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메주덩이들을 씻어놓고 나서 미리 풀어놓은 소금물 상태를 살피는데 소파에서 책을 읽고 있던 남편이 와서 한마디 합니다.
"싱겁게 담그라구. 짜면 안 먹는 거 알지? "
별 생각 없이 그냥 하는 소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조금 짜증이 납니다.
"간간할 정도로 맞췄어."
"얘들 자랄 적만 해두 고추장 된장은 없어서는 안 되는 찬이었는데."
나는 들은 척도 안 합니다. 내가 뭐라 맞장구를 치면 보나마나 또 귀에 익은 옛날 얘기들을 물고 나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추장 된장에 얽힌 자신의 어릴 적 추억부터 시작해서 옛 어르신들은 장독대와 장독들을 무쇠 솥뚜껑을 딱 듯이 청결하게 했다느니 무 시래기나 배추시래기를 넣고 끓인 된장국은 몰라서 그렇지 실은 뿌연 곰국보다 더 건강에 좋은 웰빙 음식이라느니 하고 말입니다.
"거 된장 시래기 국 생각나네, 저녁엔 묵은 된장으루 배추 국이나 끓이지 그래."
"어제 봤잖아, 세 포기 들어있는 한 망에 만천 원 하는 거. 그 비싼 걸로 국을 끊여?"
나는 면박을 줍니다. 가끔 남편은 장시세를 깜박하고는 합니다. 어제 마트에서 남편이 나 보다 먼저 배추값을 보고는 너무 비싸다고 했던 것입니다.
나는 물 끼가 마른 메주덩이들을 항아리에 넣고 나서 작은 플라스틱 바구니를 항아리 위에 얹고 말갛게 가라앉은 소금물을 가만가만 떠서 붓습니다. 남편이 흔들리지 않도록 두 손으로 바구니를 잡았습니다. 소금물을 다 붓고 나자 메주덩이가 떠오릅니다. 말간 소금물에 둥실 뜬 메주덩이 색깔이 노르스름하게 피어났습니다. 잘 익은 된장 색입니다. 올해 역시 된장도 간장도 아주 맛있을 것만 같습니다.
뒷정리를 모두 하고 나서 보니까 남편이 소파에서 책을 읽다가 말고 길게 누워 잠이 들었습니다. 코 고는 소리가 크게 났다가 안 났다가 합니다. 얇은 누비이불을 가져다가 덮어주고 돌아서는데 불현듯이 그의 벗어진 머리며 얼굴에 깊은 주름들이 가슴에 와 걸립니다. 늘 보는 모습인데도 딴 사람처럼 낯설어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 나이에 새벽 수영을 다니면서 건강을 챙기는 남편이지만 세월 앞에서는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나는 손지갑을 챙겨들고 나섭니다. 구수한 된장 배추 국으로 흐르는 세월을 살 수는 없지만 남편의 건강은 조금이나마 살 수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