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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부터 매화는 사군자의 으뜸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은 꽃이다.
예부터 매화는 사군자의 으뜸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은 꽃이다. ⓒ 서종규

새 생명의 탄생을 알리는 떨림의 순간입니다.
새 생명의 탄생을 알리는 떨림의 순간입니다. ⓒ 서종규
합격을 하면 할아버지께 한국화를 배운다고 약속을 했었지. 너와의 약속으로 만면에 웃음이 가득하시던 할아버지께서 수술을 하셔서 뜻을 이루지 못했구나. 딸아, 이제 새로운 세계인 대학에 입학하게 되는구나.

수술을 마치고 치료가 순조로워 통원치료를 하시는 할아버지를 병원에 모시고 다녀왔다. 의사 선생님께서 할아버지의 건강이 많이 회복되셨다고 걱정 말라신다.

깨끗한 꽃으로 세상을 깨끗하게 만들고, 아름다운 꽃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
깨끗한 꽃으로 세상을 깨끗하게 만들고, 아름다운 꽃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 ⓒ 서종규
어제(2월 25일), 할아버지댁에서 나오는데, 아파트 정원에 붉은 홍매화가 벌어지기 시작하더구나. 아파트만 하늘 높이 솟아 있는 도심 한복판에 피어나는 홍매화, 엊그제 지리산 능선엔 몇 십 센티미터씩 눈이 쌓여 있어서 아직도 캄캄한 겨울인 줄 알았는데, 봄은 가장 가까운 아파트 정원에서 시작되는구나.

아뿔사, 봄의 전령인 매화가 벙그는데 사진기가 없어서 그냥 바라만 보아야 하다니. 그 오롯한 꽃잎이 하나하나 벙글기 시작하는데, 아직은 꽃보다 꽃망울이 더 많은 매화나무에 눈을 뗄 수가 없더구나. 그래서 오늘 다시 사진기를 들고 할아버지댁을 방문했단다.

아직은 꽃보다 꽃망울이 더 많은 매화나무에 눈을 뗄 수가 없더구나.
아직은 꽃보다 꽃망울이 더 많은 매화나무에 눈을 뗄 수가 없더구나. ⓒ 서종규
예부터 매화는 4군자의 으뜸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은 꽃이란다. 겨울의 그 매서운 추위를 이기고 이른 봄에 제일 먼저 꽃을 피워 세상에 봄이 왔음을 알리는 꽃, 이러한 매화를 보고 어떤 사람은 광야에서 외치는 선구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고 말하기도 한단다.

깡마른 체구를 지녔지만 야물어 보이는 사람처럼 오랜 풍상을 겪은 매화나무의 줄기나 가지들은 메말라 보이지만, 그토록 싱그러운 꽃을 피워내는 것을 보면, 그 강인함이 뼈 속에까지 파고드는 것 같단다.

겨울의 그 매서운 추위를 이기고 이른 봄에 제일 먼저 꽃을 피워 세상에 봄이 왔음을 알리는 꽃
겨울의 그 매서운 추위를 이기고 이른 봄에 제일 먼저 꽃을 피워 세상에 봄이 왔음을 알리는 꽃 ⓒ 서종규
마른 나무에 핀 작은 매화꽃 한 송이, 비로소 봄을 알리는 전령이 된단다. 꽃으로 봄이 왔음을 세상에 알리고, 은은한 향기로 세상을 일깨워낸단다. 가끔은 꽃이 피고 난 후에 눈이 내리기도 하는데, 그 눈 속에서도 꿋꿋함을 잃지 않는 매화가 어찌 사랑스럽지 않겠니?

매서운 겨울을 지내면서 봄을 기다리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찬바람이 쌩쌩 불고, 하얀 눈이 내리는 겨울의 끝을 이기고, 세상에 봄을 전하는 매화는 바로 모진 고난을 이겨낸 선구자의 모습이란다.

오랜 풍상을 겪은 매화나무의 줄기나 가지들은 메말라 보이지만, 그토록 싱그러운 꽃를 피워내다니
오랜 풍상을 겪은 매화나무의 줄기나 가지들은 메말라 보이지만, 그토록 싱그러운 꽃를 피워내다니 ⓒ 서종규
매화도 남고, 청죽, 고성, 소매, 앵숙, 백가하, 개량내전 등 품종이 70여종으로 나뉜단다. 하지만 보통 청매화, 백매화, 홍매화 등으로 불리는데, 그 중에서도 청매화는 하얗다 못하여 푸르스름한 색상을 띠어 깨끗하면서도 차가운 선비의 맛이 나고, 백매화는 하얗지만 약간 붉은 기운이 들어가 청매화보다는 더 따뜻하게 다가온단다.

매화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이 홍매화란다. 옛날의 선비들은 화려한 색상보다는 깨끗한 청매화를 좋아했지만, 사실 홍매화의 아름다움은 보는 사람들의 정신을 홀리기에 안성맞춤이란다. 홍매화 한 송이라도 보고 있으면 그 붉은 기운이 내 옷깃에 번지는 것을 느낀단다.

아파트만 하늘 높이 솟은 도심 한복판에 피어나는 홍매화 한 그루
아파트만 하늘 높이 솟은 도심 한복판에 피어나는 홍매화 한 그루 ⓒ 서종규
사랑하는 딸이 대학에 입학하게 되니 반갑기 그지없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시집보내는 것처럼 허전한 마음이 가득하구나. 부모의 품을 떠나보내는 마음이 이럴까. 고향을 떠나 타향으로 대학을 진학하여 떠나는 네가 대견스럽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하고.

사랑하는 딸아. 이제 부모의 품을 떠나 훨훨 날갯짓을 하거라. 그리고 그 푸른 창공으로 날아 오르거라. 대학입시라는 매서운 한파도 다 이겨낸 자랑스러운 기질을 끝까지 지켜내어 추운 계절에 꿋꿋하게 피어나는 매화가 되거라.

먼 타향에서 꽃을 보면서 자신을 채찍질하고 늘 깨어 있으며, 나무를 보면서 하늘을 향하여 자신을 키워가거라. 풀을 보면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이해하고 협력하며, 바위를 보면서 자신의 중심을 잡고 세상으로 나아가거라.

이러한 매화를 보고 어떤 사람은 광야에서 외치는 선구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고 말하기도 한단다.
이러한 매화를 보고 어떤 사람은 광야에서 외치는 선구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고 말하기도 한단다. ⓒ 서종규

향기로운 꽃으로 세상에 향기를 내뿜어 많은 사람들의 혼을 씻어 주는 사람이 되거라.
향기로운 꽃으로 세상에 향기를 내뿜어 많은 사람들의 혼을 씻어 주는 사람이 되거라. ⓒ 서종규
갖은 풍상이라도 다 이겨내는 듬직한 줄기가 되고, 시린 계절을 밀어 올리는 매화꽃이 되거라. 깨끗한 꽃으로 세상을 깨끗하게 만들고, 아름다운 꽃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 향기로운 꽃으로 세상에 향기를 내뿜어 많은 사람들의 혼을 씻어 주는 사람이 되거라.

매화가 피어나는 봄날에 새로운 세계를 향하여 첫걸음을 내딛는 너의 대학 입학을 축하하며, 이제, 아빠가 보내는 편지는 열 장의 홍매화 사진으로 마감한다.

매화를 보면서 자신을 채찍하고 늘 깨어 있어라.
매화를 보면서 자신을 채찍하고 늘 깨어 있어라. ⓒ 서종규

덧붙이는 글 |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 아남아파트 정원에서 2월 26일(일)에 찍은 홍매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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