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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이어지는 학교 내부의 압력을 견디다 못해 결국 2월 21일 사임을 발표한 서머즈 하버드 총장. 사진은 미국 재무부 장관 당시 모습.
계속 이어지는 학교 내부의 압력을 견디다 못해 결국 2월 21일 사임을 발표한 서머즈 하버드 총장. 사진은 미국 재무부 장관 당시 모습.
미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대학 하버드. 작년 초 미국은 물론이고 한국에까지 여러 가지 '망언'이 알려져 곤욕을 치렀던 하버드 대학 서머즈 총장이 계속 이어지는 학교 내부의 압력을 견디다 못해 결국 2월 21일 사임을 발표했다.

서머즈 총장이 학사일정이 마무리되는 6월 30일을 기해 총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한 발표는 미국 전역에서 화제가 됐다. 물론 하버드가 미국 최고(最古이며 最高) 대학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 문제가 미국 전국 언론에 회자할 정도로 관심을 모은 이유는 따로 있다.

서머즈의 사임은 현재 미국 대학들이 당면한 문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과연 현재 미국 대학에서 대학 총장은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가. 대학 총장의 권한과 역할은 대학의 다른 구성원들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규정되어야 하는가.

하버드 총장의 사임과 미국의 대학

교육계는 '교육'의 특성상 급변하는 사회 물결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대학들에도 냉혹한 경쟁 바람은 불어 닥쳤고 근래 들어 미국 대학은 급속하게 기업화됐다. 대학들은 수지를 맞추면서도 교육 서비스의 질도 높여야 한다는 당면과제와 늘 씨름하고 있다.

거액의 기부금을 모으고 대학의 장래 청사진을 제시해 그를 실천해 나가는 것은 요즘 미국 대학 총장들의 공통된 역할이다. 이렇게 보면 보통 기업의 총수(CEO) 역할과 별로 다르지 않다. 자금을 유치하고 앞으로의 비전을 제시해 계획을 세워 밀고 나가는 것.

그러나 미국의 대학이 일반 기업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구성원의 특이함에 있다. 간단히 말해 기업의 임원 및 사원에 해당할 대학교수들은 회사와는 비교할 수 없는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정년 보장(tenure)을 받은 교수들은 학문적 성과가 거짓으로 드러난다든지 하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면 총장 눈에 밉보였다는 등의 이유로 잘릴 위험이 없다.

아니, 도리어 그들은 총장을 밀어낼 수도 있다. 이번에 하버드에서 일어난 일이 바로 그렇다. 그리고 하버드만의 특수한 경우도 아니다. 인디애나 주립대에서도 최근 교수들의 불만을 산 총장이 물러나게 됐다.

엇갈리는 평가, 서머즈 총장의 공과 실

로렌스 서머즈(51). 지난 2001년 7월 하버드 대학 총장으로 취임했으니 5년 만에 물러나는 셈이다. 하버드 대학 역사상 두 번째 단명이다. 그나마 최단명 총장은 19세기에 재임중 사망했으니 학내 알력 싸움으로 사임하는 이번 경우는 아주 불명예스럽다 하겠다.

서머즈 총장의 출발은 좋았다. 30세도 안된 나이에 하버드 경제학과 교수로 임명됐으며 클린턴 임기 말기에 미국 재무부장관을 역임한 저명인사인 만큼 하버드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리라 기대됐다.

실제로 그는 총장 취임 후 여러 면에서 하버드 개혁을 추진해왔다. 하버드 학부 교육을 대폭 강화하는 한편, 이전을 통한 캠퍼스 확장을 성공적으로 진행시켜가고 있었고, 생명공학 분야에도 힘을 기울여 '하버드 줄기세포 연구소'를 개소하기도 했다. 이밖에 연간소득 4만불(약 4천만원)이 안되는 가정의 자녀들이 하버드에 입학할 경우, 학비를 면제해주는 제도를 도입해 큰 호응을 얻었다.

학생들에게 큰 인기를 얻은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대학 신문 <하버드 크림슨>은 최근에도 교수단이 서머즈 총장에 대해 내려고 한 불신임안에 대해 '불신임안을 불신임한다'는 칼럼을 쓰는 등 서머즈 총장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그러나 서머즈 총장은 교수들의 마음을 얻는 데는 실패했다. 그리고 그것이 결정적인 패착이 됐다. 그의 입이 문제였다.

줄줄이 이어진 '메가톤급 설화(舌禍)'

서머즈(1954~) 총장은 어떤 사람?

로렌스 서머즈는 유수한 집안에서 자라 화려한 경력을 쌓은 인물이다. 부모 모두 경제학자이며 아버지 쪽과 어머니 쪽으로 모두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가 있다(1970년 노벨 수상자인 폴 사무엘슨이 아버지 형제고 1972년 수상자인 케네스 애로우가 어머니 형제다. 서머즈의 아버지는 반유대인 정서를 피하기 위해 성을 사무엘슨에서 서머즈로 바꿨다).

서머즈 총장은 16세에 M.I.T.에 입학했고 하버드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28세의 나이에 하버드 교수가 됐으며, 1991년 하버드를 떠나 세계은행(World Bank)에서 수석 경제연구원으로 일했다. 1993년 이후에는 미국 재무부에서 여러 직을 맡다가 1999년부터 2001년까지 재무부 장관을 지냈다.

