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왜 힘없는 새들은 이렇게 무리지어 날까요?
왜 힘없는 새들은 이렇게 무리지어 날까요? ⓒ sigoli 고향
저도연육교 근처에서 겨울꽃 동백을 만났다. 내게도 등대가 있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서성였다. 이동하자는 말에 우린 바다를 떠났다. 기막힌 '섬섬玉섬'이 있다기에 이야깃거리를 다른 데로 돌렸다.

"전남 신안은 흑산도와 홍도를 제외한 대부분의 섬이 곧 연도교(連島橋)로 이어진답니다. 도초나 비금에 차를 두고 배를 타면 쉽게 흑산도까지 갈 수 있다네요."
"아, 그래요. 원체 멀기도 하고 물결이 장난이 아니어서 뒤로 미루고 있었어요. 김정수 선생도 울릉도 가는 기회를 놓쳐 아쉽겠네."
"같이 한번 가시죠."
"잠깐, 여기 좀 들렀다 갑시다."

마산 쪽으로 향하다가 의창군이라는 지명이 없어진 것에 대해 몇 마디 나누고 우린 곧 조그마한 미술관 앞에서 내렸다. 석강 윤환수 선생이 사재를 털어 운영하는 <구복예술촌미술관>이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촌장께서 우리를 다실로 안내했다. 손님이 왔다고 장작난로에 불을 붙인다. 차 한 잔 놓고 정담이 이어졌다.

"'난 다방커피!' 했더니 글쎄 진짜 다방에다 커피를 주문하더라니까요."
"그럼, 오늘도 다방커피."
"하하하."

동백이 한껏 물이 올라 망울이 터지고 있었습니다. 이젠 거의 활짝 피었겠네요.
동백이 한껏 물이 올라 망울이 터지고 있었습니다. 이젠 거의 활짝 피었겠네요. ⓒ sigoli 고향
석강선생도 스스로 촌장이라 부르고 있었다. 관장이 아닌 촌장이 더 어울린다. 뭔지 모를 연륜을 잔뜩 머금고 있다. 티 내지 않고 사는 모습이 세인들의 판에 박힌 일상과 다르다. 오늘 두 촌장이 만났지만 "저도 촌장을 씁니다"는 말밖에 드리지 못하고 그의 예술세계에 대한 명강의를 신입생처럼 말똥말똥 듣고 있었다.

한 때는 외톨이가 되다시피 서각(書刻)은 외면받았고 여전히 선생의 뜻을 이해하는 사람은 드물단다. 명문이나 명필을 받아 모사(模寫)하듯 복제해내는 것 외엔 이단으로 취급하니 예술발전은 더딘 거다.

어느 계통이나 마찬가지듯 주류에서 조금이라도 엇나간 선구자는 늘 이토록 외롭다. 비아냥거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새 줄기를 만드는 사람이 깨어 있는 사람이고 그게 곧 예술 아닌가.

타개한 백남준 선생이나 한국계 미식축구 선수 하인즈 워드가 마침 우리를 깨웠다. 백남준 선생이 피아노를 고국 코리아에서 부수지 않았던 이유를 우리는 안다. 워드 선수 어머니가 모국을 떠나 아직 돌아오지 않았음에 오늘 성공한 아들 자랑스러운 워드가 있다.

미술관으로 들어가 찬찬히 뜯어보았지만 그의 작품은 하나같이 난해하다. 그보다 난 벌써 한참이나 봄으로 달려간 화단의 국화와 봄동, 처음 본 듯한 종류의 냉이에 관심이 쏠렸다. 석강 선생은 아직도 쌀쌀한 날씨에 집을 짓고 있었는데 만들어지는 족족 기부채납하고 만다니 나는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자신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석강 윤환수 촌장처럼 살 수 있을까?
석강 윤환수 촌장처럼 살 수 있을까? ⓒ sigoli 고향
점심을 거른 채 우린 자리를 박찼다. 을숙도는 이제 갈대만 무성할 뿐 새와는 아무 연관이 없는 곳이란다. 새벽에 갔더라면 저수지에서 밤새 정박해 있다가 주변 보리밭을 향해 힘찬 날갯짓을 하는 무수한 철새를 만날 수 있었지만 우린 긴 밤을 노니느라 아침 자체를 뒤늦게 시작한 터였다.

