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이종출
"550일이 넘게 싸우는 동안 우리 부락의 절반이 떠났어. 하지만 나는 여기서 쌀농사 지으면서 끝까지 싸울 거야. 50년간 빼앗겼으면 됐지. 또 빼앗겨? 안되지. 돈이 중요한 게 아니야. 사람은 사람답게 살아야지."

대추리에서 40여 년째 살고 있는 이민강(67) 할아버지는 단 하루도 빠짐없이 평택지키기 촛불을 들고 있다. 뿐만 아니다. 젊은 사람도 힘든 경찰과의 몸싸움에서도 맨 앞에 서는 할아버지는 젊은 사람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무섭게 싸운다. 지난 3월 6일 하루종일 대추초등학교를 둘러싸고 벌어진 국방부, 경찰과의 싸움에서도 할아버지는 맨 앞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민강 할아버지의 고향은 평택 바로 옆에 있는 안중이라는 곳이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자신의 고향은 '평택'이라고 말한다. 26살 젊은 나이에 땅 20마지기를 사서 이곳으로 이사 온 후 밤낮으로 땅을 일궈 가정을 이루고 2남1녀를 남부럽지 않게 키웠다.

젊은 시절 신장 때문에 큰 수술을 한 후 농사일을 지을 수 없게 된 아내 몫까지 평생을 일한 할아버지, 어려움을 하소연하던 형제들을 위해 이사 올 때 산 땅을 다 처분하고 자신은 남의 땅을 부치면서 맨땅으로 다시 시작한 할아버지. 40여 년의 모진 고생으로 할아버지가 내세울 재산이란 3천 평 땅과 이제야 제 앞길 열어갈 수 있는 자식들이 전부다.

대추리에서 소문난 잉꼬부부라는 소리를 듣는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이 소리가 참 듣기 좋은가 보다. '일 안 하는 아내 바람났다'는 동네 사람들의 핀잔을 들으면서도 아픈 아내를 챙겼던 할아버지에겐 이 소리가 가장 기분 좋은 소리일 것이다.

그렇게 평생을 자신을 위한 계산 없이 땅만 일구며 살아온 할아버지에게 안중에 있는 고향사람들은 '평택에서 그만 고생하고 고향 와서 편히 살라'고 이야기한단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귓등으로 흘릴 뿐이다. 평택을 떠날 생각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삶을 평택을 지키며 사는 것이 할아버지의 꿈이 되어버린 듯하다.

싸우는 와중에도 이민강 할아버지는 반듯하게 논갈이를 해놨다. 국방부가 땅을 못 엎도록 심은 찹쌀보리가 뿌리를 내려 땅이 푸른 기운을 뿜고 있다.
싸우는 와중에도 이민강 할아버지는 반듯하게 논갈이를 해놨다. 국방부가 땅을 못 엎도록 심은 찹쌀보리가 뿌리를 내려 땅이 푸른 기운을 뿜고 있다. ⓒ 이종출
8남매의 둘째였던 할아버지는 참 많은 고생을 했다. 어려서 철이 들었던 할아버지는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남의 집 머슴을 살며 형제들 뒷바라지를 도맡아 했다. 부친이 세상을 뜨면서도 자식들에게 '둘째가 참 고생을 많이 했다'며 가슴 아파하셨다니 할아버지의 어린 시절이 어떠했을지 떠오른다. 그렇게 고생고생해서 조금씩 모은 땅이 20대 중반이 되니 10마지기가 되었고, 그 땅을 팔아 갯벌 가에 있던 땅 20마지기를 사서 평택 대추리에 뿌리를 내린 것이다.

그러나 당시 대추리 땅은 바닷물이 섞인 갯벌 땅이었단다. 할아버지의 기억 속에도 당시 숭어 같은 바닷고기를 잡아먹던 것이 또렷하다. 대추리, 도두리 옥토는 원래 옥토가 아니었다. 수시로 바닷물이 차고 들어오는 갯벌 땅을 주민들이 직접 둑을 쌓고 땅을 갈아 지금의 옥토로 만든 것이다.

"갯벌이었던 이 땅들을 우리가 다 옥토로 만든 거야"라며 자신의 40년 인생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3천 평 옥답을 보여주는 이민강 할아버지. 목숨 같은 땅이 미국에 빼앗기게 된 현실이 불현듯 떠오르는 듯 눈가에 이슬에 맺힌다.

갑자기 멀리 논 가에서 새떼 수백 마리가 날아올랐다.

