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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의사당.
ⓒ 권우성

"어떻게 오셨습니까?"

지금 세 번째다. 국회 들어와서부터 이 질문 받는 게. 국회 정문에서 한 번, 국회의사당 입구에서 한 번, 그리고 면회실 앞에서 한 번. '삼고초려'가 아니라 '삼고반려'다. '세 번 고문하고 반려당하다' 그런데 왜 저 질문만 받으면 나는 이렇게 작아지는 걸까? 꼭 취조당하는 기분이다. 다른 데처럼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이렇게 말하면 입에서 덧버선이라도 돋아나나?

나는 최대한 뭔가 있어 보이려 애쓰며 말했다. "오늘 국회 대정부질문이요. 그거 방청권을 받고 싶은데요." 국회의사당 면회실 '안내' 표지판 앞에 앉은 직원은 무슨 소리냐는 듯이 쳐다봤다. 난 고개를 더 꼿꼿이 세웠다.

"방청권요? 그냥 방청은 안 돼요. 의원실에서 방청권이 나가요. 어디서 오셨는데요?" 이런. 어디서 오시긴, 집에서 오셨지. 그런데 의원실? 일개 국민은 국회 대정부질문 좀 구경하면 안 된다는 건가? 쳇. 그래도 질 수 없다. "저…, 방청은 안 되나요?" "의원실만 하나씩 방청권이 나가거든요. 의원실의 요청이 있어야 해요." 윽. 이런. 의원실 요청? 국회의원 빽이 있어야만 된다는 거잖아? 으…, 누구야? 방청이 될 거라 말한 인간이?

할 수 없다. 나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 "알았습니다. 제가 알아볼게요." 아, 국회 들어가기가 이렇게 힘들구나. 처음 알았다. 국회를 와 봤어야 말이지. 그런데 누구야? 날 여기 오게 만든 게?

국민을 대신해 정부를 심사하는 자리, 국민은 방청할 수 없다?

발단은 박모 기자였다. 때는 며칠 전. 나는 그 날도 열심히 일하(는 척을 하)고 있었다. 그 때 전화기가 부르르 떨렸다. 정치부 소속의 무척 정(情)치스러운 인물인 박모기자였다. "국회에서 대정부 질문 있는데, 그거 한 번 볼래?" 헉, 국회? 그 민대머리 뚜껑이 달린 국회? 내가 아는 건 그 건물의 뚜껑이 안 열리며, 따라서 마징가 제트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뿐인데.

그런데 이게 뭔 일이냐? 저기 국회가 보였다. 대정부 질문 첫날이었다. 내가 국회에 들어와 본 첫날이기도 했다.

정문 앞에서의 "어떻게 오셨냐"는 질문을 통과하자 택시 기사가 웅장하고 또 웅장한 국회 건물을 가리키며 "저 앞에 세워주면 돼요?"라고 물었다. 입구쪽 계단 앞에 내렸다. 올려다 본 계단 앞엔 사람들이 입구를 막고 있었다. '쫄 거 없다.' 마음을 쓸어내리며 계단을 올라갔다.

입구를 막아선 남자가 나를 쳐다보더니 물었다. "어떻게 오셨어요?" "저…, 국회 대정부 질문 방청하려구요." "방청 힘들텐데…." "방청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이리로는 못 들어갑니다. 뒤로 돌아가면 면회실 있어요. 그 쪽으로 가세요."

나중에 알고보니 정문은 국회의원만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쪽문으로 다녔다. 쳇. 입구부터 사람차별 한번 진하게 하시네.

그런데 어떡한다? 쪽문에서 만난 '안내'는 절대 안내할 수 없다고 하고, 안내할 의원님 이름을 대라고 하고…. 물론 내가 알아보거나 나를 알아볼 국회의원이 있을 리가 없었다. 일단 돌아서서 생각하는 척 했다.

하지만 생각할수록 황당했다. 아니, 국회의원이 국민을 대신해 정부가 일을 잘하고 있는지 심사하는 차원에서 대정부질문인지 뭐시깽인지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일개 국민은 그걸 방청할 수 없다는 거야? 뭐야? 의원 빽 없는 국민은 안 된다는 거야? 맘 속에서 '치사하다'와 '더럽다'란 단어가 쌍으로 지나갔다. 할 수 없다. 빽을 동원하는 수밖에. 국민이 안 되니, 그나마 의원님들이 알아모시는 '기자'로 변신하는 수밖에.