그는 클린턴 정부가 막을 내린 2001년 총장으로 하버드에 복귀했다. 경제학자로서 서머즈는 국가 재정, 노동 경제학, 거시경제학에 조예가 깊다. 그리고 자유무역과 글로벌리제이션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입장이다.
서머즈 총장은 직선적이고 솔직한 어법으로 취임 초기부터 크고 작은 구설수에 올랐다. 2002년에는 하버드의 유명한 흑인 교수 코넬 웨스트와 또다른 스타급 흑인교수가 서머즈의 부당한 질책에 대한 항의로 프린스턴 대학으로 옮겨갔다. 당시 서머즈 총장은 웨스트 교수에게 "정치적 활동에 많이 개입하고 학부 강좌 학점을 너무 잘 줘서 학점 인플레를 일으킨다"고 질책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존심이 강하고 자율권을 중시하는 교수들은 서머즈의 무례한 질책에 경악했다.

한국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사건도 있다. 2004년 7월 여름학기 개강식에서 "한국 서울에서는 1970년 만해도 미성년자 창녀 수가 100만에 육박했다"는 근거 없는 발언을 한 것(서머즈 총장은 똑같은 이야기를 2003년 10월에도 한 바 있다).

그렇게 '설화'에 익숙한 서머즈 총장이 작년 1월에는 미국에서 메가톤급 사고를 쳤다. 1월 14일 경제학 학술회의에 경제학자 자격으로 참가해 연설을 한 서머즈는 과학과 공학 분야에서 여자가 최고 수준에 오르는 경우가 드문 현실에 대해 논하면서 그 본질적 이유를 남녀 간에 존재하는 '천성적 차이'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즉, 여자가 남자보다 과학 분야에 열등한 유전자를 갖고 태어나기 때문이라는 것.

"여러분에게 도발적으로 들리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가장 큰 (남녀차별의) 이유는 사람들이 가정을 가지려는 정당한 욕구와 요즘 고용주들이 바라는 바, 즉 높은 생산성과 높은 집중성 간에 충돌이 생겨서이고 또 과학 및 공학의 특별한 경우에는 내재적인 소질의 문제, 특히 소질의 차이가 있고 그 요소가 사회화라든가 지속적인 차별 같은 사실상 덜 중요한 문제와 맞물리면서 공고해진다고 본다."

이 말에 반발한 저명한 여성 과학자 낸시 홉킨스 MIT 교수는 서머즈의 연설이 끝나기도 전에 회의장을 나가는 것으로 즉각적인 반대입장을 나타냈다. 하버드 대학 총장이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이 외부에 알려지자 언론의 대대적 보도도 이어졌다.

교수들의 요구 "총장직을 내놓으시오"

이 일로 그렇지 않아도 서머즈 총장의 독선적인 언행을 불쾌해하던 교수들이 들고 일어났다. 2005년 3월 17일 하버드 교수협의회는 서머즈 총장에 대한 불신임안을 찬성 215 대 반대 185로 통과시켰다.

그러나 이 유례없는 결정은 서머즈 총장의 리더십을 못 믿겠다는 집단의사 표현이었을 뿐, 실제적 구속력을 갖지 못했다. 하버드 학칙상 총장의 임면권은 오직 '하버드 코퍼레이션'이라 불리는 위원회에 있는데, 하버드 코퍼레이션은 이 사태에 대해 거듭 서머즈 지지표명을 했다.

로렌스 서머즈 총장을 소개하는 하버드 대학 웹페이지.
로렌스 서머즈 총장을 소개하는 하버드 대학 웹페이지.
하버드 학생 신문인 <하버드 크림슨>도 2월 18일 서머즈를 지지하는 장문의 의견을 게재했다. "대학이란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사고방식을 발견하기 위해 있는 곳으로 새로운 생각이 불편하다고 배척해서는 안되며 서머즈가 한 말은 중요한 문제 제기"라는 것. 두 명의 여학생과 한 명의 남학생이 공동으로 쓴 이 글에서 그들은 서머즈에게 단점이 있지만 그보다는 그가 이제까지 진행해온 성공적인 개혁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는 의견을 펼쳤다.

서머즈 총장 또한 거듭 사과하는 한편 개선책을 내놨지만 이미 떠난 교수들의 마음을 되돌리지 못했다. 이 와중에 올해 초에도 서머즈 총장과의 불화 때문에 인문대 학장이 학장직을 사임하는 사태가 벌어졌고, 교수협의회는 2월 28일에 또다시 총장 불신임안을 투표에 부치겠다고 발표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이제까지 변함없이 서머즈 총장을 지지해오던 하버드 코퍼레이션도 두 손을 들었다. 이에 서머즈도 더는 자신이 하버드 대학을 통합해 이끌고 나갈 능력이 없음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대학 총장은 무엇으로 사는가

대학 총장의 지도력의 핵심은 무엇일까. 700명이 넘는 대학 총장들을 상대로 설문을 한 미국 <고등교육지>(Chronicle of Higher Education)는 대학 총장이 갖춰야 할 능력으로 다음 세 가지를 꼽았다.

첫째가 지도력(leadership)이고, 둘째가 좋은 대인 관계 (interpersonal relations), 세 번째는 그 학교 전통과 장래 계획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connection with the mission and understanding of the culture of the institution).

이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분석한 맥과이어는 미국 공영라디오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대학 총장의 역할에 대해 "학교의 사기, 신뢰는 물론 학교가 어느 방향으로 나가느냐는 문제를 두고 구성원들을 통합하는 일이 총장에서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서머즈 총장 역시 사퇴의 변을 밝히며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차기 하버드 대학 총장이 누가 되든 학교 내의 다양한 이익 그룹들과 좋은 관계를 맺을 것을 주문했다.

서머즈 총장의 사임은 구성원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비전이라 한들 추진력을 얻지 못한다는 상식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서머즈 총장은 대학의 특수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대학 구성원들을 홀대했을 때 따르는 벌도 받게 된 셈이다. 재단이사회와 총장의 권한이 막강한 한국대학의 상황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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