"저기 봐. 다 갈매기야. 여기 땅이 얼마나 비옥하고 깨끗하면 아산만 쪽에 있는 갈매기가 수시로 날아와서 쉬었다 가겠어? 이게 내 땅이어서가 아니야. 평택땅은 전라도 사람들도 부러워하는 땅이야. 매년 입에서 살살 녹는 좋은 쌀을 선물하는 이 옥토들을 다 갈아버리고 미군기지로 만든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야."

멀리 갈매기떼가 날아오른다. 대추리 땅은 갈매기가 수시로 날아들 정도로 비옥하고 깨끗하다.
멀리 갈매기떼가 날아오른다. 대추리 땅은 갈매기가 수시로 날아들 정도로 비옥하고 깨끗하다. ⓒ 이종출
할아버지가 평택땅이 미군에게 넘어간다는 소리를 들은 것은 3년 전이다.

"부락이 난리가 났어. 읍사무소도 시청도 그 사실을 모르는 거야. 그런데 얼마 후 평택대학교에서 이 문제를 가지고 공청회를 한다는 거야. 나도 거길 갔는데 글쎄 공청회 못하게 만들겠다고 사복 입은 경찰들이 우리를 사지를 잡고 끌어내는 거야. 그렇게 잡혀간 사람들 풀어내라고 경찰서 앞에서 촛불 든 이후로 지금까지 촛불을 들고 있어. 그때부터 우리가 빨갱이 소리를 듣는 사람들이 됐다니까. 허허."

평생 땅만 일구며 살아온 할아버지에게 '빨갱이' 소리는 어울리지 않다. 그렇지만 할아버지는 평택을 지키는 싸움을 그만둘 생각이 전혀 없다.

"절반 이상이 돈을 받고 평택을 떠났어. 하지만 나는 끝까지 여기서 살 거야. 중요한 건 돈이 아니잖아. 사람은 인간답게 살아야지. 돈 없이도 화목하게 사는 게 중요해."

할아버지에게 '인간답게 사는 것'이란 무엇일까. 할아버지는 '사람구실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이곳을 평택땅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여긴 우리나라 전체야. 그렇기 때문에 이 싸움 나만 살자고 하는 거 아니라고. 여기가 무너지면 대한민국이 무너지는 거야. 지도를 봐. 여긴 한반도 허리에 있는 땅이야. 허리를 미군에게 뺏기면 우리가 살아갈 수 있겠어?"

이민강 할아버지는 이 비옥한 땅에 미군의 시멘트가 깔리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며 올해도 우리에게 찰진 평택쌀을 먹이겠다는 단단한 결심을 내비쳤다.
이민강 할아버지는 이 비옥한 땅에 미군의 시멘트가 깔리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며 올해도 우리에게 찰진 평택쌀을 먹이겠다는 단단한 결심을 내비쳤다. ⓒ 이종출
우리나라 사람이면 우리나라 사람답게 자기 땅을 지킬 줄 아는 것. 이것이 바로 할아버지가 말하는 사람답게 사는 것이었다. 그게 또한 화목하게 사는 길이기도 했다.

할아버지에게 미군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길을 막는 '미군 놈들'이었다. '남북이 오가는데' 왜 아직도 미군이 우리나라에 있는지 모르겠다는 이민강 할아버지는 "50년간 피 빨아 먹었으면 그만"이라며 더 이상은 안된다고 못을 박았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안다. 이 싸움이 쉬운 싸움이 아니라는 것을…. 당국에 의해 땅은 이미 공탁이 걸렸고 올해부터는 쌀농사를 짓지도 못하게 한다.

그러나 다른 주민들처럼 이민강 할아버지는 쌀농사를 지으면서 싸울 생각이다.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인 가운데서도 할아버지는 논갈이를 다 마쳤고 혹시 국방부에서 땅을 갈아버릴까봐 찹쌀보리도 심었다.

을씨년스럽기만 한 빈 논들 사이에서 파릇파릇한 새싹을 틔우고 있는 자신을 땅을 고운 자식 쳐다보듯 애달프게 쳐다보며 "난 여기가 좋아. 여기를 지킬거야"라고 내뱉는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땅에 시멘트를 깔 무자비한 미군을 쫓아내고 우리나라 사람들 배 불리게 먹일 수 있는 차진 평택 쌀을 올해도 수확할 결심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자주민보에도 게재되었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주권자전국회의에서 파트로 힘을 보태고 있는 세 아이 엄마입니다. 북한산을 옆에, 도봉산을 뒤에 두고 사니 좋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