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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내가 간절히 원하던 바다 우유, 굴과 맛을 더하는 바다 물빛.
진짜 내가 간절히 원하던 바다 우유, 굴과 맛을 더하는 바다 물빛. ⓒ sigoli 고향
아귀찜과 복국이 있는 마산에서 하룻밤

지지리도 못난 폭설 때문에 내 고향은 무척이나 힘들게 지난겨울을 보냈다. 추워서 참 싫어하는 계절이 겨울이지만 막상 간다 하니 아쉽다. 아쉬워서라기보다 드러내놓고 눈을 즐기지 못해 겨울 끝자락을 붙들고 싶어 마산엘 갔다.

은하라는 소녀가 그리워 찾았고 전세중씨가 운영하는 '책사랑도서관'이 있어 몇 번 방문했던 곳이다. 저만치 봄소식이 밀려왔으면 조금이라도 느껴줌도 좋지 않겠는가? 먼 길 떠나 한일합섬이 있는 낯익은 풍경에서 낯선 사람을 여럿이서 기다리고 있다.

차를 직접 몰았기에 막걸리로 시작하여 맥주 좀 마시고 노래방 코스로 이어진 시각이 새벽 3시였다. 철새를 보는 시각을 놓쳐 아쉬웠지만 마산 명물 중 하나인 아귀찜은 저녁에 먹었는지라 시큼한 복국을 먹고 길을 나섰다.

길 떠나면 아무리 풍족해도 미련이 남는다. 부탁하러 간 우리에게 사람들은 뭔가를 자꾸 안겨주고 싶은 마음이 얼굴에 역력했다. 하룻밤이면 사랑탑도 쌓을 시간이지만 일정을 소개하는 것으로 보아 이틀은 족히 잡아야 할 성싶다.

이 다리를 연인이 함께 걸으면 사랑이 이뤄진다네요. 누군 같이 가기로 한 날에 헤어져서 두번이나 미루어야했답니다.
이 다리를 연인이 함께 걸으면 사랑이 이뤄진다네요. 누군 같이 가기로 한 날에 헤어져서 두번이나 미루어야했답니다. ⓒ sigoli 고향
'콰이강의 다리'에서 사랑을 추억하다

창원과 경계인 일명 '콰이강의 다리' 저도연육교로 갔다. 새 다리가 놓인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나란히 옆에 오래된 좁고 긴 현수교가 사람만 지나도록 개통 20년도 안 되어 통제에 들어가 있다.

나는 그 순간 바다 위에 있었다. 연인들은 사랑을 이루고 오래 이어가기 위해 그 자리에서 바짝 밀착되어 걷고 있다. 때마침 꽤 괜찮은 그림이 있었지만 멀리서 온 내겐 별 흥미를 끌지 못했다.

총각이라면 하루쯤 아무나 지나는 여인을 기다렸다가 걸어볼 일이지만 이제 사랑은 내게서 저 멀리 떠나 가버린 과거지사 아니던가. 사랑노래를 다시 부를 수 없음에 씁쓸한 마음으로 폭 3m, 길이 170m를 지나치는 수밖에 없었다.

이제 이곳을 떠나면 당분간은 오지 못한다. 사랑을 구하지 못한 왜가리가 되어 어디선가 외로이 하루하루를 연명할지 모른다. 아쉬웠다. 씁쓸하고 쓸쓸한데 해풍마저 심하게 불어댄다. 남들이 가는 쪽을 뒤따르니 곧 바다로 이어지는 방치된 식당 한 채가 들어왔다.

바다를 처음 본 남해대교 앞에서 옷에 하얀 소금기가 저는 줄도 모르고 손을 담그고 물을 퍼서 마셨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때마침 해변엔 약간 물이 빠져 있었다. 시멘트벽을 타고 밑으로 내려갔다.

20여 미터 위에서 내려다 본 바닷가에 굴이 자르르 깔려있어 발길을 그리 옮겼습니다. 이제 거의 마지막이겠군요. 꽃샘추위가 아직 남아있을까요?
20여 미터 위에서 내려다 본 바닷가에 굴이 자르르 깔려있어 발길을 그리 옮겼습니다. 이제 거의 마지막이겠군요. 꽃샘추위가 아직 남아있을까요? ⓒ sigoli 고향
물 빠진 바다에서 덩그마니 놓여있는 자연굴을 만나는 상상

일행 셋은 뿔뿔이 흩어져 내려올 줄 모른다. '그래! 술이라도 깨게 혼자 있지 뭐.' 설마 서울에서 온 나를 버리고 가지는 않을 거라는 확신에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뭔가 쫙 깔려있는데 '야, 정말 많다. 정말 들어 있을까? 지금은 먹어도 괜찮을 시기인데 한번 따먹어봐?'

