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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보는 거지
신문보는 거지 ⓒ 김솔지
과음하신 거지, 이미지관리하시느라 숨으심
과음하신 거지, 이미지관리하시느라 숨으심 ⓒ 김솔지
주말인데 한잔하지! 오늘은 양주라구!
주말인데 한잔하지! 오늘은 양주라구! ⓒ 김솔지
나는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고 굉장히 궁금했다. 어떻게 그런 생활에 만족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들은 내 생각처럼 '노숙자'가 아니었다. 그들에겐 길바닥이 집이고 공중전화 박스가 기댈 벽이며 지나가는 타인이 친구이다. 심심하면 신문을 주워서 읽고 뜨개질도 한다. 심지어는 깨진 거울을 보며 화장을 하는 거지소녀도 있다.

항상 다니던 런던의 으슥한 골목길로 들어섰다. 한 노숙자는 이렇게 말했다.
"20펜스만 주시죠!"
나는 돌아서서 말했다.
"아니 어제는 10 펜스더니 오늘은 또 왜?"
"하하. 오늘은 개한테도 뭐 좀 사주게."

너무나 당당한지 않은가? 쥐어주고 돌아서는 길목에 또 한 명의 노숙자가 말한다. "야! 빵 좀 사줘봐." 말투가 영 버르장머리가 없어서, 그리고 조금은 무서워서 재빨리 걸으며 도망이란 것을 간다. "야~ 이 바보야. 이 똥개야." 이러쿵저러쿵 욕설을 해댄다.

나는 너무나 무서워서 달음박질을 치다가 멀찌감치 떨어서 점점 작아지는 그를 쳐다본다. 그는 움직이지도 않고 앉아서 그렇게 소리만 지르고 있다. "뭘 보니? 내가 따라갈까 봐? 미쳤니? 어떻게 여기를 덥혀놨는데. 뭐 하러 너 같은 동양여자 뒤꽁무니나 따라 가겠니?"

런던의 노숙자들은 한국의 노숙자들과 많이 다르다. 이들은 지하철에 들어가서 공동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고, 구걸만 하는 우울한 형상도 아니었다. 이들은 상자 속에서 자지 않고 천편일률적으로 침낭이라는 것도 가지고 있다.

오늘 구걸하느라 힘들었다. 예술인 거지
오늘 구걸하느라 힘들었다. 예술인 거지 ⓒ 김솔지
저게 뭘까,
저게 뭘까, ⓒ 김솔지
잘 자고 있는 거지랍니다.
잘 자고 있는 거지랍니다. ⓒ 김솔지
분명히 슬픈 모습이다. 우울한 것. 맞다. 그런데도 왠지 이 모습만으로는 그들을 동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노숙자를 지원하는 NGO에서 일하는 달리아 헬러(Daliah Heller이며 CitiWide Harm Reduction에서 일하고 있다. 이 기구의 홈페이지는 www.Citiwidehr.org.이다)에게 물어보았다. 참고로 그녀는 지난 10년 동안 유럽 및 미국에서 노숙자 및 약물중독자들을 위해 인생을 바쳐왔다.

- 왜, 영국의 거지들은 함께 모여 따뜻하게 자지 않고 길에서 혼자서 잠을 자나요?
"그것은, 한국의 노숙자들은 뭉치지 않으면 불안하기 때문에 모여서 자는 경우가 더 많다고 보면 돼. 혼자일 때 그들은 경찰에게 구속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폭행을 당해도 보호해줄 정부가 없기 때문이지. 반면에 영국의 노숙자들은 신변의 안전이 보호되어 있기 때문에 굳이 뭉칠 이유가 없지."

- 그럼, 영국 거지들은 정부에서 보호를 해줍니까?
"원래는 안 그랬지, 하지만 여기 영국의 노숙자 연맹의 힘이 하도 강해서 정부에서 함부로 할 수 없다고. 그 노숙자 연맹은 스스로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인데, 런던시내 거의 대부분의 노숙자들이 가입해 있지. 그중 누구라도 권리를 침해당하게 될 경우 영국정부는 아마도 이 조직의 쓴맛을 보게 될 것이야. 한국은 노숙자 스스로의 연맹 내지는 조직이 없잖아."

십년동안 그들을 위해 일했습니다. Daliah 씨.
십년동안 그들을 위해 일했습니다. Daliah 씨. ⓒ 김솔지
- 그래도, 사실은 길거리에 나앉아서 혼자서 산다는 것은 외로운 일이 아닌가요?
"잘 생각해봐, 여럿이어서 너는 항상 외롭지 않고 행복했니? 이 사람들이 노숙자가 되는 가장 큰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니? 그것은 이혼으로 인해 재산을 다 뺏겼거나, 아니면 어느 날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어서 또는 약물, 알코올 중독인 경우가 더 많아. 물론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겠지. 그들에게 우리가 애정을 준다면 그들에게도 돌아올 여지가 생길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이들의 상처는 너무 깊어서 사람을 믿으려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야. 그들의 곁에 거의 항상 개가 있는 것을 보았지? 개를 베고 자고 개와 함께 걷고 개와 함께 먹고, 그 이유는 바로 개는 배신을 하지 않기 때문이야. 그 존재 하나 만으로 그들은 충만함을 느낄 수 있어."

- 그렇게 그들의 행동이 인정이 된다면 당신이 일하는 곳과 같은 기구는 필요가 없지 않나요?
"그들의 조직을 도와야하고 그들의 권리가 침해당하는지 모니터도 꾸준히 해야 하지 그리고 노숙자의 생활에서 헤어나오고자 하는 이들에게 길잡이가 되어야 해. 정부의 재활치료도 명목 뿐인지 아니면 실질적인 해결책이 되는지 옆에서 비판적 사고를 갖는 비정부기구는 항상 필요해."

- 그렇게 10년 일하고 보람이 많은가요? 많은 도움이 되었나요?
"음, 오히려 내가 더 외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때가 많아. 물론 일부분이 새로운 삶을 찾거나 더 건강해지면 더할 나위없지만, 어느 날, 나 또한 혼자임을 알게 될 때, 텅 빈 집에 한밤중에 홀로 들어와 외로움에 꺼이꺼이 울고 싶은데 전화할 사람이 없는 나를 보게 될 때, 외향만 가지고 그들의 행복지수를 판단할 수는 없는 거라고 봐."

내가 사는 집과 회사, 나의 사람들이 서울의 일부이듯 영국 노숙자들도 도시 풍경의 일부이다. 그들은 배척해야할 상대도 아니고, 혀 끌끌 차며 안타까워 해야할 존재들도 아니다. 그들의 삶은 그들이 선택한 것이고, 힘들더라도 그들은 의지할 자립 동맹이 있고, 지원하는 비정부기구가 있고 당당히 요구할 수 있는 정부가 있다.

문득, 나는 한국의 노숙자들에 대해 너무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기억하기 싫은 기억을 무의식 저편으로 밀어 넣듯, 나는 그래왔는지도 모른다. 가만히 앉아 인터넷 검색에 노숙자, 노숙자 연맹, 노숙자 지원 대책, 등등을 검색어로 쳐본다. 뭔가 하나가 빠져 있다. 연결고리가 없다. 한 끗만 바꾸면, 조금 더 행복해 질 수도 있을 텐데. 이제 봄이 오면 2006년만큼은 기쁘게 웃으며 함께 월드컵 응원도 하면 좋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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