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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제 근로자의 고용 사유 제한 등 쟁점 사항에 대해 반대하고 있는 민주노동당 소속 의원들은 지난 17일 오후 국회 환노위 법안심사소위 회의장을 점거하며 회의가 속개를 저지했다. 우원식 소위 위원장이 위원장석에 앉아 있는 단병호 민주노동당 의원에게 '자리를 비켜달라`며 손을 잡아끌고 있다.
기간제 근로자의 고용 사유 제한 등 쟁점 사항에 대해 반대하고 있는 민주노동당 소속 의원들은 지난 17일 오후 국회 환노위 법안심사소위 회의장을 점거하며 회의가 속개를 저지했다. 우원식 소위 위원장이 위원장석에 앉아 있는 단병호 민주노동당 의원에게 '자리를 비켜달라`며 손을 잡아끌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사유제한' 조항을 놓고 진통을 겪어오던 비정규직 법안 처리가 또 연기될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 민주노동당, 민주당, 국민중심당 등 야 4당 원내대표는 22일 오전 비정규직 법안을 내달 20일로 예정된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2월 임시국회 처리' 원칙을 고수하고 있지만 야당이 모두 반대하고 나서 법안 처리는 불가피하게 미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극단으로 치닫던 국회 안팎의 갈등도 잠시 수그러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비정규직 법안이 3월 임시국회에서도 원만히 처리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정부(열린우리당)와 노동계(민주노동당)의 입장이 워낙 확고하기 때문이다. 21일 구성된 민주노총 신임지도부는 벌써 '총력투쟁'을 선포하고 나섰다. 28일로 예정된 민주노총 파업투쟁도 예정대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대량 해고" - "비정규직 악순환" 팽팽

양측이 팽팽하게 맞서면서 비정규직 법안 처리는 1년 5개월째 늦춰지고 있다. 양측은 대부분 의견 접근을 이뤘지만, 기간제(열린우리당 2년, 민주노동당 1년)와 기간제 사용 사유제한(열린우리당 수용불가, 민주노동당 10개항 한정) 조항에서 마찰을 빚고 있다.

특히 사유제한 조항은 양측 모두 물러설 수 없는 '마지노선'이다. 정부측(열린우리당)은 기간제 사용 사유제한을 둘 경우 중소기업 비정규직의 '대량해고 사태'를 막을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소기업들이 사유제한으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할 부담을 지게 되면 이들을 고용하기는커녕 해고시켜 버릴 것이라는 얘기다.

반면 민주노동당은 사유제한 조항을 두지 않으면 비정규직의 악순환이 되풀이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때문에 비정규직 채용 사유를 법률로 못 박아 기업 입맛대로 채용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요구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은 자신들의 요구가 "비정규직 해결을 위한 최선의 방안"이라며 "대기업 비정규직만 관심 대상이냐(열린우리당)"라거나 "변절한 노동운동가(민주노동당)"처럼 서로 감정섞인 대응까지 하고 있다.

이렇게 여당과 민주노동당이 '비정규직의 보호자'를 자임하고 있지만, 양측 대립을 바라보는 노동계 안팎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전문가들과 노동계 일부에서는 양측 모두 정치적 계산에 따른 실랑이를 벌인다며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일각에서는 정치적 목적으로 '중소기업 비정규직'을 볼모로 삼는다는 비난까지 들린다.

