌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온도를 맞추어 주지 못하면 싹이 트지도 않을 뿐더러 죽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해가 지는 저녁에는 이중삼중으로 고추모종을 덮어두었다가 아침에는 다시 걷어주고, 한 낮에는 비닐하우스 문을 열어 환기도 시켜주지요.

그렇게 지극 정성으로 키운 고추 모종이 비닐하우스 안에서 무럭무럭 자라는 것을 보면 농부의 마음을 벌써 풍년이 든 것처럼 기쁩니다. 그래서인데, 농사의 시작이 고추라는 게 어떤 때는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고추가 밭으로 옮기기 전 모종 상태일 때는 온도에 신경 쓰고 물만 잘 주면 별 탈 없이 잘 자라는 작물이다 보니 농사를 시작하는 농부의 마음을 기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물론 밭으로 옮겨 심고 난 후 그 무섭다는 탄저병에 걸려 한참 수확 시기에 수확을 하지 못하는 아픔을 주기는 하지만요.

고추 심고 나면 모내기와 고추 따기

ⓒ 장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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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를 심고 나면 곧바로 모내기가 시작됩니다. 고추 모종을 돌보는 동안 역시 비닐하우스나 방 안에서 싹을 틔운 볍씨를 모판에 흙과 함께 뿌린 후 보온을 해 놓으면 어린모가 고개를 '삐죽' 내밀지요.

이 때쯤이 되면 늙으신 부모님만 계시던 한적했던 마을이 시끌벅적해집니다. 도시로 갔던 자식들이 모두 내려오니 여기저기서 "안녕하세요! 오냐, 너도 잘 지냈냐?"라는 인사말이 오가고, 또한 동네 골목마다 뛰어노는 아이들과 그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마을 곳곳에서 퍼지니 모처럼 사람 사는 생기가 도는 것이지요.

논에서 모내기를 하고 뜬 모를 심다 보면 어릴 적 함께 놀던 형이나 누나, 동생, 친구들이 모두 반갑게 인사를 합니다. 논에서 뚜벅 뚜벅 걸어 나와 논둑에 놓아두었던 빵과 음료수를 나눠 먹으며 잠깐이지만 서로의 반가운 소식들을 듣다보면 힘든 것도 잊어버리지요.

모내기가 끝나면 일단 농부는 '휴!' 하고 한숨을 돌립니다. 잠깐이지만 모내기를 끝내고 나면 집 안의 큰일을 치르고 난 후 느끼는 편안함과 여유로움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쉬는 것은 아니지요.

심어 놓은 모가 죽은 곳이 있으면 수시로 살아 있는 모로 다시 심어주어야 하고, 막 심었을 때는 논에 물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물 관리도 잘 해주어야 합니다. 심어 놓은 밭작물도 돌봐야 하고요. 그러다 보면 어느덧 농약을 해야 하는 시간도 다가오고, 붉게 익은 고추도 따야 하지요. 그렇게 봄과 여름은 '농작물은 농부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이 필요한 때인지라, 한가한 듯하지만 무척이나 바쁜 시간들이랍니다.

ⓒ 장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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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바쁘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덧 텃밭에서는 고된 노동을 한 방에 날려버릴 맛있는 채소들이 쑥쑥 자라 식탁에 오르게 된답니다. 저희 집 뒤에도 조그만 텃밭이 있는데, 각종 나물들이 특별히 가꾸지 않았는데도 기특하리만치 잘 자라 줍니다.

모내기며, 농약 주기, 고추 따기 등 일을 마치고 집에 오면 엄마가 얼른 텃밭에 가서 머위며 부추, 오이 등을 따서 갖은 양념을 버무려 무쳐 주면, 그 맛이 천하제일 별미랍니다. 밥도둑 밥도둑 하지만, 땀 흘리고 난 후 텃밭에서 가져 온 나물과 채소들로 엄마가 해 주시는 찬이야말로 진짜 밥도둑이라 할 수 있지요.

ⓒ 장희용
하루 일을 마치고, 바가지로 물을 떠서 시원하게 등목을 한 후 엄마가 차려 주는 밥을 먹고 난 후 마당에 멍석을 깔아 놓고 옥수수를 먹으면서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면 세상에서 이보다 편안하고 행복한 순간이 있을까 합니다.

내 사랑하는 아버지와 어머니와, 그리고 형님과 형수님, 내 아내와 조카와 자식들과 함께 하는 그 순간, 오순도순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모기장이 쳐 있는 방안에 눕는 그 순간, 시골의 선선한 바람이 불어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어 주면 비록 몸은 조금 고되더라도 마음만큼은 신선이 부럽지 않답니다.

"흙아! 나라님이 포기한 농촌, 너만은 지켜줘야 돼!"

작년 태풍에 벼가 쓰러져 수확을 하다 포기한 논이다. 흙아! 작년처럼 태풍에 벼들이 쓰러지지 않게 네가 꼭 붙들어야 한다. 힘들어도 올해도 꼭 풍년 부탁해.
작년 태풍에 벼가 쓰러져 수확을 하다 포기한 논이다. 흙아! 작년처럼 태풍에 벼들이 쓰러지지 않게 네가 꼭 붙들어야 한다. 힘들어도 올해도 꼭 풍년 부탁해. ⓒ 장희용
그렇게 여름이 지나면 이제 땀 흘림의 대가를 수확하는 가을이 오지요. 하지만 수확의 계절이 늘 기쁜 것만은 아니랍니다. 애써 지은 벼농사를 한 번의 태풍으로 인해 망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면 농부의 마음은 참으로 아프지요. 하지만 이 땅의 농부들은 그 같은 자연의 심술에도 수긍하는 착한 심성을 가지고 있기에, 애써 그 아픔을 달래면서 기쁜 마음으로 수확을 한답니다. 올해 농사를 망치게 했으니 다음해에는 꼭 풍년이 들게 해 달라는 작은 소망을 담아서요.

그런데, 요즘은 이런 자연의 심술 때문이 아니라 세계화니 뭐니 떠들면서 제 잘난 맛에 사는 높은 양반들 때문에 농부의 마음이 참 아프답니다. 농업도 경쟁력을 갖추어야 한다니 뭐니 떠들면서 농부의 마음을 참으로 아프게 하지요.

저희 아버지가 그러시더군요. "언제 백성들이 나라님 보고 살았다니. 땅 보고, 흙보고 살았지"라고요. 한 평생을 정직한 흙과 살아오신 양반입니다. 이제 75살이 되신 늙으신 내 아버지, 그 아버지를 이해하고 아프지 않게 할 나라님이 없으니, 제가 대신 우리 아버지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고 싶습니다.

"흙아! 힘들어도 올해도 풍년 부탁한다. 그래야 우리 아버지, 그리고 많은 농부아저씨들이 그나마 덜 아프단다. 흙아! 꼭 풍년 들게 해 줘야 돼. 알았지!"

덧붙이는 글 | 농사를 지으시는 우리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젊은 일꾼들 모두에게 올 한해 풍년이 들기를 기원합니다. 농촌 현실이 암울하기 하지만, 그래도 풍년을 기원합니다.(이 기사는 시골아이 고향 (www.sigoli.com)에도 보낼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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