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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과 해태상의 시원스런 풍경
광화문과 해태상의 시원스런 풍경 ⓒ 문일식
해태상을 지나 오랜만에 경복궁에 들어섰습니다. 아마도 입장료가 오른 뒤로 처음이 아닌가 합니다. 따사로운 햇살이 경복궁의 얼어붙은 바닥을 적시며 봄기운을 일으킨 일요일 오후, 유명세를 탄 영화의 인기를 반영하듯 근정문 앞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운집하기 시작했습니다.

남사당은 서민사회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민중놀이 집단이며, 남자로만 구성되어 있어 남사당패라고 불립니다. 양반사회의 모순을 비판하고, 서민들의 웃음과 해학을 대변했기에 붓을 놀리던 양반계급들로부터 평가절하, 매도를 당했습니다. 입에 풀칠하기에 급급했던 남사당은 서민들에게는 환영을 받은 반면 양반계급들로부터는 멸시와 천대를 받았기에 마을로 진입하기 쉽지 않았고, 반드시 허락이 떨어져야만 마을로 들어와 신명나는 한 판을 벌였다고 합니다.

남사당패를 감싸 안았던 청룡사. 가공하지 않은 나무기둥을 사용한 대웅전의 전경.
남사당패를 감싸 안았던 청룡사. 가공하지 않은 나무기둥을 사용한 대웅전의 전경. ⓒ 문일식
이런 존립기반의 한계로 경기도 안성지역에만 남게 되는데, 이렇게 남을 수 있는 배경에는 청룡사라는 사찰과 바우덕이의 역할이 컸습니다. 일정 거처가 없었던 남사당은 청룡사에서 추운 겨울을 나고, 봄이 되면 이곳저곳을 떠돌며 생계를 유지했다고 합니다.

또한 바우덕이는 본명이 김암덕이라고 불리우는 여성입니다. 남사당에서 유일하게 여성 꼭두쇠가 되었는데, 얼마나 유명한가 하면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할 당시 안성 남사당패가 초청이되었는데, 바우덕이의 노래와 춤, 줄타기 모습에 일꾼들이 넋이 나갈 정도였다고 합니다. 또한 흥선대원군도 그 가무능력에 탄복하여 당상관의 벼슬과 옥관자(옥으로 만든 망건의 관자)를 하사했다고 합니다.

공연내용은 남사당보존회의 풍물과 중요무형문화재 34호인 강령탈춤, 그리고, <왕의 남자>를 통해 관객들을 열광의 도가니에 빠뜨린 줄타기입니다. 시간상의 제약이 있었는지 많은 부분이 생략된 것이 아쉽긴 했지만, 서울 한복판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흥미로운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다행이었습니다.

남사당이 펼치는 공연은 모두 여섯가지입니다. 풍물, 버나, 살판, 어름, 덧뵈기, 덜미라고 부르는데, 각각 쉽게 표현하면 농악놀이, 대접돌리기, 땅재주, 줄타기, 탈놀음, 꼭둑각시놀음이 됩니다. 오늘은 그중에 꼭두각시 놀음을 제외한 나머지 다섯가지를 선보였습니다.

남사당패의 풍물
남사당패의 풍물 ⓒ 문일식
공연장 사방을 꽉 메운 인파와 함께 공연 시작을 알리는 사회자의 묵직한 음성이 울려 퍼지기가 무섭게 풍물이 시작되었습니다. 꼭두쇠의 질펀한 꽹과리 소리와 함께 줄줄이 모습을 드러내는 풍물패의 모습은 흥겨움의 시작이었습니다. 강령탈춤이 시작되기 전까지 풍물, 상모돌리기, 버나돌리기, 살판, 무등 순으로 진행되었습니다.

화려한 의상과 소리들이 경복궁을 휘감으며 서울 전역으로 흐르는 듯했습니다.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들썩이시는 어르신과 호기심어린 눈으로 지켜보는 아이들의 모습은 서로 대조되는 모습이긴 하지만 대한민국이라는 하나의 끈으로 묶어 놓았습니다. 외국인들마저도 들썩거리게 만드는 풍물 모습은 강렬한 대한민국의 힘을 느끼기에 충분했습니다.

버나돌리는 모습..솟구치는 버나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버나돌리는 모습..솟구치는 버나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 문일식
상모돌리기가 끝나고 버나돌리기와 살판으로 이어졌습니다. 버나는 대접이나 쳇바퀴 또는 대야 등을 앵두나무 막대기로 돌리는 묘기로 남여 두 분이 나와서 펼쳐 보였는데, 하늘높이 솟구치는 버나의 모습이 너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살판은 '잘하면 살판이요, 못하면 죽을판'이란데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앞곤두, 뒷곤두, 번개곤두, 자반뒤집기 등을 땅재주꾼과 어릿광대가 나와서 웃음바다로 만드는 일종의 덤블링 묘기입니다. 땅재주꾼은 허공을 가르며 날렵하게 솟아오르는 반면, 어릿광대는 그 모습을 배우려는 듯 땅을 구르며 우스꽝스럽게 연출했습니다.

