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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문제는 술 탓이다?

정의화 한나라당 의원이 성추행 사건으로 물의를 빚은 같은당 최연희 전 사무총장을 옹호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정 의원은 "이순 나이에 과음한 게 문제"라며 "급성 알콜중독 증세"에 성추행 책임을 돌렸다.

과연 그럴까. 그러나 사회생활과 함께 필연적으로 술자리에 부닺치게 되는 여성들의 처지는 전혀 다르다. 2004년 막바지에 한 대기업에 취직한 ㅇ씨(여·28). 바늘구멍 통과하기 만큼 힘들다는 취업난을 뚫었지만 '직딩'이 됐다는 그의 자부심은 오래가지 않았다.

입사 이후 첫 회식자리. "여직원이 있어서 분위기가 화사하다"며 ㅇ씨를 반기던 일부 상사들은 "신입 사원이니까 사장님 옆에 앉아라"고 권유했다. '과연 남자 신입 사원이였다면 이 자리를 권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ㅇ씨는 자연스레 사장의 빈 잔을 채워주고 있었고, "열심히 하라"는 사장의 덕담도 편하지 않았다. 사장의 취기가 점점 오르면서 ㅇ씨의 불안감도 높아졌다. 상사들 사이에서는 전날 '찐한' 술자리에 대한 여운이 가시지 않아 "거기 아가씨들 괜찮더라"는 말이 오고갔다.

다행히 불미스러운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 이후부터 선배들과의 술자리가 개운치 않았다. 회식자리뿐만 아니라 거래처 사람들과의 술자리에서도 "젊은 여자들이 따르는 술이 더 맛있다"라는 농담에 기분이 나빴지만 '거래처 사람'이라는 생각에 혼자 꾹 참아야 했다.

ㅇ씨는 애초 회사에 들어가기 전 다른 직장에 대한 미련도 있었지만, 사내외에서 자신을 '꽃'으로만 보는 분위기가 참을 수 없어 입사한 지 1년만에 회사를 그만뒀다.

ㄱ씨(여·28) 또한 한 의류업체의 해외마케팅부에 들어갔다. 거래처 사람들과의 술자리가 많았지만, ㅇ씨 같은 술자리 불안감은 없었다. 되레 ㄱ씨는 남자 동료들 사이에서 '애물단지'였다.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ㄱ씨는 알아서 자리를 비켜야 한다. 남자 동료들과 거래처 사람들이 '찐한' 2차를 가야 하기 때문. 남자들이 원하는 2차란 여자 접대원이 나오는 술집을 뜻한다. 따라갔다가 다음날 "눈치 없는 여자"라는 소리를 들을지 모른다.

ㅇ씨(여·27)는 "또다른 세계를 경험해보라"는 남자 상사의 권유로 2차를 따라갔다. 여자 접대원이 나오는 자리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호기심에 따라나섰다.

결론부터 말해 ㅇ씨는 '다시는 그런 자리에 따라가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다. 비슷한 또래의 여성들이 짧은 치마를 입고 웃음을 파는 것을 보고 적지 않은 충격과 측은함, 수치심 등을 느꼈기 때문이다.

남자 상사들끼리 하는 술자리에서는 종종 '도우미(여자 접대원)'도 부른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회식자리 등이 내키지 않았다. 늦게까지 자리를 지키는 자신을 '도우미'로 보지는 않을지 괜한 고민도 했다.

여자들은 안정된 직장생활을 위해 기분나쁜 농담과 여자 접대원이 나오는 술자리 앞에서 쿨한 척 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말 안 통하는 페미니스트' 소리를 듣더라도 삐뚤어진 술자리 문화에 끊임없이 쓴소리를 해야 하는 것일까?

[내가 겪은 황당한 술자리] 여성 직장인 여러분, 여러분의 술자리는 안녕하십니까?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어나면서 남성 중심의 낡은 직장문화는 개선됐지만, 여전히 여자는 '사무실의 꽃'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혹시 여러분은 술자리에서 황당한 경험을 한 적은 없나요? 성적 수치심을 느낄 만한 사건이 일어났지만 '직장 상사'라는 이유로 침묵해야 했나요? 혹은 문제를 제기했다가 성추행보다 더 큰 치명타를 맞으셨나요? 댓글을 통해 여러분의 경험을 들려주세요.


“술 먹고 실수, 그렇게 큰일인가?”
‘최연희 성추행’ 보는 남성의 눈... 당신은?

“한 사람의 명예가 이렇게 추락할 줄은 몰랐다. 그 사람의 가족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이 되리라 본다. 술 먹고 실수하는 일이 그렇게 큰일인가? 여자는 남자, 남자는 여자, 서로 필요로 하는 인생 아닌가?”(네이버 댓글, ID k4791212)

최 전 총장의 ‘성추행’에 대한 비난 여론이 너무 큰 탓에 27일 밤늦게까지 그를 옹호하는 목소리가 공식적으로 나온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익명의 글 뒤에 숨은 일부 네티즌의 반응은 조금 다릅니다.

“술 마시고 실수 안한 사람 있으면 나와 봐!”

ID ‘dongnyug’이라는 네티즌은 <오마이뉴스> 댓글에서 최 전 총장을 비난하는 네티즌을 향해 “술 마시고 실수 안한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반박했습니다. 그는 “유명인들, 특히 정치인들은 기자들만 보면 좋은 말만 해주고 싶고 손도 한번씩 잡으면서 좋은 기사 써 달라고 하면서 스키십도 하고 싶고 그러는 것인데 최 의원이 술에 취해 약간 지나쳤나 보다”며 “잘못을 시인하고 하루 종일 단체(한나라당)로 반성했으니 이제 그만 하자”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반응에서 보듯 술에 관대한 한국 사회에는 술 먹은 실수를 지적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사회 부적응자’로 낙인찍히기 쉽습니다. 특히 술자리에서의 ‘남성-여성’ 역학관계는 몇십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다지 변한게 없는 듯합니다. 최 전 의원을 옹호하는 논리는 “술자리가 그렇고 그런 자리 아니냐”는 것입니다. 오히려 ‘술 취하는 자리’에 늦게까지 남아 있는 여성이 있다면 의심스런 눈길을 보냅니다. 술자리 추태를 문제 삼는 여성에게는 “그럴 줄 알면서 왜 남았느냐”고 비난하기 일쑵니다.

“술 마시다 보면 욕도 나오고 하는 거지…. 이년 저년이 욕인가? 술집 하려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하는 것 아냐? 막말로 성매매도 자기가 돈이 필요하니까 하는 거지.”

지난해 9월 23일 ‘대구 국감 술자리 추태’ 사건 이후 한 지인으로부터 들었던 반응입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남성들이야 술자리에 가면 으레 여성들과 동석하기 원하고, 잔도 부딪히고, 이야기도 나누고 싶어합니다. 더 깊어지면 손도 잡고 부둥켜안고도 싶어지지요.

남자들이란게 다 그렇습니다. 최 전 총장의 실수를 이해해야 한다는 동정론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오죽했으면 지난 시대 재벌 한 사람은 후배를 향해 “이 사람아, 남자가 술자리 뒤에 허리 아랫도리 얘기는 하는 게 아니야”하고 점잖게 이야기를 했다지 않습니까?

이쯤 되니까 슬슬 헷갈립니다. 최 전 총장이 그렇게 잘못 했을까요? 본인 얘기로는 술집 여주인인 줄 알았다지 않습니까? 남성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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