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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적 12일째. '최연희 한나라당 사무총장 성추행 사건'이 시간이 지나면서 꼬이고 있다. 당사자가 입을 다물고 버티기로 일관하는 탓이다.

9일 하루 관련 뉴스가 여러 가지 터졌다. ▲피해자인 <동아일보> 여기자가 조만간 형사고소할 의사를 밝혔고 ▲가해자인 최연희 의원의 측근이 "의원직 사퇴 후 7월 재보궐선거에서 재출마"라는 소식을 전했고 ▲열린우리당이 사건 현장인 서울 모처의 한식당을 현장답사한 것 등이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입장이 윤곽을 드러나고 있지만 사태는 왠지 더 꼬여가는 인상이다. 엉킨 실타래의 갈래를 정리하면 다음의 세 가지다.

▲ 9일 오전 열린우리당 김현미 의원, 김형주 의원, 서영교 부대변인은 최연희 전 한나라당 사무총장의 여기자 성추행 사건이 발생한 서울 시내 한정식 집을 방문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① 여야의 정치공방 "이해찬 그만 둬라"-"최연희부터 떠나라"

이 사건은 이해찬 국무총리의 골프 파문과 맞물리면서 여야 정치공방으로 번지기도 했다. 수세에 있던 한나라당은 이해찬 총리 문제에 맹공을 가했고, 열린우리당은 "성추행 문제를 덮기 위한 정치공세"라며 최연희 사건을 재점화하기 위한 이벤트에 열을 올렸다.

그러면서 성폭력 사건은 '공격'과 '방어'의 양상으로 흘러갔고, '범죄'로서의 본질은 희석화돼 갔다.

② '동정론' 유도한 가해자 잠적 "의원 자질과 아랫도리는 별개"

여기에 본질을 흐린 또 다른 정황은 가해자의 잠적이다.

가해자가 잠적한 사이 동정론이 고개를 들었다. 출처도 불분명한 전언을 통해 한나라당은 "사람을 알아보지도 못할 정도" "대인기피증" 등의 말을 흘리며 "본인의 결단을 기다리고 있다"는 식으로 발을 뺐다. (하지만 보도에 따르면, 강원도 동해 한 펜션에서 머물고 있는 최 의원의 건강상태는 "아주 좋은 편"이라고 한다.)

급기야 최 의원의 지역구에선 찬반 양론으로 민심이 두 쪽으로 갈라졌다. "가난한 동해시는 능력있는 최연희가 필요하다"며 "국회의원의 자질과 남성 '아랫도리' 문제는 별도"라는 논리다.

▲ 최연희 의원의 지역구인 동해시에는 최 의원을 지지하는 각종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③ 정언유착 부적절한 술자리가 성추행 불렀다

한 가지 더 개입된 문제가 있다. 바로 정치와 언론의 '정언유착' 부분이다. 한나라당의 대표 이하 주요당직자들과 동아일보 편집국장 이하 출입기자들이 가진 술자리에서 사태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국민들은 '부적절한 상황'을 문제삼고 있다.

정당과 언론사가 그같은 상견례를 갖는 것이 적절한가의 문제부터 술값은 누가 냈으며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등등 정치인과 기자가 비공식 만남 관행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은 따갑다.

열린우리당이 이날 사건 현장을 답사해 탐문조사를 벌인 것도 이런 맥락일 것이다.

'성추행·성폭력 추방대책위' 소속 의원들은 문제의 식당을 찾아가 술값 내역 등의 공개를 요구했으며 "(해당 식당의) 방은 새로 도배가 됐고 종업원도 바뀌었고 영수증과 매출장부도 없었다"고 은폐 의혹을 제기하며 공세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기자와의 정치인의 술자리 관행에서 열린우리당조차 자유롭지 않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지는 제스처다.

한나라당과 동아일보가 이에 대해 함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의혹은 증폭되고 있다. 나아가 이해찬 총리의 골프파문에 대해선 "3만8천원 대납(회원대우 가격)"까지도 밝혀내는 언론들이 성추행 현장의 술자리 비용에 대해선 일언반구가 없는 것에 대해 민언련은 비난성명을 여러 차례 냈다. 이는 <오마이뉴스>도 해당되는 비판이다.

실타래를 풀자 누가 뭐래도 핵심은 피해 여성의 인권 보장

9일 <오마이뉴스>의 '동아 여기자, 최연희 의원 내주초 고소' 기사에 달린 댓글 중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다. 조회수와 찬성 여론이 높아 오늘의 '댓글뉴스'에 오르기도 했다.

"성추행사건을 공론화시킨 여기자의 행동은 칭찬 받을 일이고 최연희 고소도 사회를 정화시켜야 할 기자로서 당연한 것이지만 ①동아일보 참석자 명단 ②참석지시 명령계통 ③술집에서 오고간 대화내용 등과 같은 정언유착의 모든 정황에 대해 가감없이 양심고백해야 한다."(아이디 chc3088)

기자의 양심고백은 개인의 결단 문제다. 강요할 수는 없다. 작게는 한나라당과 동아일보 차원에서 책임져야 할 문제고, 크게는 그와 유사한 또는 그에 준하는 취재원-기자 술자리 관행을 가져온 정치권과 언론계가 자성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와 성추행을 뒤섞어서는 안 된다. '부적절한 자리'였다는 점을 빌미로 성추행 자체를 무화시키려는 여론이 일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유감이다.

성폭력 피해자에게 가해지는 "왜 늦은 밤에 거리를 다니냐" "왜 늦게까지 술집에 있었냐" 등의 비난, '2차 가해'의 속성을 빼닮았다. 강도가 휘두르는 칼에 찔렸다고 해서 우리는 장소와 시간을 문제삼지 않는다. 강도가 범죄이듯 성폭력은 범죄일 뿐이다. 이번 사건도 마찬가지다.

최연희 의원이 의원직을 내놓든 말든, 한나라당과 동아일보가 어떤 부적절한 만남을 가졌든 말든 성폭력과는 별개로 다뤄져야 한다. 성폭력 피해자가 형사고소로 법적 심판을 묻는 것은 어떤 것으로도 침해당할 수 없는 보편적 권리다.

▲ 시민사회단체들은 9일 국회 앞에서 `최연희 의원 자진사퇴와 국회 자정기능 확립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최 의원의 사퇴를 촉구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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