무동.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한 모습.
무동.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한 모습. ⓒ 문일식
풍물의 흥이 고조되고 이제는 꼬마아이를 어깨위에 태우고 돌아다니는 무등이 펼쳐졌습니다. 한사람 위로 두 명까지 올라서고, 좌우로 한명씩 이어 세워 마치 유랑극단의 덤블링을 보는 듯했습니다. 모든 순서가 끝나고 큰 박수를 받으며 풍물패는 퇴장을 했습니다.

강령탈춤중 미얄영감과 할미춤...할미가 미얄영감을 찾아다니는 모습
강령탈춤중 미얄영감과 할미춤...할미가 미얄영감을 찾아다니는 모습 ⓒ 문일식
이어서 강령탈춤이 시작되었습니다. 강령탈춤은 중요무형문화재 34호로 지정된 황해도 해주의 탈춤으로 그 유명한 봉산탈춤과 쌍벽을 이루는 탈춤입니다. 강령탈춤은 사자춤, 말뚝이춤, 목중춤, 상좌춤, 양반 말뚝이춤, 노승 취바리춤, 미얄영감 할미춤 모두 7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번 공연에서는 미얄영감 할미춤과 노승 취바리춤 두 장만 선보였습니다.

미얄영감 할미춤은 방랑하던 미얄영감이 주모를 만나 새살림을 차리고, 미얄영감을 찾아나선 할미가 상봉하지만 결국 미얄영감이 할미를 매몰차게 내쫓는 내용입니다.

취바리가 노승을 쫓아내고 소무로부터 아들을 얻는 모습
취바리가 노승을 쫓아내고 소무로부터 아들을 얻는 모습 ⓒ 문일식
노승 취발이 춤은 천하의 한량인 취발이가 노승과의 싸움에서 소무를 차지하고 아들을 얻는다는 내용입니다. 새살림을 차리면서 본처를 내쫓거나 타락한 중을 쫓아내는 장면은 해학과 웃음, 사회비판적인 요소가 가득한 풍자의 한마당이었습니다. 현란한 몸짓과 춤, 입담이 장단과 어우러져 보는 사람의 얼을 빼 놓았습니다.

이제 오늘의 하이라이트 어름, 즉 줄타기 공연이 시작되었습니다. 풍물이나 강령탈춤은 줄타기를 위한 에피타이저였습니다. 어름이라는 말은 얼음 위를 조심스럽게 걷는 것만큼 어렵다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왕의 남자에서 장생의 대역을 하셨던 줄꾼 권원태 님
왕의 남자에서 장생의 대역을 하셨던 줄꾼 권원태 님 ⓒ 문일식
줄타기를 하시는 분은 영화 <왕의 남자>에서 장생의 대역을 맡은 줄꾼 권원태씨입니다. 세계 줄타기 선수권대회에서도 우승을 거머쥔 세계 최고의 줄꾼입니다. 아슬아슬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 자연스러운 줄타기 모습에 환호성이 오갔습니다. 가끔가다 고의적인 실수를 하는 척 하여 간혹 비명 비스무리 한 것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줄꾼은 줄 위에서 관객들로 하여금 스릴을 느끼는 여유를 부리는 듯했습니다.

줄타기(어름)하는 모습
줄타기(어름)하는 모습 ⓒ 문일식
매호씨(줄꾼과 재담을 주고 받는 이)와의 걸죽한 입담도 재밌지만, 줄꾼의 가장 큰 비극인 가랑이 사이의 아픔을 이야기 하는 부분이나 영화 한 편이 던져준 유명세 이야기도 관객들에게 들려주어 재미를 주었습니다. 먹고살려고 한다는 이야기에서는 남사당패의 애환이 짙게 묻어나기도 했습니다. 줄위에서 정신이 얼얼할 정도로 신들린 듯한 묘기를 보이더니 바닥으로 떨어지는 듯 착지하여 줄타기를 마무리 지었습니다.

혼을 쏙 빼놓은 현란한 줄타기의 모습.
혼을 쏙 빼놓은 현란한 줄타기의 모습. ⓒ 문일식
우레와 같은 박수가 이어지고, 권원태씨는 환호성을 뒤로 한 채 서서히 퇴장했습니다. 공연은 모두 마무리되고, 풍물패와 함께 어우러지는 뒷풀이가 있었습니다. 공연하는 사람과 보는 사람이 하나되는 자리였습니다. 아이들을 무동 태우고 나온 아버지, 어깨춤 덩실덩실 추는 할아버지 할머니, 마냥 재밌어 하는 아이들까지 합세해 공연장은 신명나는 한 판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과도 친해지고, 누구와도 어울릴 수 있는 신명나는 한 판. 우리 대한민국이 아니면 그 어느 나라에서 하나됨을 맛볼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하나로 끈끈이 묶어주고 이어주는 바로 이것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저력이 아닌가 합니다. 나라가 위기에 빠지고, 큰일이 있을 때마다 하나 될 수 있었던 바로 그 힘.

덧붙이는 글 | 유포터에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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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자연과 역사를 느낄 수 있는 글과 사진을 남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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