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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비로소 우리 딸아이가 어린이 집엘 가기 시작했다. 여태껏 집안에서만 맴돌던 딸아이가 드디어 집 밖으로 나간 것이다. 물론 이전에도 시청 안에 있는 보건소라든지 어린이 병원이라든지 몇 몇 곳을 찾아 나간 적은 있다. 그렇지만 그때는 엄마와 아빠의 뒤를 맴맴 뒤쫓아 나선 길이었고, 이번 어린이집만큼은 제 홀로 나선 길이다.
“민주야. 어린이집에 가면 잘 해야 돼.”
“예-에.”
“선생님들에게도 인사 잘 하고.”
“예-에.”
“한 번 해 볼래?”
“…….”
“그렇게 말고, 두 손을 모으고 해야지.”
“…….”
방안을 나서기 전, 아내는 딸아이에게 이것 저것 몇 마디 말로 주의를 줬다. 그렇지만 딸아이는 잘 따라하지 못했다. 그저 제 맘에 드는 대로만 할 뿐이었다. 사실 네 살 밖에 되지 않는 딸아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말을 잘 못해서 발음도 종종 샐 뿐이다. 그런 딸아이를 세상 밖으로 보내려 했으니, 아내의 심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민주야. 가서 엄마 아빠가 보고 싶으면 그냥 와버려.”
“예-에.”
“누굴 때리면 안 돼. 내가 불려 가면 안 되잖니?(웃음)”
“예-에.”
아내 옆에서 나도 덩달아 몇 마디 말을 건넸다. 긴장된 아내의 마음을 한 풀 풀어 주려고 건넨 이야기였지만, 아내만큼 나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딸아이의 성격이 활발하고 쾌활해서 찬 밥 신세는 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크게 잘 못하지 않는 이상 누구와도 잘 어울릴 딸아이다. 그 때문에 마음 한구석이 은근히 놓이긴 한다.
하지만 당장 대문 밖을 나서는 나와 아내의 심정은 초조했다. 어린이집에서 오는 중형 버스도 그날 따라 처음 시작하는 마당이라 그런지 많이 늦장을 부려서 더 애타했다. 그렇지만 예상된 시간보다 10분도 채 못 지나서 차가 왔다. 그나마 고마운 일이었다. 차가 집 앞에서 멈추자, 예쁜 선생님 한 분이 차에서 내려와서 우리 딸 민주를 안고 태우려 했다. 그 순간 딸아이는 뒤를 돌아보며 인사를 건넸다.
“엄마 빠빠. 아빠 빠빠.”
“민주야, 잘 갔다 와.”
“응. 엄마 빠빠. 아빠 빠빠.”
네 살배기 딸아이가 무엇을 알까 싶었지만, 고맙게도 우리 딸 민주는 엄마 아빠를 향해 손을 흔들어 줬다. 참 기쁘고 흐뭇했다. 그리곤 딸아이는 곧장 어린이집 선생님과 함께 멀리 멀리 사라져 갔다. 딸아이와 헤어지는 그 순간, 나는 나의 일터로 갔고, 아내는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는 홀로 남은 두 살배기 민웅이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녁 늦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아내는 딸아이가 떠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많은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먼 곳으로 떠난 것이 아닌데도, 왜 그렇게 눈물이 흐르던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고 한다.
아마도 그것은 어미 품을 떠난 어린 비둘기처럼, 민주의 뒷 모습 속에 그 어린 비둘기 한 마리를 보았기 때문이지 않나 싶었다. 여태껏 집과 식구라는 둥지 안에서, 엄마와 아빠의 품 속에서 살을 맞대고 놀던 딸아이가 세상을 향해 한 발 한 발 내디디기 시작했으니, 가히 여리디 여린 모습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내는 그래서 처음으로 홀로 떨어져나가는 딸아이를 보며 훌쩍훌쩍 눈물을 흘렸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