고속도로로 접어들어 주남저수지를 향해 내달렸다. 동읍(東邑)을 지나자 곳곳에 늪이 펼쳐져 있다. 저수지에 조금 못 미처 아파트단지가 들어서 있다. 새들이 저수지로 날아들면서 밤에 직하강을 하다 보면 머리가 부딪혀 죽고 만다고 한다.

700년이 넘는 '신방리음나무군락' 앞에서 잠시 쉬었다. 수령도 대단하거니와 구불구불 제멋대로지만 세상에 가장 뛰어난 조각가가 구부려도 이런 작품이 나올까 싶게 기묘한 형상이다.

가평 유명산휴양림 계곡에 몇 백 그루가 되는 군락지보다 더 위엄이 있다. 주변에 3, 40년 된 어린나무가 없었더라면 이게 엄나무일까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오랜 세월을 버티고 있다. 고려 중기 때부터 버틸 수 있는 힘은 과연 어디서 나오는 걸까?

700년 된 '신방이음나무 군락'을 찍었는데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
700년 된 '신방이음나무 군락'을 찍었는데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 ⓒ sigoli 고향
감개무량한 군무(群舞)를 처음 대면한다는 마음에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수 천 수 만 마리가 한꺼번에 날아오르리라는 상상을 하며 잔뜩 기대를 안고 우린 곧 주남저수지에 도착했다. 어림잡아 규모가 창녕 우포늪보다 2배가 넘는다.

저수지라기보다 주변에 있는 흙이 쌓이고 쌓여 얕은 깊이지만 넓기는 웬만한 댐을 방불케 한다. 범람이 잦자 일제 때 흙을 다져 만들었으나 평야지대여서 특별히 높지는 않고 포근히 죽지를 쭉 편 상태로 있다.

벌써 사람들이 둑에서 진을 치고 있다. 서서히 서쪽 하늘이 붉어지고 흐릿한 물 위로 노을이 내려앉아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일요일이어서일까? 사람이 많아서일까? 물오리와 가창오리 날갯짓만 간혹 있을 뿐 자맥질도 어쩌다 한번이고 하염없이 늙은 오후를 끌어가고 있다.

행여 디지털카메라에 잡힐까 가장 가까이 가서 줌으로 끌어당겨 보지만 기계보다 신세를 한탄할 수밖에 없다. 주변은 보리밭이다. 새 먹으라고 시에서 지주에게 보리를 심으라고 한단다. 씨만 뿌릴 뿐 아무 수고 들이지 않고 여름 농사에 겨울 농사까지 현금으로 거둬들이니 역시 도시나 농촌이나 땅이 있고 볼 일이다.

저수지는 빈 듯 별다른 새가 보이지 않았다. 이제나저제나 해가 뉘엿뉘엿 낮은 산으로 숨기 전에 훨훨 날아서 오길 기다렸다.

"한번 저쪽에서 넘어오기 시작하면 서로 무슨 말인지 모른답니다."
"정말 그래요?"
"아무 소리도 안 들린다카네."

주남저수지에 내려앉으려는 노을입니다. 아침 뜨는 해보다 지는 해가 늘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주남저수지에 내려앉으려는 노을입니다. 아침 뜨는 해보다 지는 해가 늘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 sigoli 고향
믿기로 했다. 날이 저물면 올 테지. 서서히 작은 무리가 저수지를 향해 300여 미터 상공을 비행하다가 뚝방 200여 미터에 다다라 고개를 쭉 빼고 급전직하 착륙을 시도한다.

