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일부터 4월 2일까지 한 달여 동안 격랑을 일으킬 <와이키키>는 지난해 8월 LA 윌셔이벨극장에서 가진 공연을 통해 전회 기립박수의 기록을 세운 바 있다. 교포들이 아닌, 미국인들의 아낌없는 찬사가 절대 과장이나 거품이 아니었음을 나는 지난 3일(금) 확인할 수 있었다. 나 역시 공연이 끝난 뒤 기립박수를 칠 수밖에 없었다.
"정말 재미있고, 신나고, 힘이 넘치는 무대다. 지금까지 관람한 최고의 뮤지컬 중 한 작품이다(This is a funny, exciting and energetic show! It's one of the most excellent shows ever I seen)!"
혼신을 다한 배우들과 제작진 특히, 외국작품이라면 무조건 수입부터 하고 보는 풍조에 대한 반감으로 지난 11년 동안 '서울뮤지컬컴퍼니'를 이끌며 창작뮤지컬의 신화를 쓰기 위해 '모든 재산 다 털고 남은 것은 빚뿐'이라고 말하는 김용현(55) 대표에게 감히 이 덜 익은 관람기를 헌정한다.
7080 세대에겐 향수를, 젊은 세대에겐 감동을
인생이라고 하는 긴 여정 가운데 누구나 겪어야 하는 질풍노도의 시기가 있다면 그건 바로 고등학생 시절이 아닐까 싶다. 세상에 무서운 것 없고, 뭐든지 이룰 수 있을 것 같고, 뜨거운 피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넘쳐 흐르고, 그리고 풋풋했던 꿈들!
이원종 : "<와이키키>는 우리 모두 나이가 들어가면서 잊고 사는 잃어버린 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뮤지컬의 주제는 '꿈'이다. 추억 속 한 갈피를 열어보면 누구나 묻어두었던 꿈을 발견한다. 그래서 <와이키키>는 7080 세대에게 특히 정겹다.
이원종 : "꿈은 뭐가 되겠다, 무엇을 가지겠다는 것만은 아닐 듯싶어요. 예를 들면 갈대로 배를 엮어서 바다를 건너가는 과정이랄까, 뭐 그런 게 아닐까 싶은데요. 꿈이란 현실적인 목표라기보다는 삶의 원동력 즉, 지금 자신의 삶이 있게 하는 원천 같은 게 아닐까 생각해요. 우리가 나이 들어가면서 직업을 가져야 한다든지, 현실에서 이루는 어떤 성취, 그런 것들만 중요시하다보니 진정한 꿈을 자꾸 잊는 것은 아닐까요?"
프롤로그 : 충주고의 밴드 '충고보이스' 멤버인 성우, 강수, 정석은 발표회를 앞두고 분주하다. 한편, 충주여고의 밴드 멤버인 길주와 영자는 음악을 접겠다는 인희를 다시 영입하기 위해 안달이다. 큰 무대를 꽉 메운 남녀학생들이 일사불란한 움직임으로 무대복판을 가로지르며 환상적인 춤과 노래를 쏟아낸다. <세상만사>(송골매)가 오케스트라와 함께 웅장한 코러스로 연출되면서 순탄하지 못할 주인공들의 운명이 복선으로 깔린다.
"세상만사 모든 일이 뜻대로야 되겠소만…(합창)."
첫째 마당 : 발표회에서 성우네(충고보이스)는 '어쩌다 마주친 그대(송골매)'로 여학생들의 인기를 독차지한다. 인희네(버진 블레이드)는 < Bad case of Loving You >(로버트 팔머)를 불러 객석을 휘어잡는다. 현란한 조명과 어우러져 속도감 있게 전환되는 배경. 완벽한 화음으로 봄꿈보다 더 달콤하게 펼쳐지는 코러스, 그리고 거의 기예수준으로 안무된 춤들은 관객을 숨도 제대로 못 쉬게끔 몰아세운다.
딴생각 할 틈 없이 전개되던 주인공들의 고교시절이 끝나가고…, 진로에 대해 막막할 수밖에 없는 친구들이 기약할 수 없는 꿈과 희망을 노래할 무렵 1막을 마감하는 휘장이 서서히 드리워진다.