"우리당·민주노동당 비정규직 법안 큰 차이 없다"

민주노총 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 소속 조합원 등이 지난 20일 오후 여의도 국회앞에서 국회의 비정규직법 강행처리 반대를 주장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남궁현 민주노총 비상대책위원장(가운데) 등 지도부가 조합원들과 함께 비정규직 철폐 구호를 외치고 있다.
민주노총 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 소속 조합원 등이 지난 20일 오후 여의도 국회앞에서 국회의 비정규직법 강행처리 반대를 주장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남궁현 민주노총 비상대책위원장(가운데) 등 지도부가 조합원들과 함께 비정규직 철폐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이의영(군산대) 교수는 계류 중인 비정규직 법안에 대해 "중소기업 비정규직에게 큰 혜택도 없지만 큰 무리도 없을 것"이라며 "도움이 전혀 되지 않는다고 말하진 못하겠지만 근본적 해법은 될 수 없다"고 일축했다. 그는 또 "기간제 사용 사유제한을 두든 안 두든 중소기업은 기본적으로 저임금 구조를 지향하기 때문에 편법을 동원해서라도 비정규직을 유지할 것"이라고 평했다.

열린우리당이 중소기업 비정규직의 '대량해고 사태'를 이유로 비정규직 법안을 밀어붙이는 데 대해 이 교수는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사유제한을 도입하더라도 대량실직 같은 사회적 재앙은 오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는 "시장은 제도변화에 항상 적응해왔다"며 "열린우리당 주장대로라면, 중소기업이 지금 모두 비정규직을 쓰고 있다는 말이냐"고 꼬집었다.

이 교수는 '사유제한'으로 중소기업 비정규직에 대한 안전장치를 마련할 수 있다는 민주노동당 주장에 대해서도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중소기업은 비정규직뿐만 아니라 정규직도 문제"라며 "중소기업 비정규직 문제는 (사유제한과 같은) 대안으로 풀 게 아니라 구조적, 정책적으로 풀어야 한다"고 밝혔다.

결국 열린우리당이나 민주노동당 주장 모두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시각이다. 이 교수는 "열린우리당의 법안을 보면 재계와 정부의 적당한 타협안 같고, 민주노동당의 법안은 기성노조 중심의 운동 행태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양당 모두 '오십보백보'인 셈이라는 것.

"여당 '대량해고 사태' 주장은 한마디로 허풍"

좌파적 입장의 한 전문가는 "여당도 그렇고 민주노동당도 그렇고 그저 명분싸움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양측이 서로 대단한 차이가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는데 최종 법안은 큰 차이가 없다"며 "단병호 의원이 내놓은 수정안도 외형은 사유제한이지만 사실은 비정규직 고용에 대한 폭을 좀 많이 열어놓은 것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사유제한을 제외한 나머지 법안은 의견이 접근한 만큼 빨리 처리돼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비정규직 법안은 하루라도 더 미룰 수 없는 사안"이라며 "사유제한 문제가 걸리면 비정규직 법안을 먼저 처리한 뒤 다시 통과시키면 된다"고 제안했다. 열린우리당의 '대량해고 사태' 주장에 대해선 "한마디로 허풍"이라고 잘랐다.

한편 민주노동당이 내놓은 '사유제한 10개 조항'(단병호 의원 수정안) 법안도 노동계 내부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노동운동단체인 '노동자의힘'은 지난해 12월 성명을 통해 "(단 의원의 수정안은) 일상적으로 정규직을 써야 하는 곳에서도 비정규직을 쓸 수 있도록 허용하여 자본의 비정규직 확대의 길을 열어준 것"이라고 성토한 바 있다.

일부 노동계의 이 같은 입장은 아직도 변함없다. 원용수 '노동자의힘' 기관지 편집장은 "현재 법안으로는 비정규직이 전혀 보호되지 않는다"며 "우리는 민주노동당이 내놓은 수정안도 반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계류 중인 법안을 전면 폐기해야 하고 처음부터 다시 논의를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비판론자들도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지는 못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 민주노동당이 논의하고 있는 비정규직 법안의 실효성에 의문을 던지면서도, 뾰족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지 못하는게 현실이다.

원 편집장은 "우리는 법률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구체적인 법안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며 "하지만 지금 논의되고 있는 법안은 폐기돼야 한다는 원칙을 갖고 비정규직 차별을 철폐하거나 보호하기 위해 훨씬 강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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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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