정치부 기자한테 교육받은 대로 출입기자증을 받기로 했다. '안내'로 다시 걸어갔다. 아직 안 갔냐는 듯이 그가 쳐다봤다. "방문증을 끊으려고요." 신분증을 맡기고 겨우 방문증을 받았다. 방문증을 들고 방문한 공보실에서 겨우겨우 1일 출입기자증을 받았다.

우스웠다. 이게 그리 대단한 거란 말이지? '보도'라고 써있는 종이쪼가리는 볼 수록 우스웠다. 출입기자증을 앞 가슴팍에 달았다. 쫄아서 멍든 내 가슴팍 색깔처럼 시퍼랬다.

▲ 22일 오후 본회의장의 모습. 국회 대정부질문 첫날인데 국회는 텅텅 비었다. 다들 어디 가셨을까?
ⓒ 오마이뉴스 이종호
"본회의장 들어가는데 모자는 벗으시죠"

앗, 근데 어디로 가야하지? 문제가 해결된 줄 알았는데 웬걸? 일단 기자실인 170호로 가야하는데 이게 뭔가? 어디에도 안내판이 보이질 않았다. 거기다 길은 꼬불꼬불 미로 같았다. 1년에 한 번 쉬는 한숨이 다 나왔다. '아휴, 정말 들어가기 힘드네. 여기야말로 불친절 최고봉이네.'

드디어 대정부질문이 이뤄지는 국회 본회의장 방청석으로 들어갈 순간이다. 저기구나. 드디어 저 문만 통과하면 국회의원들을 볼 수 있겠네? 뉴스에서 보던 그 부채꼴 자리인가? 또 다시 검색대 사이를 통과했다.

그 때였다. 문 앞에 앉아있던 남자가 나를 불러 세웠다. "거, 모자 쓰시면 안돼요." 화들짝 놀란 내가 영문도 모르고 일단 모자를 벗었다. 그래도 나름대로 정장 분위기 나는 검정 중절모를 쓴 거였는데. 다시 지나가는데 그가 또 불렀다.

"잠깐만요. 거, 모자는 가방에 넣으셔야 해요." "네?" 내려다보니 모자가 한껏 부끄러운 자세로 내 손에 들려있었다. 뭐야? 손에 들어도 안 된다는 거야? 황망했지만 용기를 냈다. "들고 있어도 안돼요? 가방에 넣으면 찌그러지는데." 말은 세게 했지만 내 몸은 점점 오그라들었다.

남자는 황당하다는 듯이 말했다. "저 쪽에 가면 물품보관소가 있으니까 거기 맡기시던가요." 그가 가리키는 쪽은 꽤 멀어보였다. 나는 조용히 모자를 가방 속에 쑤셔 넣었다. 그냥 한 번 해본 소리지, 누가 안 넣는댔나?

나중에 만난 모기자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모자뿐인가요? '나시' 입어도 못 들어가요." 다른 모기자도 말했다. "한 카메라 기자가 절대 모자 안 벗겠다고 뻐팅긴 적이 있어요." "그래서 안 벗었어요?" "결국은 벗었죠. 모자 쓰곤 못 들어가니까요. 그런데 그가 모자를 벗자 다들 '헉' 했다니까요." 그는 극심한 대머리였다.

질문은 길고 설명은 길었다... 유세의 습관인가?

기자실인지 방청석인지로 찌그러져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숨이 턱 막혔다. 천장은 하늘을 찔렀지만, 묘하게 누르는 분위기도 하늘을 찔렀다. 신기했다. 꼭 성당 같았다. 저 멀리 국회의장님이 판사처럼 앉아계셨다. 그 앞에 부채꼴 모양으로 펼쳐진 의원님들 좌석이 보였다. 자리마다 각자 이름이 적힌 곳에 국회의원들이 주르륵 앉아있었다…고 말하고 싶지만, 실은 거의 안 계셨다. 빈 자리만 주르륵 보였다. 톡 하고 치면 '텅' 소리가 들릴 것 같았다.

의원님들 자리마다 놓인 명패와 모니터만 반짝반짝 빛났다. 그나마 계신 의원님들도 바빠 보였다. 둘 셋이 모여 뭔 이야기들을 나누시느라 바빴다. 혹시 오늘 점심 메뉴를 상의하시는 중이 아닐까? 궁금증이 오글오글 피어났다.

"존경하는 OOO 의원님 질의에 답변 드리겠습니다." 정부 측 인사가 말했다. 그리고 의원님이 말했다. "…모습에서 민족을 위해 몸 바친 김구선생과 장준하 선생의 모습이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10여분이 지나자 슬슬 하품이 밀려들었다. 질문을 기다리다 명짧고 졸음많은 나는 돌아가시고 숙면에 빠져들기 딱이었다. 나오신 의원님마다 질문보다는 설명인지 연설인지가 더 길었다. 선거 때 유세하던 습관이 남으셔서 그런가? 듣자니 하품은 석달 굶은 뱃속의 배고픔처럼 밀려오고, 눈꺼풀은 폭신폭신 카펫트가 깔린 땅바닥으로 마구 추락하려 들었다.

