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실크로드의 하나의 종착역이었던 그랜드 바자르(현지 이름 : 카팔르차르식)는 지붕을 씌운 옥내 시장이었다. 우리로 치면 대형 재래시장에 해당한다. 원 건물은 비잔틴 제국 때 지은 것인데 이스탄불이 오스만 튀르크 제국의 수도가 되면서 번성하여 오랫동안 동서양의 물건이 만나는 장소가 되었다.

▲ 그랜드 바자르 풍경
ⓒ 이태욱
터키는 지진이 많은 나라이다. 그랜드 바자르는 12번의 강한 지진과 9번의 대화제로 소실되었다가 복구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옛날의 분위기는 없어졌다고 하지만 터키에 온 관광객이라면 누구나 들리는 곳이라 우리도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저녁이 다 되어갈 무렵에 들어가니 조금 있으니 벌써 파장분위기가 보인다. 곳곳에서 벌써 상점 문을 닫기 시작한다. 그래도 무척 화려하고 활기차다. 여기에는 4천여 개에 이르는 상점들이 가로 세로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파는 물건은 보석, 의류, 도자기, 카펫, 은제품 등이 주 종목이지만 그 외에도 없는 것이 없고 일부 골동품이나 세공품들은 예술작품을 방불케 한다.

시장에 들어가는 입구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누루오스마니예 문과 베야즈트 문인데 누루오스마니예 문 입구 위에는 의장용 무기와 책, 깃발이 새겨져있다. 그리고 베야즈트 입구 문 위에 '신은 상인들을 사랑한다'는 글과 술탄 압듈하미트의 인장이 새겨져 있는 걸 보면 국가가 무엇을 소중히 하였고 얼마만큼 상업을 보호하고 장려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런 정책 덕분으로 실크로드의 보존이 가능했던 것이다.

구경을 하려면 중심 길을 따라 똑바로 들어갔다가 똑바로 되돌아 나와야 한다. 필요하다면 중앙 길을 중심으로 샛길로 들어갔다가 다시 중앙 길로 되돌아오고, 다시 샛길로 들어갔다가 다시 중앙 길로 되돌아오고 해야지, 지그재그로 한번이라도 움직였다면 일행을 찾는데 무척 고생을 각오해야 한다. 문이 27개라나?

나는 내 용돈 들어 선물을 사가도 집에서 칭찬보다는 도리어 핀잔을 많이 듣기에 여행 갔을 때 물건을 아니 사가는 걸 원칙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도자기 종류가 너무 예뻐서 뜨거운 물건 받침대를 비롯하여 값싼 것 몇 개 사갔더니만 이번에는 칭찬을 받았다. 작은 실크로드 무역이 이번엔 성공한 셈이다. 여기선 물건을 살 땐 충분히 흥정을 해도 된다.

▲ 화려한 기념품들
ⓒ 이태욱
실크로드는 중앙아시아를 횡단하는 고대의 동서교통로이다. 이 길을 통해서 고대 중국의 특산품인 비단이 운반되었기 때문에 붙여졌다. 공식적으로는 한나라 무제 때 장건이 개척한 걸로 되어있다. 이 길을 좁게 생각하면 서쪽의 기착지는 사마르칸트, 동쪽은 서안으로 치지만 확대 해석하면 동쪽으로는 대도(현재의 베이징) 서쪽으로는 이스탄불, 로마, 알렉산드리아까지 넣는다.

이 길을 따라 동쪽에서는 서쪽으로 비단이, 반대로는 옥이나 보석, 유리 제품이 운반되었다.
또한 중국의 주철기술, 제지법 등이 서양에 전해졌고, 서양의 포도, 석류, 호두, 참깨, 오이 등과 인도의 불교, 조로아스터교를 비롯한 많은 종교도 이 길을 따라 들어왔다.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이 길의 무역이 활발할 때에는 물품이 6개월이면 우리나라까지 전달되었단다.

지난 여름 실크로드 동쪽 출발지인 서안에 갈 기회가 있었다. 서역을 왕래한 현장법사가 머물었던 대안탑을 보면서 언젠가는 나도 여기서 출발하여 실크로드를 한번 여행해 보아야지 하는 생각이 간절하였는데 그 반대편에 서있다는 게 신기할 뿐이다.

▲ 서안의 진시황릉 앞에서 동료들과 함께
ⓒ 이태욱
여행은 중독성을 가지고 있다 한다. 한번 간 사람이 또 간다. 하지만 주위의 한 사람이 "외국어 잘 하면 외국가는 줄 알고 열심히 공부하였더니 외국어가 중요한 게 아니고 돈이 중요하더라"는 우스개 소리를 말한 적이 있다. 인생이란 이렇게 복잡한 것이다. 그렇지만 언젠가 다시 한번 실크로드의 탐방을 해보리라 생각해 본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