간간하고 부드러운 굴이었다. 너른 바다에서 신발이 젖는 줄도 모르고 허겁지겁 밀어 넣던 내 추억 속에서 멀어져간 굴이다. 초고추장이 없어도 싱겁지도 않고 짜지도 않은 자연의 맛, 굴 말이다. 그 뒤 난 물 빠진 바다를 위해 반드시 소주 한 병을 주머니 속에 챙겨 가리라 다짐 또 다짐했었다.

이젠 서해에 가도 웬만해선 바다로 들어가 굴을 탐하지 못한다. 주인이 말린다고 그러는 게 아니다. 내 실력의 밑바탕은 슬며시 그들에게 다가가서 굴 서너 개만 따먹자고 꼬드기지 못하는 재주가 아니잖은가. 그보다 내 구미가 여간해선 당기지 않은 진짜 이유는 서식환경을 신뢰하지 못함이다.

겨울이 올 무렵이거나 겨울이 떠나가기 전에 꼭 한번은 남해 어디에 들러 그냥 덩그마니 놓여있는 굴 조각을 주워 목을 축여보고 싶었다. 바로 오늘이 그날이 되련가? 위에서 같이 간 한 사람이 분명 내 사진을 찍었으니 곧 내려오련만 감감무소식이다.

처음엔 멀뚱멀뚱 쳐다보던 아저씨들도 아이와 아내 성화에 물을 묻히더군요. 이소리 시인이 굴을 따고 작가 김정수 님이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맛객님은 따로 많이 따서 모으고 있을 겁니다.
처음엔 멀뚱멀뚱 쳐다보던 아저씨들도 아이와 아내 성화에 물을 묻히더군요. 이소리 시인이 굴을 따고 작가 김정수 님이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맛객님은 따로 많이 따서 모으고 있을 겁니다. ⓒ sigoli 고향
하얀 속살이 웃고 있는 굴을 돌로 찍어대자...

이 감개무량한 현장에 홀로 내버려둔 그들이 미웠다. 젖은 손은 물에 담근 채 한 손으로 전화를 걸었다.

"밑으로 좀 내려와 보세요."
"뭐 좋은 게 있나요?"
"와보시면 압니다."

내겐 갈고리가 없다. 빨치산 동네에서 살았던 놈이 이걸 탓해서 뭐하랴. 돌을 주워 개중에서 가장 큰 걸 골라 살살 후려쳤다. 이렇게 추억은 만들어가는 것이다.

"팍! 팍!"

굴 껍데기 속에서 하얀 속살이 부드럽게 웃고 있다. 통째 바닷물에 담가 부서진 껍데기를 버리고 한 입 '쏘옥~'.

초고추장 없이 천연의 김과 굴을 놓고 소주 한잔 마시면 식당에서 먹는 맛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초고추장 없이 천연의 김과 굴을 놓고 소주 한잔 마시면 식당에서 먹는 맛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 sigoli 고향
'그래 이 맛이야!' 몇 년째 이것 한번 먹어보려고 지독한 겨우살이를 했다. 이처럼 행복한 장면을 어느 누구도 본 사람이 없었다. 즐거운 비명이 내 입에서 귀로 전달되었다.

욕심이 한껏 올라 몇 개를 주워 물 빠진 바위에 올려놓고 작업에 들어갔다. 이러다가 손에서 피가 날지도 모른다. 쏠쏠한 재미에 폭 빠져있는 동안 일행이 위에서 내려온다.

"뭐예요?"

까서 입에 넣으려다 말고 내려오려던 사람에게 보여드렸다.

"아이구, 어디 계시나 했어요."
"아까 저를 찍으시기에 곧 내려오실 줄 알았어요."
"안주는 여기 충분히 깔려있거든요."
"쏘주 한 병 사올까예?"
"좋습니다."