그때 둑을 거닐던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가씨 일행 세 명 중 한 명이 주위 사람이 모두 듣도록 파문을 일으키는 질문을 던졌다.

"니, 왜 새들은 저렇게 V자로 나는지 아나?"
"앞에 지나가는 새똥 안 맞을라고…."

압권이다. 그래, 맞는 말 같다. 똥 맞지 않으려고 학(鶴)이 날개(翼)를 쭉 편 듯 대형을 갖춰 나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상대가 기분 나쁘지 않게 피식 거리고 있으니까 귀염둥이 아가씨가 가던 길을 돌려 다가왔다.

"아저씨~이 진짜 안 그래요?"
"그럴 수도 있겠지요. 참 대단한 발상입니다."
"재미도 있고요."
"엉? 아닌가? 그럼 전봇대나 전깃줄에서는 왜 싸요? 위에 있잖아요."
"허허, 높이 날면서 똥 싸는 새 봤어요? 거의 다 내려와서 싸는 겁니다. 저들이 저리 집단을 이뤄 나는 건 독수리나 맹금류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큰 새로 위장을 하는 거예요. 그래야, 안 잡혀 먹거든요."
"그래요? 고맙십니더."

저수지가에 그림자를 드리운 버드나무 한쌍
저수지가에 그림자를 드리운 버드나무 한쌍 ⓒ sigoli 고향
긁적거리는 모양이 더 귀여웠다. 학생인 듯했지만 틀렸다고 전혀 무식해 보이지 않았다. 외려 며칠만 더 머무를 것이지 우리가 오기 전에 벌써 북으로, 시베리아로 떠나간 새들을 보러 온 우리를 위로하려는 연출된 말로 여겨졌다.

"아이고 6시가 됐는데도 소식이 없네요. 근처에 가서 막걸리 걸치고 옵시다."
"그럽시다. 이상하네. 서울서 손님 온다고 미리 피해뿌렀나?"

머뭇거리다가 주막을 향해 걷고 있었다.

"저, 저기!"
"온다 와."

모두 황급히 둑 위로 올라섰다.

"끼룩끼룩"

이렇듯 간간이 몰려오니 갈증이 났답니다.
이렇듯 간간이 몰려오니 갈증이 났답니다. ⓒ sigoli 고향
마치 지구를 끌어당기듯 새떼가 움쑥움쑥 다가왔다. 뒤이어 서너 무리가 뒤따른다.

"이제 들어오는 시간인가 봅니다."
"새까맣게 일시에 들어온다니까요."

하지만, 기대가 커서인지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더는 먹구름처럼 몰려오지는 않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작은 무리가 둥지를 찾아들 뿐이었다. 이미 컴컴한 밤이 되어 밤의 요정 새들의 쉼터 호수에 머물러야 사진이 잘 잡히지 않는다. 아쉬움에 주막으로 가서 추위를 녹였다.

서울에 올라와 어린이집 다니는 아이들에게 물었더니 "아빠 그것도 몰라. 밟히지 않으려고 그러는 거지." 어느 장단에 맞춰 내 눈높이를 조정해야 할지 난감하기만 하다. 그나저나 왜 그리 일찍들 되돌아가 나그네 심사 헤아리지 못하느뇨?

가장 가까이서 잡은 가창오리 몇 마리입니다. 이럴 땐 돈을 좀 벌어 좋은 사진 올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합니다.
가장 가까이서 잡은 가창오리 몇 마리입니다. 이럴 땐 돈을 좀 벌어 좋은 사진 올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합니다. ⓒ sigoli 고향

덧붙이는 글 | 김규환 기자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시민과 현재 농촌을 지키고 있는 분들과 함께 고향신문 시골아이 고향(www.sigoli.com)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틀간이나 함께 놀아주고 안내해주신 이종찬, 김정수 기자님 고압습니다. 이 기사는 U포터에도 송고합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이 기자의 최신기사역시, 가을엔 추어탕이지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