둘째 마당 : 30대 중반이 될 때까지 와이키키 브라더스란 이름으로 밤무대를 전전하다 결국 고향인 수안보로 향하는 세 친구들. 그들에게 더 이상 상큼하던 시절의 꿈은 없다.
"꿈? 우리한테 그런 게 있기는 했었나(강수)?"
이제 그들은 추억을 곱씹으며 소주잔을 기울일 때만 행복을 느끼는 나이가 돼버렸다. 그들이 고향의 밤무대에 취직한 첫 날, <토요일은 밤이 좋아>(김종찬)를 열창하지만 왠지 쓸쓸하다. 그들은 새로운 꿈을 꿀 수 있을까?
에필로그 : 고단했던 삶을 뒤로 하고 용기를 낸 인희는 성우와 함께 다시 노래를 부른다. <사랑밖엔 난 몰라>(심수봉)를 부르는 인희의 표정에 생기가 돈다. 소박하나마 다시 희망을 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삶이 고달픈 이유는 좌절되는 꿈 때문이 아니라 다시는 꿈을 꾸지 않기 때문이라는 경구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성공스토리가 아니라 더욱 애절한…
이원종 : "이 뮤지컬은 세상 기준으로 볼 때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의 얘기입니다. 현실에서 세속적인 꿈을 이룬 사람보다는 이루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 분들이 아, 이거 내 얘기일 수도 있구나, 하고 느꼈으면 합니다. 극장 문을 나설 때, 그동안 꿈을 잊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자신이 꾸었던 꿈을 다시 한 번 떠올릴 수 있는, 향수 짙은 기억을 되짚어볼 수 있는, 그래서 힘을 다시 얻는, 뭐 그랬으면 합니다만…(웃음)."
휘모리장단처럼 몰아치던 공연이 끝났나 싶을 무렵 모든 배우들이 다시 등장한다. 한 사람 한 사람, 공연 중 불렀던 노래와 춤을 보여주며 피날레를 장식한다. 흥에 겨운 관객들이 일어나 무대 앞으로 몰려나간다. 마지막으로 전개되는 전 출연진의 화려한 춤과 노래. 그 역동성이 관객들에게 옮아오면서 여기저기 환호성과 박수소리가 요란하다. 2004년부터 이어져 온 네 번째 공연, 그 첫날 공연임에도 꽉 찬 객석에 더 이상 앉아있는 사람은 없다.
이원종 : "원작은 아시다시피 동명 영화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우리 가요를 드라마적 분위기를 살리기 위한 장치로 적절하게 잘 썼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뮤지컬도 우리 가요를 살려 쓰면 괜찮겠다고 생각했지요. 사실 창작뮤지컬 할 때 가장 애먹는 부분이 음악입니다. 어차피 작품의 주 배경이 과거인 만큼, 그 시절 우리들이 좋아했던 노래들을 모두가 호응할 수 있도록 엮어보고 싶었습니다."
<와이키키>는 아바의 노래 22곡을 삽입해 만든 뮤지컬 <맘마미아>에 비할 때 전혀 손색이 없다. 탄탄한 구성과, 말미에 가슴노리를 치는 감동으로 볼 때 오히려 낫다. 창작곡과 우리 가요를 포함해 서른 곡 정도가 적절한 편곡과 오케스트라에 흐무러지면서 전혀 새로운 맛을 보여준다. 안무 또한 서양인들의 몸짓과는 전혀 다른, 우리만이 보여줄 수 있는 선을 맛깔스럽게 그려내고 있다.
작년 LA에 이어 미국 내 다른 지역과 일본 중국 등에서 공연이 추진 중이라고 한다. 부디 <와이키키>가 우리네 순수창작 대형뮤지컬의 자존심을 걸고 새로운 '한류'를 불러일으키기를 희망한다. '우리 것이기 때문에 무조건 좋다'가 아니라 어디에 내놔도 자랑할 만한, 격 높은 완성도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예매문의 : 티켓파크 ☎ 1544-1555 티켓링크 ☎ 1588-7890
공연문의 : ☎ (02) 3141-13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