이미 열 두어 명은 내려오고 사람들이 위에서 내려갈까 말까 잔뜩 마음을 웅크리고 있습니다. 조금 지나자 뭔가 횡재라도 할듯 다 내려와 발 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이미 열 두어 명은 내려오고 사람들이 위에서 내려갈까 말까 잔뜩 마음을 웅크리고 있습니다. 조금 지나자 뭔가 횡재라도 할듯 다 내려와 발 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 sigoli 고향
난데없는 굴 잔치에 서른 명이 합세하다

오랜만에 자연으로 돌아온 나와 맛객, 김정수 여행작가까지 셋이다. 이소리 시인은 발길을 돌려 부랴부랴 오르더니 얼마 안 되어 진짜 소주 한 병과 잔 세 개를 들고 왔다. 그토록 내가 바라던 풍경, 점심시간이 되려면 한참이나 남은 시각에 우린 바닷가 절벽 주인 없는 굴 밭에서 잔치를 벌였다.

"역시 시골아이고향 대표답네."
"뭐가요?"
"우린 그냥 지나치고 마는데 바다까지 가만두질 않으니 말입니다."
"자, 선배님 말씀은 그만 하시고 한잔 받으시지요. 안주는 넉넉합니다."
"진짜 맛이구만."

홀짝거리며 쪽쪽 굴을 옆 사람에게 건네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너덜거리는 김도 따서 바닥에 깔았다.

"두 분은 올가을에 돈이 부족하면 이쪽으로 소주만 한 짝씩 싣고 오셔서 '굴체험장'을 여는 게 낫겠습니다. 주인도 없으니 쏠쏠하겠는데요."
"그럽시다."
"아이들에겐 바다에 사는 고기를 공부하는 기회도 되겠습니다."

이때 다리 위를 걷던 사람들과 주변을 서성이던 사람들까지 근 스무 명이 아래로 내려온다.

"그냥 먹어도 돼요?"

누군가 위에서 던진 말이지만 난 대꾸도 하지 않았다. 또 다른 이야기가 들려온다.

"그냥 먹으면 안 될 것 같은데요."
"지금은 괜찮다 아이오."

벗겨진 굴 껍데기와 홍합 주변에 살아있는 불가사리 한마리를 아이가 발견했습니다.
벗겨진 굴 껍데기와 홍합 주변에 살아있는 불가사리 한마리를 아이가 발견했습니다. ⓒ sigoli 고향
종패가 지난해 태풍에 밀려오기도 했고 원래부터 이 같은 바닷가엔 자연산 굴이 제집으로 여기고 살고 있다. 감질나게 조그마한 굴을 탁탁 쳐서 먹어도 쉬 성에 차지 않았다. 우리 넷은 소주 한 병을 피로 여기며 조금씩 나눠 마셨다.

"아빠 이건 불가사리야."
"그래."

한참을 먹고 있는데 사람들이 우르르 내려와 서른 명이 넘게 몰려 대성황을 이뤘다. 같은 시각 '콰이강의 다리'엔 연인도 없었다. 아주머니 아저씨 아이들까지 아래로 내려왔으니 남아있을 턱이 없었다.

"조금만 더 크면 좋겠는데."
"그래도 가게에서 먹는 것보다 맛이 더 좋잖아요."

30여 분은 내게 근사한 간식시간이었다. 바다내음을 한껏 들이키고 나자 정신이 맑아졌고 전혀 의도하지 않은 이벤트를 한바탕 치르고 나니 기분마저 좋아졌다.

이제껏 이렇게 사람이 많기는 처음이란다. 내내 그 이야기를 하며 주남저수지로 찾아온 철새를 만나러 떠났다. 새들은 왜 무리지어 학익진으로 날까?

못내 아쉬워 떠나지 못하는 두 가족이 남아있습니다. 우린 동백을 만났습니다. 아직 망울을 터트리지 않은 게 더 많았는데 이번 주엔 반반이겠군요.
못내 아쉬워 떠나지 못하는 두 가족이 남아있습니다. 우린 동백을 만났습니다. 아직 망울을 터트리지 않은 게 더 많았는데 이번 주엔 반반이겠군요. ⓒ sigoli 고향

덧붙이는 글 | 김규환 기자는 시민, 농민과 함께 고향신문 시골아이 고향(www.sigoli.com)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 일환으로 지난주에 마산과 창원, 전남 곡성과 화순을 다녀왔습니다. 이 기사는 <유포터>에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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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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