그 때다.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뭐지? 의원님들 앉으신 자리에서 이상한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왔다. "아하. 잘 했어." 이게 뭐지? 다른 의원님이 질문을 마친 뒤에도 또 들렸다. "어허. 잘 했어."

아하. 알았다. 감탄사 한 번. 그리고 "잘 했어" 한 번. 의원님이 마치면 여지없이 그 추임새가 흘러나왔다. 신기하고 웃겼다. 그러나 아무도 웃지 않았다. 나도 입을 틀어막았다.

▲ 대정부질문 와중에도 의원님들은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누셨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그날 국회에는 김구, 장준하, 링컨, 처칠까지 등장했다

윽, 미치겠다. 시간이 이거밖에 안 흘렀나? 내가 한 시간밖에 안 있었다고? 한 10시간은 앉은 기분이다. 내려다보니 의원님 한 분은 아예 의자 등받이에 머리를 젖히고 주무셨다. 부러웠다. 다행히 코고는 소리는 안 들렸다.

"존경하는 국회 의장 선배 동료 여러분…." 아. 또 시작하셨다. 참으로 거창하다. 그런데 신기했다. 의원님들은 어떻게 하나같이 책상 위에 아무것도 올려놓으신 게 없으실까? 종이도 펜도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두어 명 의원만 종종 볼펜으로 뭔가 적었다. 하지만 대개 하나 같이 맨손이다.

들으시는 족족 다 외우시나? 나와는 들어가는 입구도 다르고 사는 세계도 다르고 아이큐도 다른 분들이니, 그 깊고 명석한 세계를 이 참새가 어찌 알겠어? 머리나쁜 나는 열심히 받아 적었다. "말 정말 기네."

김구, 장준하에 이어서 아브라함 링컨, 윈스턴 처칠에 이솝우화까지 나왔다. 의원님들은 부지런히 다른 사람들이 한 말을 들먹였다. 의원님들이 이리도 위인전을 탐독하고 좋아하시는지 내 미처 몰랐다. 문득 선배 하나가 예전에 한 말이 떠올랐다. "인용을 좋아하는 사람은 자기가 인용하는 사람의 권위에 기대려는 거야. 그러니까 인용을 즐긴다는 것부터 권위주의적이란 걸 알려주는 거야."

의원님의 말씀은 계속됐다. "국민들께서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국민들의 시선이 따갑다는 건 아십니까?" 보는 국민은 하나도 모르겠는데 의원님들 말 속에서 '국민'은 툭하면 등장했다. 나는 국민이 아닌가? 왜 하나도 모르지? 아구. 국민 노릇 하기 힘들다. 정작 의원님들은 참석하지도 않는 대정부 질문 장면까지 보고 있어야 하고.

생각할수록 신기했다. 초등학교도 하는 출석 체크를 국회의원님들은 안 하는 게 분명했다. 이렇게 직장 생활하면 정말 할 만하겠다. 자신이 준비한 프레젠테이션에 자기가 참석 안 하는 직장인도 있나? 조금 알 거 같았다. 이래서 다들 국회의원 하시려고 목을 매는구나. 평소 전혀 안 입으시던 점퍼까지 입으시고 시장통까지 돌면서.

정말 알 수 없는 세계... "내가 다시 오나 봐라"

이래저래 싱겁게 대정부질문은 끝났다. 시계를 보니 6시가 넘었다. 채 50명도 안돼 보이는 의원들은 일어서서 악수를 나누고 미소를 나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데 정치부 모 기자가 말했다. "오늘 왜 이러냐? 재미없다. 다들 귀찮은 거야." 원래 이렇게 재미없는 게 아니었나? 다른 기자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다들 얼른 일 끝내고 지방선거 하러 내려가고 싶은 거겠지."

정말 알 수 없는 세계야. 나는 고개를 휘휘 저으며 가방 속에 찌그러져 처박힌 모자를 꺼내 썼다. 아무리 펴도 주름은 회복되지 않았다. 난 진저리를 치며 총총총 국회의사당을 빠져나왔다. 정문을 나서자 10년 묵은 답답함이 내려가는 듯 했다. 물도 벌컥벌컥 마셨다. 쳇. 국회에 다시 오나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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